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미련한 짓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되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난 미련한 짓을 놓지 못한다. 이런저런 가정을 머릿속으로 돌리며 자책에 빠진다. 건강하게 키우지 못한 내 잘못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남들이 아무리 나를 좋은 보호자라 평가한다고 해도 내 마음은 씁쓸할 뿐이다.
내가 후회하는 시간은 구름이의 투병 기간이 아니었다. 병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점차 절망으로 무너져 갔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하루하루 온 힘을 다해 살았다.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정말 후회되는 시간은 구름이의 생애 대부분을 차지한 건강했던 날들이었다.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강아지 시절, 자연스러운 시기별 행동임에도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내기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며칠에 한 번꼴로 물어뜯어 놓은 물건이 머리맡에 전시되어 있었다. 구름이는 다른 가족의 물건은 안 건드리면서 꼭 내 물건만 잘도 골라서 뜯어 놓거나 이빨 자국을 남겼다. 집중해서 뭐라도 하고 있으면 장난감을 물어 와 계속 눈앞에 놓으며 귀찮게 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구름이는 그 시절의 나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아직 학생이었고 집에서도 막내였기에 그나마 눈높이가 맞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2년 남짓한 짧은 시간을 왜 더 배려해 주지 못했을까. 같이 놀자고 다가올 때마다 왜 귀찮다고 밀어냈을까. 세상 바쁜 것처럼 내 방으로 뛰어오던 구름이의 발소리가 그립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산책을 하지 않았던 날들이 마음에 걸린다. 구름이는 입이 짧고 사료를 싫어했다. 잘 먹지 않아 마른 몸을 보며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여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끝내 실천하지 못했다. 아프고 나서야 나는 사료를 치우고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들이 뭐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나중으로 미뤘을까. 반려견에게 산책과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잘 알고 있었음에도 나 자신이 우선이었던 나의 이기심이 원망스럽다.
미안한 일이 한둘이 아니지만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부분은 이것이었다. 구름이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매일 11시간씩 나를 기다렸다. 나머지 시간도 잠자는 시간, 출근 준비 시간, 집안일하는 시간 등을 빼면 남는 시간은 고작 3시간 정도였다. 구름이를 본가로 보낼까도 고민해 봤지만, 그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구름이가 오랜 시간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면 보호자로서 정말 면목이 없다. 미안하다는 말이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미안하다는 말밖에 나는 할 말이 없다.
떠난 존재는 크게 신경도 쓰지 않을 기억의 조각들이 나를 찌른다.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다. 하지만 원래 후회란 남겨진 자의 몫이 아니던가. 속상하고 아쉬운 이 마음을 알아줄 유일한 존재는 하늘에 있는 나의 반려견이다. 주어진 생애를 모두 마쳤으니, 이제는 나보다 더 성숙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반려견은 지난 생의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잊고 이제는 평온한 곳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마음에 담고 너라는 존재를 영혼에 새긴다. 너로 인해 피어난 슬픔, 아픔, 고통의 감정까지도 내게는 소중하다. 남은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 생애를 바쳐 나를 사랑해 주었던 너의 마음에 보답하는 길이다.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힘을 쏟아부을 것이다. 나를 응원하는 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제 누군가의 무엇으로, 고단한 사회인으로, 언제 빛을 볼지 알 수 없는 예술가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반려동물의 보호자라는 역할이 끝나서 못내 서운하고 아직도 심장이 저릿하다. 그러나 이쯤에서 나는 감정을 내려놓기로 한다. 나는 죽음이 내게 손을 내밀 때까지 남은 생을 잘 살아 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개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를 떳떳하게 보고 싶어서,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