매거진 달빛책방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존허스트/김종원-위즈덤하우

by 오달빛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존허스트/김종원-위즈덤하우스>

1.

나의 글은 서평이 아니다. 나는 저자가 쓴 책을 평가할 안목도 없고 그만한 지적 수준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그냥 내가 쓰는 글은 일정한 형식도 없으며 족보도 찾을 수 없는 일종의 잡문이라고 보면 되겠다. 나는 단지 글을 쓰기 위해 쓴다. 이것은 나의 많은 열등감 중에 하나인 글쓰기에 대한 거북함을 극복해 내고자 하는 일종의 공격적인 몸부림이라고 보면 되겠다. 가물에 콩나듯 읽어내는 독서는 글쓰기를 위해 철저히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나는 글짓기로는 단 한번도 상을 받아보지 못했다. 글짓기에서의 무관의 불명예를 극복하고자 고등학교 시절 심혈을 기울여 쓴 '추수'라는 시는 내심 큰 기대를 했건만 결국엔 선생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내 나름대로는 형식적으로 완벽했다고 자부했지만 우루과이라운드를 비판하는 과격한 내용이 보수적인 시골 학교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후 나는 글쓰기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편지를 쓸 일이 생겨도 첫문장을 쓰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이내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나이가 들면서 글쓰기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작문 관련 책들을 틈틈이 찾아서 읽어보았지만 작문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글쓰기 비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쓰는 것이 정답이었다. 자전거를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조건 닥치는대로 써야 한다. 쓰레기 같은 글도 써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쓰레기라는 말에 용기가 생겼다. 나에겐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글쓰는 행위 그 자체가 의미있는 목적이 된 것이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쓰기가 일상의 숨쉬기처럼 편안한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그럼 이제 책으로 돌아가서...


중학교 때 처음으로 세계사를 배웠었다. 책이 꽤 두꺼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덩치가 꽤 있으신 여선생님이었고 목소리는 미세하게 발음이 약간씩 새는 듯했다. 혀가 짧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약간의 비염기가 원인일 수도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만 거북하지는 않았으므로 세계사를 배우는 데 딱히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처음에 세계사는 재미있는 이야기책을 배우는 것 같아서 호감이 갔다. 흥미로운 옛날이야기들은 공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중 1때 담임 선생님이 실감나게 들려주시는 영화이야기와 다를바 없었다. 공부라는 인식이 없었기에 수업시간을 제외하곤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무궁무진하고 흥미롭던 이야기들이 세세한 시험 문제로 둔갑하여 나의 기억력을 테스트 하고자 했을 때 나는 그 무궁무진한 이야기 속에 파묻혀 버렸다. 나의 기억력은 호불호가 강해서 모든 것을 쓸어담아 두지 못했다. 시험으로 인해 세계사에 대한 나의 호감도는 급추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투자대비 효율성(적은 힘을 들여 많은 효과를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공부 방식은 세계사와 점점 더 멀어지게 했다. 그래서 나도 주위의 많은 학생들처럼 세포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평탄했던 나와 세계사와의 관계를 이간질 시킨 주범은 단연 시험이었다. 물론 시험도 필요하다. 그러나 제대로된 시험 문제라면 단순 암기가 아니어야 한다. 이를테면 1단원에서 너가 가장 흥미로웠던 사건에 대해 아는 만큼 자세히 기술하고 그 사건에 대한 원인을 기술해 볼껴? 또는 여러 가지 사건을 나열해 두고 너가 이 중에서 제일 자신있는 문제를 선택해서 아는대로 서술해 볼껴? 시험 문제가 이랬다면 나는 과연 세포자가 되지 않았을까? 장담하지는 못하겠다...그냥 평가 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 솔직히 공부가 싫다고 말하자.


이 책은 짧지만 핵심을 가지고 전체적인 맥락을 잘 짚어준다. 반복적으로 요약 정리까지 해주니 머릿속에 쏙쏙 잘 들어온다. 그리고 단순한 암기를 요구하지 않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과관계의 이해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쉽고 친절하고 재미있게 설명을 잘 해준다.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이분을 만났더라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세포자의 길로 들어서는 걸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럽의 문명은 그리스 로마 문화, 기독교, 게르만 전사들의 문화가 혼합되어 형성되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 책의 큰 핵심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과연 기독교가 찬란했던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그들의 신앙을 체계화 하고 옹호하기 위해 보존했다는 것을 제외하고 그들이 과연 인류의 번영과 행복에 기여를 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내가 보기엔 종교를 팔아서 백성들을 기만하고 착취하여 권력과 부를 쌓고 반대파들을 이교도나 악의 축으로 몰아 대량 살상을 부추기는 그들 자체가 악이었다. 유일신 사상은 다른 종교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기에 기독교는 많은 전쟁과 살상의 불쏘시개가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견해 차이를 두고도 오랜시간 죽고 죽이기를 반복해 왔다.

그 당시에 성직자가 되는 것이 지금으로 보자면 가장 안정적이며 부와 권력이 보장된 출세의 길이었다는 사실도 그들이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였음을 보여준다. 예수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이들과 함께 했으며 끝내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를 찬양하고 따른다는 인간들은 교황이랍시고 금장을 한 옷을 입고 신발에 흙도 묻히지 않으며 가마를 타고 다니며 자신이 마치 하느님인양 행세를 하고 다닌다. 오늘날 대형 교회 목사들도 고급차를 타고 다니며 부를 축척하고, 심지어는 목사 자리를 아들에게 세습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과연 그들이 예수의 삶과 그가 걸어간 길에 대해서 그 기름진 주둥이로 함부러 논할 자격이 있을까.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에도 예수를 팔아서 권력을 누리며 호의호식하는 자들은 구교나 신교나 다를바 없다. 나에게 그들은 인민의 무지에 의존하여 그들의 지위와 서로의 이권을 위해 싸우는 이익 집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아니었다면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없었다.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유대인만 기독교도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면 기독교는 유대인들의 신앙 가운데 아주 작은 분파로 남았을 것이고 그 명맥이나 겨우 유지했을 것이다. 무리한 가정일진 모르겠지만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았다면 그 수많은 전쟁과 살상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건 모르겠다. 종교 이전부터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평화보다는 폭력과 전쟁을 더 선호해 왔지 않던가. 기독교는 이러한 인간의 폭력성과 전쟁을 막아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지.


이 책의 많은 이야기 중에 유독 내가 종교에 대해 거품을 무는 이유는 나의 성장기에서 기독교는 서양사에 끼친 영향 만큼이 중요한 의의를 가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무신론자이며 인간은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한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더 신뢰하고 있지만 오래전 나는 나름대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래서 책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접어두고 나의 기독교사에 대한 이야기로 대체하고자 한다. 어차피 내 글이니 내 맘이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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