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를 화장하고 집에 돌아왔다. 집이 낯설었다.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속이 텅 비어 버린 집은 온기 없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방에 들어갔다. 주인을 잃은 물건들이 생기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멍한 눈으로 휑한 집을 둘러보았다. 혼자라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졌다.
공허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부질없는 짓이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운다고 해서 죽은 존재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눈물은 쓸데없는 감정 낭비이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적막한 공간에서 나는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든 육체를 벗어 버렸으니 이제 더는 아프지 않겠지. 건강한 몸으로 넓은 풀밭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구름이를 상상해 본다. 구름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나를 보며 환히 웃는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다행이라고 되뇌며 한숨을 내쉬었다. 목이 막혀 잘 가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새 직장을 알아봐야 했지만,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 그냥 몇 주 쉬기로 했다.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 나는 그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서 계속 연락이 왔다. 나는 그들에게 혼자 조용히 마음을 추스르고 싶다는 뜻을 알렸다. 아직은 누구와 나눌 수 있는 크기의 상실감이 아니었다. 상실감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구름이가 없는 일상에 천천히 적응해 갔다. 매일 하던 동네 산책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반려견 간식을 살 필요가 없었고, 외출 후 서둘러 귀가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둠과 적막함이 싫어서 TV를 켜 둔 채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면 괜히 허공을 향해 손을 뻗어 보기도 하고, 입맛이 없어 최소한의 음식만 억지로 삼키며 하루를 넘겼다.
도서관에서 펫로스에 관련된 책을 몇 권 빌렸다. 책 속에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언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따스한 온기를 지닌 언어들이 내 마음을 안다는 듯 나를 위로하려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흡수되지 못하고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책을 덮었다. 사랑하는 존재를 이제 막 잃은 나에게 아름다운 말들은 공감되지 않았다.
죽음은 죽음일 뿐이고 이별은 이별일 뿐이다. 잘려 나간 마음은 여전히 아파서 근처만 건드려도 통증이 밀려왔다. 고통의 본질은 절망이다. 허무함이 마음을 뒤덮고 무기력함에 사로잡힌다. 삶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나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반려동물을 잃은 처절한 슬픔은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남긴다. 상처가 아물어 상흔이 될 때까지 고통은 형태를 달리하며 속성을 변화시킨다. 그 모든 과정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홀로 감당해야 할 영역이다.
오랜만에 공원에 왔다. 나는 우리가 자주 거닐던 곳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마음이 시렸다. 보호자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반려견들이 보였다. 반려견들의 해맑은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매일 하는 동네 산책이 뭐가 그리 즐거울까. 뭐가 그리 신나서 저리 꼬리를 흔들까. 나는 내 앞을 지나가는 보호자와 반려견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또한 그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빌었다.
처음 겪는 반려동물의 죽음은 예상보다 훨씬 더 아팠다. 두 번은 겪을 자신이 없으니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감정들이 고통을 밀어내며 밀도를 낮춘다. 시간이 지나면 더욱 흐려지고 옅어질 것이다. 남은 이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구름이가 떠난 지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오래전 일처럼 아득하다. 마음이 아린다. 그렇게 나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나의 개를 가슴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