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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n 21. 2023

삶은 꿈일까?

정지된 시간들, 슬픔이 뭐였지?

삶은 꿈일까? 기억은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최초의 기억이 마음과 함께 일렁거린다. 마음에 이름 지을 수 없어서 이름을 찾아 헤매다 시간이 한없이 흘렀다. 꿈은 처음부터 기억되지 않는다. 삶도 그런 것처럼 5세 이전의 기억들은 사라졌다. 어렸을 때 사진을 한참씩 보고 있으면 그 순간의 기억들이 올라온다. 좋은 기억들은 왜 없을까? 알게 됐다.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된 다는 것이 참 너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련하고 미안하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게 이처럼 어렵다면, 살아남은 자들은 사실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건가?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들. 그것도 서서히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삶과 투쟁하기 시작하면서 더 악바리가 되어 '넌 너무 깐깐해.' '네가 더 야박해.'라는 시선으로 대한다.

하지만 너희도 슬픈 아이잖니, 왜 내버려두지? 아이는 어디 있어? 곁에 둬야지. 너도 버리면 그 아이는 영원히 그 시간 속에서 살아 나오지 못하는데...

그 아이가 사실은 넌데 말이지. 왜 너도 버리니?

글쎄, 도망가고 싶다. 네가 나를 더 힘들게 하니까. 난 아직 크지 못했어. 여전히 모든 것이 버겁다. 내가 더한 야박꾼이 되어 버린 거 같은데. 슬픔이 뭐였지? 이제 눈물도 사라졌는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모든 것을 토로했더니 그 슬픈 아이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더 고독해졌다.




부모의 거울이 되어 웃는 아이


굳어 버린 심장, 까르르 맑게 웃는 모습,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너무도 청량하다. 맑은 물소리와 같다. 그 소리엔 어떠한 가식도 어떠한 시기와 질투, 분노와 혐오와 같은 색이 묻어있지 않다는 것을 느낌은 알고 있다. 어두운 마음은 어떻게 생겨날까? 미움이란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픔을 아는 아이는 스스로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에서 여주인공이 마을에 나타난 괴물을 온몸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다. 아이는 그런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생의 첫 경험에서도 꿋꿋이 살아간다. 생, 살아가는 본능. 한 번도 진정으로 죽고 싶었던 적이 없다. 죽음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는, 내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되면 나를 찾을 ? 어떤 신이 나를 가엾게 여겨서 나를 구원해 줄까? 의 다른 마음이었다. 굳어버린 심장의 원인은 그 처음 가졌던 마음에 대한 해석에 있다. 굳은 다음은 아픔을 느낄 때 가슴에 통증이 느껴온다. 아릿한 무언가가 반복되어 쥐어짜는 듯한 통증으로 발전한다. 아릿함... 사실은 아릿함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아픈 누군가의 마음을 읽다 보니 느끼게 된 감정이다.

인간은 '거울 단계'를 거친다. 라캉이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인간의 정신발달단계를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러한 단계가 조화롭게 통합되면 사회에 잘 적응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양육단계에서 부모가 무언가를 놓치게 되면 그 아이는 상상계에 빠지게 된다. 스스로를 위험한 환경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주 양육자에 맞춰서 자신을 조율해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보호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20-30년을 살아 독립의 단계로 가게 되는 경우 사회는 오히려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적이 되어 다가온다. 오염된 곳에 근 30년이 노출된 사람에게 공기 좋은 곳이 오히려 위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누가 그 얇지만 견고하게 짜진 거미줄 같은 보호막을 걷어내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대로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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