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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n 16. 2023

트루먼쇼, 그들은 무엇을 숨기고 있나

부모의 이름으로, 스스로는 창조자라 한다

위선자 가족의 언어ㆍ표정ㆍ행태들, 영화 짐캐리 주연의 <트루먼쇼>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30대 평범한 가정을 이룬 직장인, 트루먼이 익숙한 주변환경에서  언제부턴가 어색하고 모순적인 사람들의 행태들을 발견하고 인식의 혼동을 느끼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위해 첫사랑을 찾아 용기를 내는 여정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주 핵심은 트루먼이 어려서 아버지와 헤어지게 된 경험으로 만들어진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제4문인 닫힌 벽을 뚫으며, 자신의 길을 가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1998년작인 이 영화로 짐캐리는  골드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트루먼이 트라우마를 극복한 직후 닫힌 벽에서 문을 찾아 한 발을 내딛는 모습이다. 트루먼은 첫사랑과의 새로운 삶을 향해 안전한 것처럼 보였던 가상의 세계를 기획하고 창조한 크리스토퍼의 완성된 삶의 제안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누리고자 도전하러 가는 새로운 내딛음을 표현한 장면이다.


왼) 바다에 빠져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빠를 조우한 장면으로 수치와 두려움이 잔뜩 묻어나 보이는 아빠의 표정

오) 자신의 삶을 선언하며 자유로움과 풍부한 만족감이 느껴지는 트루먼의 표정



남편이 뱉은 언어들을 통해 위선의 패턴 찾기


맞선 후 이틀 째의 고백

사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길 이단이라는 교횐데, 젊었을 때는 목사를 했지만 전 안 믿어요. 전 고등학교 때 그것이 잘 못됐다는 걸 깨달았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죠.


맞선 후 우연히 시아버지를 만난 후 그에게 아버지가 내 인상을 보시고  어떻다 하시는지에 대한 생각을 그에게 물었을 때, 들은 말

아따 아들 잃게 생겼네라고 하셨어.


결혼초 3개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하는 말

히히 잘 골랐다. 심플한데 심심하지 않게 생겼다.


평소 대화하는 것을 무지 싫어하고 자신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너는 너 할 일을 해. 나는 나대로 살면 되니까.


결혼은 부자 되려고 했지. 니 나이에 최소 3,000은 있는지 알았지. 그렇게 수준 낮은 지 누가 알았냐. 알았으면 결혼 안 했지. 결혼이 이런 건 줄 누가 아냐? 이제 알았으니 안 맞으면 이혼하면 되잖아. 이래도 이혼 안 하냐?


거기 쓰레기 같은 가구 도끼로 찍어블고 싶네.

저리 꺼져.


어느 순간부터 언어가 더 험악해진다. 시아버지가 신혼집을 4개월째부터 무단으로 침입하듯이 들어오시는 즈음일까?

굳이 이렇게 살아야 하냐? 너랑 안 맞으니까 헤어져. 애가 하나니 반으로 찢을 수도 없고 니 갖든가. 아님 한 명 더 낳아서 나누든가.


4개월째 사이버지가 온 계기는

어느 주말 토요일 나르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음 일요일에도 연락이 없다. 오후에 집에 온다. 추궁하니 흥분하며 자신은 총각 때부터 원래 종교행사에 주기적으로 참여했고 어제가 그날이라 아버지랑 갔다는 것인데, 왜 내가 너에게 보고해야 하냐며 싸운 후부터, 시아버지의 무단침입이 계속된 정황이다. 그 후 쓰지 않은 작은방에 한 번씩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여 뭐 하는 거냐 물으니. 교회에서 좋은 물이라며 받아왔다는 약수?를 실온상태로 3개월째 먹다가 들통난 일이 있었다. 그들의 행태는 일정한 패턴이 확 드러나지 않는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조종술처럼 예고없고 느닷없이 불쑥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예측하기 어려움이 두려움을 생산하는 구조이다.


당시는 알 수 없는 이상한 발언과 상태들, 혼수로 준비한 시댁 이불도 가져가지 않으시고 여기 와서 주말에 쓰시겠다며 놔두라고 하신다.


나중에 알게 된 정황은 이렇다.

나르 가족은 그가 나와 파혼 후, 준비했던 텅 빈 신혼집에서 함께 거주했다는 것이다. 결혼 생활 8년 이후 즘에 들었다. 그래서 시아버지 입장에서는 함께 서서히 거주하려는 마음으로 매주 오셨고, 정황을 살피면서 자신의 딸(형님)에게도 가끔 전화를 하면서 친근감을 표출하였던 것이리라. 그리고 집을 방문할 시, 늘 나를 생각한다듯한 언어로(결혼해줘서 고맙다이) 한마디로, 모든 감사를 했다고 편리하게  치시고, 그 후엔 자기 고집대로 했던 것인데. 생각과는 다르게 아들내외가 자꾸 싸우니, 가끔 1년에 한 번 정도 주무시면서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느닷없이 고성의 찬송가를 부르시면서 퇴마의식을 하셨나?


마치 남편과 시아버지는 넷플릭스 화제작, <나는 신이다>에 소개된 여러 이상한 종교들 그리고 TV방영 프로, <실화탐사대>에 나오는 세상의 일반적인 얘기들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특이한 종교들이 낳고 그 신도들 또한 무엇에 심취되어 일반적인 사고에서 스스로 조금씩 멀어지는 그런 군상 아닌가.


난 왠지 남편의 언어들 때문에 그 주변의 가족들 시댁사람들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다른 행태들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어떻게 표출할 수가 없어 대부분은 침묵하는 편이었다. 첫 출산 후 갓난아이가 자고 있는데 시아버지가 주말에 오셨다. 늘 오시기 전에는 남편이 가서 모셔오기 때문에 모든 준비는 나 혼자 오랜시간 힘겹게 해야 했기에 바빴는데, 그는 시아버지에게 자기 딸을 보여드리면서 거실에서 자고 있는 갓난아이에게 손가락으로 살짝 찌르거나 흔들며 "야, 야 눈떠, 할아버지 봐야지." 라는 괴이한 행동나는 순간 분노와 충격에 감싸 시아버지 앞에서 훅 들어낼 소리를 애써 잠재우느라 너무도 힘겨웠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하는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었던 것처럼 그냥 보고만 계셨고 오히려 올커니 깨워보라는 듯 편안해 하시며 흡족해 보였다. 그 회개 망측한 두 사람을 보고 난 후, 도저히 신혼집에 갈 수없었다. 1년간 무단침입해 들어오는 시아버지의 이미지 때문에 그리고 이상한 역사관ㆍ민족관ㆍ종교관 너무도 불안해서 출산 후 5개월은 친정에서 산후조리한다는 핑계로 집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6개월째부터는 서서히 집에 갔다. 어느 날 아이가 블록놀이를 하며 앉아있었는데, 시아버지가 들어오시면서, 인자 다 컸네 누가 데려가 키워도 되겠다는 말을 매주 그 신혼집에서 1년을 했다.


이제겨우 앉을 수 있는 생후 6개월 된 아이를 보고 시아버지는 "다 컸네, 누가 데려가 키워도 되겠네. 근디 엄마가 친구제? 엄마가 키운 게 낫제?"라는 말을 자문자답하면서 매주 오실 때마다 신을 벗기도 전에 하시는 말이었다. 왠지 스스로 무언가를 고민하는듯한, 뭔지 모를 저 모순적이고 구역질 나는 더러운 말, 참 말이 이상해서 지금까지 해석이 안되었다. 상식적이라면 저 상황은 손녀가 커서 예쁘다는 의미겠지만, 남편의 말, 자신이 사기당했다며 너의 무능함에 대한 주기적인 돈타령, 이혼하자는 둥의 반복형 독백과 끝도없는 비아냥 거림과 추근대는 비난 등이 이미 일상이었기에 내 마음은 서서히 어둑해지고 그 두사람의 오고가는 말 한마디들이 나의 온갖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가장 큰 우려는 막 태어난 순수한 이 아이가 모든 것을 흡수할까 너무도 두려웠다. 그러다 작년, 동생의 권유로 신동엽 MC채널 <실화탐사대>를 유튜브로 보게 됐다. 정신병적인 교주들이 신도들을 어떻게 붙잡아두며, 세뇌시키고 평생을 도망가지 못하게 엮어두는지. 아마 시아버지는 그곳의 피해자가 아닌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연이은 한국전쟁까지 그리고 본인은 양반 축에도 못 끼신다는 말. 난 그들이 피해자이니 트라우마가 심각했고 그것이 삶이 됐으니, 누구도 자신들처럼 하층민에게 손을 내밀지 않은 때 사이비교주가 일거리를 줬기에 그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은인이 됐다로 추측하였다.


그런데 왜? 그들에게는 도덕과 윤리가 없는가? 신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선하다고 가르치는가? 돼지는 혐오의 동물이라고 가르치는가? 종교를 넘어서 왜 도덕성은 사라졌냐가 나의 깊은 의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나의 내면을 탐색해야 했다. 그 위선의 씨앗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나의 내면아이를 다시 접속해야 했다. 내가 대나무로 여기저기 맞을 , 젖병이 망치로 산산조각 났을 때, 엄마는 왜 살아있는 닭의 을 빙빙 비틀면서 손질해야 했는지. 왜 엄마는 나를 안아주질 않았는지. 그리고 어린 형제들은 왜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는지. 모든 사람에겐 선한 본성이 있지 않았는가?


도덕성을 잃어버린 피해자는 좀비와 같다. 그들이 다시 인간성을 형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날 다음 글귀를 보게 되었다.



ㅡ 유치한 나르시시즘을 벗어나 ㅡ


자기중심적이고 불안에 휩쓸린 정치적 순간에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유치한 나르시시즘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고찰해야 한다. 아기는 즐거움과 위안의 시기를 겪으며 사랑과 감사를 느낀다. 자신을 위해 도구로써 이용될 노예가 아닌 독립되고 분리된 삶을 허락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절대 왕정에서 민주주의적 관계로의 이동이라고 말한다. 즉, 유아 연구 심리학자 풀 블룸은 돌보는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능력, 즉 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애 초기에 생긴다고 말한다. 또한 소아과 의사 정신분석학자인 도널드 위니캇은 부모가 없을 때 아이가 찾는 '이행대상_담요, 곰인형'의 역할에 주목했다. 여기서 '성숙한 상호 의존'개념이 뿌리내린다: 엄마가 옆에 있을 때 혼자 노는 능력, 이에 아이는 안정감과 자신감으로 건강한 상호 관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아이는 부모를 전인적 인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민주적 자아가 탄생할 준비가 된 것이다. 동시에 감정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자신의 욕구가 좌절될 때 공격성과 분노표출 대신 점차 '걱정할 수 있는 능력' 도덕적인 삶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_66p.


저자세계적으로 저명한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세계 100대 지성에 2005, 2008년에 선정되었다. 마사 누스바움은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 하버드대학교 철학과와 고전학과에 교수직시작으로 석좌교수가 됨._The Monarchy of Fear, 2018.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알에이치코리아.


그래, 남편의 집안은 질병의 삶을 오래 살았다.

탐욕의 역사가 낳은 재앙 전쟁 그리고 절박함에 부른 절대자, 신의 출현, 사이비 종교, 공허함과 소외를 이기고 싶은 간절함에 스스로 절대왕정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스스로를 나르시시스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형님, 아직 OO 씨 집에 안 왔는데, 말이 너무 험해서 대화가 안 돼요. 아니 아이가 이제 8개월인데 애를 찢어서 나눠가지든가, 아님 이혼하든가, 하면서 이상한 말을 하는데 도저히 대화가 안 되니 형님이 누나니까 대신 좀 야단 좀 쳐주세요."

"아. 지금 새벽 1시인데도 안 왔어? 어려서부터 갸가 독단적인 면이 있어서 나도 예전부터 대화가 안 됐는데 힘들겠다. 근데 나도 사실 대화가 안 되거든 어려서부터 성질이 좀 있었어. 이건 갸도 모를 수도 있는데 우리 엄마가 결혼 때 힘드셨거든 처녀 때 우울증이 있다고 하셨는데, 결혼 후에 더 심해지셨다고 나한테만 비밀로 말한 적이 있어. 그런데 사실, 안 맞으면 그냥 이혼하는 게 낫지 않아? 아니, 내 생각인데, 사실 난 결혼을 안 해서 모르겠다. 미안. 그런데 안 맞으면 이혼하면 될 거 같은데."


그때 알았다 이 집안사람들은 모두 병이 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울증 부모의 자녀는 대화를 하지 못했겠구나라는 짐작 그런데 공감할 수 없는 현실. 그들은 내게 가해자로 다가온다. 우리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게하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섬세한 이해와 새로운 체험을 생성해야 한다.


니체의 자기 초극의 의미는 병에서 건강으로의 치유도 포함하고 있다. 다시 책을 펼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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