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이지만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을 미리 알 수 없으므로, 죽음은 저 너머에 존재하는 형체 없는 미래일 뿐이다. 막연하게 느껴지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 오면, 죽음은 일상에 가려져 잊고 살았던 삶의 본질적 가치를 상기하게 만든다.
죽음의 대상이 나였다면 어땠을까. 같은 크기의 아픔과 두려움이 나를 잠식했을까. 사랑하는 존재에게 내려진 예고된 죽음 앞에서 나는 한없이 무력해졌다. 육체적 고통을 나에게 가져올 수도 없고, 확정된 결말을 되돌릴 수도 없다. 인적 없는 광활한 벌판에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의 개는 태어난 지 4개월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에게 왔다. 어미 개와 떨어져 낯선 곳으로 와 불안했는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어딘가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아지가 숨을 만한 곳을 들여다봤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범위를 좁혀 가며 한참을 찾다가 발견한 곳은 세탁기 뒤쪽의 작은 공간이었다. 강아지는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무서웠어? 괜찮아. 이리 와.”
나는 강아지를 강제로 꺼내지 않고 스스로 나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강아지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오다가도, 내가 몸을 조금만 움직이거나 주변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다시 세탁기 뒤로 숨어들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나에게 다가온 강아지는, 내 품에서 경직된 몸을 풀고 그제야 동그란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람들과 집 안을 둘러보았다.
구름아, 내 삶에 네가 등장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가 가족이 되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너에게서 찬란하게 빛나는 삶의 사계절을 보았다. 너는 나의 친구로, 나의 아이로, 나의 어머니로, 나의 스승으로 한결같이 나를 지켜 주었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까지 내가 곁에 있을게.
나의 개와 함께한 10년 동안, 나는 무모하고 치기 어린 초록의 인간에서 무감하고 표정 없는 회색의 인간이 되었다. 세상에 대한 많은 의문과 질문이 쌓여 갔고, 삶의 비효율성을 실감했으며,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향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건조하게 변해 갔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지향해야 할 도덕심과 존엄성을 마음 깊이 새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보호자의 삶은 이제 끝을 향해 간다. 반려동물은 떠나고 나는 남을 것이다. 보호자와 반려동물이라는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나는 반려동물에게 무엇을 주었고 무엇을 받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해 준 것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다. 집에 돌아오면 괴성을 지르며 열렬히 반겨 주던 모습, 산책이란 단어에 신나서 뱅글뱅글 제자리를 돌던 모습, 삶은 고구마를 식히기 위해 식탁에 올려놓으면 그 아래에서 예쁘게 앉아 기다리던 모습, 아침에 눈을 뜨면 후다닥 일어나 얼굴을 들이밀던 사랑스러운 모습. 나는 사소한 일상의 장면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나의 개를 가슴에 묻을 것이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와 삶을 비추고 존재를 일깨운다. 가족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생명의 경건함을 배우고 낮은 곳을 돌아보게 만든다. 사소한 것에 기뻐하며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치를 깨닫게 한다. 온전한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한다.
오랜 시간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걸어왔던 길이 끝을 보이고 있다. 갈림길이 나오면 우리는 각자 다른 길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나는 웃으며 너를 보내 줄 것이다. 너의 작은 몸이 점점 멀어져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네가 걸어간 길을 하염없이 바라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