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병원 진료실에서 검사 결과를 듣던 나는 귀를 의심했다. 충격을 넘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평온한 모습으로 내 팔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구름이가 림프종을 앓고 있으며, 항암 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림프종은 노견에게 흔히 발생하는 질병이며, 항암 치료를 받을 경우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설명해 주셨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다리 쪽에 몇 개의 멍울이 올라온 것 빼고는 평소와 다른 부분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다. 감정을 자각하자 뒤늦은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진료비를 냈는지 어떻게 병원 건물을 빠져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의사 선생님이 택시 문을 닫아 주셨던 것 같은데 그조차도 너무 흐릿해서 확실치 않다.
“왜요, 강아지가 어디 많이 아파요?”
택시 기사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택시 안에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나중에는 머리까지 아프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슬픈 소식은 이렇듯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서글프고 비참하고 두려웠다.
집에 돌아온 구름이는 피곤했는지 침대로 가서 잠을 청했다. 옆으로 길게 누운 다리 안쪽으로 작은 멍울들이 보였다. 내가 놓친 신호들이 있었을까, 병의 원인이 무엇일까,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내가 어떻게 해 주기를 원할까. 의미 없는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지며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억울했다. 노견은 맞지만 구름이는 겨우 9살이었다. 사료와 간식은 돈이 더 들더라도 좋은 것을 사서 먹였고, 산책도 매일 거르지 않았다. 각종 예방 접종과 심장사상충약은 물론이고 1년에 한 번씩 기본적인 건강 검진도 꼬박꼬박 받았다. 목욕, 빗질, 귀 청소, 이빨 닦기, 발톱 깎기, 항문낭 짜기 등도 내 손으로 직접 해 주었기 때문에 구름이 몸에 변화가 생겼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멍울이 올라온 지는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림프종일 수가 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나는 구름이 옆에 누워 사랑스러운 갈색 털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동그랗고 맑은 눈이 살짝 뜨였다 다시 감긴다. 그동안 아프지 않았어? 네가 아픈 것도 모르는 내가 답답하지 않았어? 두렵지 않아? 무섭지 않아?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듯 아픈데 너는 왜 이리 평온해 보이는지.
구름아 나는……. 너무 두려워. 너무 무서워. 네가 없는 내 삶이 상상이 안 돼. 내 일상에서 네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허전할까. 삭막한 세상살이에 지칠 때마다 누가 나를 위로해 줄까. 웃을 일 없는 팍팍한 삶에 누가 생기를 불어넣어 줄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다.
네가 없어도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근무 시간이 길어도 돈을 적게 벌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예술 분야에서 창작으로 먹고산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싶었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어 프리랜서가 되면 그때는 지긋지긋한 출퇴근 대신 집에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물론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망이 우선이었지만 구름이 때문에라도 꼭 실현시키고 싶었다. 이제 구름이 나이도 적지 않은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 주고 싶었다. 집에서 홀로 덩그러니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구름이가 늘 마음에 걸렸다. 꿈을 이룬 나의 곁에서 느긋하게 늙어 가는 구름이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나중이라는 시간 속에 구름이가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상상하고 바랐던 포근한 희망이 무참히 무너지고 잔인한 현실이 고개를 내밀었다.
네가 없어도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