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觀點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를 뜻한다.
관점은 방향성을 지향한다. 보지 못한 것, 은폐된 것, 다른 측면들을 살피려 한다. 그것은 시야를 넓히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프레임은 무엇인가? 틀에 가두는 것, 안으로 좁히는 것, 말의 눈을 가려주는 것 빛이란 것을 향해 앞으로 내달릴 수 있다. 누구보다 빨리 질주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한 경주 인가? 프레임을 씌우는 자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누군가의 부흥하는 구도를 만든다. 포상은 당근. 착취가 목적이다.
부분의 자명함으로 눈속임하는 자들. 그들을 사기꾼, 위선자라고 한다. 위선이 더 적합한 접근 일 것이다. 사실을 모아 잘못된 것으로 맞춰가면 어떻게 될까. 에릭칼의 카멜레온이라는 그림 동화가 있다. 자기와 다른 것들의 온갖 장점들을 자기 안으로 가져와 치장해 고유한 자기와 멀어진 괴형태가 되어 어떤 기능도 제대로 살리 지 못해 당황한 겉보기에 괴이하고 예쁜 카멜레온. 카멜레온은 환경에 적응하고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색을 바꾼다. 자연과 참 조화롭고 귀여우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본질에 충실한 카멜레온은 고유함 그 자체로 자연이 된다. 그런데 에릭칼에 나온 온갖 좋은 장점만을 취해 자기 몸에 붙인 카멜레온은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케 한다. 탐욕이 낳은 결과다.그 결과 자연 속에서 스스로 자기를 보호할 능력조차 잃게 된 것이다.
프레임이란 상담학에서 어떤 사건에 대해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것을 다른 맥락에 갖다 놓는 것을 말한다. 상황에 적합한 것이 아닌 다른 틀을 억지로 끼워넣기 위해 잘 짜인 틀로 이해를 도와가며 해석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앞의 동화 속 카멜레온처럼 괴기한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프레임은 다른 사람을 자신의 방식대로 조종하고 싶을 때도 그 틀을 씌우려들 때도 쓰인다. 강력한 틀. 그것은 하나의 편협을 낳는다. 그리고 같은 집단에 속하지 않은 자를 적으로 매도한다. 추방한다. 배제시킨다. 급기야 죽이려 든다.
그렇다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조화로울 수 있을까. 사회적 관계의 복합성으로 참 어려운 문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스스로 필요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역시 부단히 성실해야 한다. 그 길에 황농문 교수의 말씀대로 몰입의 단계로 가면 매우 즐겁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