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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n 16. 2023

부모의 계략과 나르의 모략은 찰떡

자기 초극

그를 가정의 달 5월에 만나서 그 후로 저녁식사 후에 매일 왔기 때문에 빠르게 우리 부모님도 알게 됐다. 심지어 우리 집은 2층이어서 나중에 보니 매일 100일을 아빠가 창밖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100일째 누구나 알만한 계산대로 99송이 장미를 들고 왔다.


그러나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어지는 과정이 불협화음이 심각해지고, 그 사람은 처음에 하자고 했던 혼수에 대해서 서서히 불평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굳이 이렇게 해야 하냐? 안 맞는 것 같으니 그만하는 게 어때?" 라며 이 관계를 끝내길 바랐다. 난 그냥 그가 엄마 말대로, 결혼비용에 대한 투정이라고만 받아들였다.

"뭐? 청청잡을 다 보냈는데? 예약도 다 하고. 그리고 왜 그러는 거야? 처음에 다 말했잖아. 난 돈이 2,000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결혼식은 형식일 뿐이잖아. 굳이 그걸해야하냐? 그런 건 의미가 없잖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한복은 왜 사지? 빌리면 되는데. 가구 같은 것도 안 사도 된다니까. 그런 돈 있으면 집에 보태라."

"뭐? 안돼. 약속한 대로 해. 그리고 다 예약했는데 무슨 소리야?"

"가만 네가 너무 모르는 것 같으니 친구에게 물어봐야겠어. 다른 사람들도 한복을 사는지."

"뭐라고? 우리 일에 왜 친구한테 물어? 그 사람하고 결혼해?"


그는 늘 앞뒤가 안 맞게 행동했기에 결혼을 잡은 후론 날마다 싸우게 됐다. 래 결혼할 때는 말이 많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난 확고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이 맞다고 확신이 됐다. 그는 중간에 삼겹살에 대해서도 너무 박했기 때문에 점점 뭔가 위기의식이 올라오던 차에 섣불리 그가 원하는 목돈을 가져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 정말 딱 혼수비 2,000만 원이 전부였다. 직장을 겨우 4년 정도 다닌 덕에? 전 직장 2.9년에 가족하고 일 한 1년간.  그 일을 하는 중에 만났기에 비축해 놓은 재산이 없었다. 그리고 결혼정보회사에 기록한대로다. 그래도 그가  를 좋아한다면 결혼하기로 한 건데, 정말 의견이 너무도 안 맞아서 계속해서 싸웠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 멱살과 의문의 눈물.


결혼을 하겠다며 청첩을 돌린 후 각자 지인들을 초대해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런 것도 왜 하냐며 돈 쓰기 싫다는 사람 각자 내기로 하는 결정을 짓고 만났다. 나는 결혼을 한다는 일이 좋지만 불안한 심정이 있었기에 그 사람 친구들 앞에서 걱정스러운 얘기를 꺼냈다. 좀 길게.


"그런데 이 사람은 돈을 너무 안 써서 힘들어요."

"아 남자들이 처음에 그렇죠. 그런 남자는 결혼하고 좋다고 하잖아요. 걱정 마세요."

"그런데 이 사람은 매일 그렇게 오더라고요."

"그래요. 남자가 그렇게 매일 갈 수가 없거든요. 좋으니까 매일 가는 거예요."라는 말을 친구를 통해 처음 들었다. 좋으니까 그렇다는 말.


그 사람에게 내가 결혼을 할 거냐? 의사를 밝혀달라. 우리는 결혼 정보회사를 통해 만났으니 서로 솔직하면 좋겠다고 했을 때, 늘 때가 됐으니까 결혼한다고 말했다. 그 때라는 것은 나이가 됐으니까 그렇다나? 참 이상한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 애매한 발언들이 쌓여서 걱정거리들이 한가득 나온 상황이었다.

소개가 끝나고 집에 가는 밤 10시에 그 사람이 내 행동이 큰 실수를 했다며, 늦은 밤이니 같이 데려다 주라는 내 애원에도 불구하고 뿌리치며 멱살까지 잡았다. 그리고 결혼 2-3주 전 그렇게 중요한 테스트라며 자기 아부지랑 안 살면 결혼 못한다는 이상한 발언은 참을 수 없었다. 왜 결혼을 앞두고 사람 놀리는 건가? 자신의 아버지랑 사는 것과 안 사는 것의 문제라기보다 그의 전반적인 태도가 너무도 불순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3개월밖에 만나지 않았는데 10년 지기 친구들 앞에서 나의 발언들이 자신의 체면을 붉히게 했다는 것까지는 겨우 이해해보려 했지만 그렇다고 어떤 사람이 결혼할 사람의 예복의 멱살을 잡을까? 그것도 여성에게. 난 계속 이해해보려 했었다. 아 우리가 3개월 만나고 결정한 거라. 아무래도 내가 남이었나?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어도 힘겹게 마음을 달래가며 진행하는 중이었는데. 아버지랑 같이 산다? 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상한 능구렁이 테스트인지 그리고 그때 느닷없이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은 어떤 의미인가? 테스트가 맞나?지금 생각하면 직감은 알아차렸는데.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모든 눈을 가린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의 덩어리인 우리 아빠는 눈이 돌았다.


나는 위의 사실들을 모두 말해왔었다. 그런데 아빠는 의아하는 표정이었고. 설마라는 의심하는 듯 늘 내가 설명하는데 힘이 겨웠다. 여하튼 나는 그 사람이 먼저 파혼선언을 하면 깔끔하게 헤어진다는 선언을 하길래 너무도 어처구니없어 잘 됐다. 그래 헤어지자는 마음으로 "그래 파혼해!"라고 내가 말을 꺼냈다. 종용은 그 사람이 했지만 어차피 끝낼 것 누가 하는지는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냥 깔끔히 끝내길 바랐다. 반지와 한복은 각자 갖기로 하자는 말에. "오케이"하며 쌩하며 차를 몰고 가는 모습은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사기꾼 같은 새끼라는 말만 떠올랐다. 하. 분노가 일어나기보다는 그냥 어처구니없고 나 스스로 혼란스럽다고 할까?


그리고 다시 우울에 빠졌다. 나는 내 신세가 불쌍해서 내 방에서 나오질 않고 박혀있었다. 그런데 1주가 지났을 까?

"oo야! 나와봐라. ㅇ서방 왔다."

"뭐? 왜?" 하지만 난 나가지 않았다. 왜 왔어? 이상하네.

그리고 거실에서 한참 서성이는 것 같더니. 내방은 두들기지도 않고 몇 분? 있다 사라졌다.

그 후에 방문을 열고 가서 무슨 상황이냐 물었다.

"왜 저래? 말도 안 할 거면 왜 왔어? 이상하네. 진짜 어이없는 인간이네"

엄마 아빠는 좀 나와보지 그랬냐고 왜 야박하게 구냐고 그 사람편드는 소릴 해서 속이 터질 뻔했다.(엄마가 사실은 네 아빠가 너 몰래 ㅇ서방보고 사과해보라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취소 절차는 참 쉬웠다.

"네가 다 처리해라. 나는 모른 게 네가 가구랑 다 취소하고 네가 니 돈으로 내라."

아빠도 미친 것 같았다. 이렇게 사기당한 느낌으로 심란한데 몇 푼 되지도 않은 돈부터 챙기는 모습이 너무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모든 것이 내 불찰이라 생각해서 제대로 내 감정도 표출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새벽까지 엄마랑 아빠는 나를 비하하고 비난하며 창피해 죽겠다 미친년이네라는 소리를 벽너머로 매일을 들어야 했다. 부모님 방 벽이 내 방과 붙어있어서 새벽에 왜 그렇게 소리가 잘 들리는지 두 분은 2-3세시까지 나를 욕하고 주무셨다. 나는 처음엔 내 결정이 분명히 맞음을 확신했고 매우 당당했다. 사기꾼한테 당하고 깨끗하게 헤어졌는데. 당연한 심리상태였다. 그런데 부모님 방벽 너머로 들려오는 비난을 날마다 새벽까지 1달 반을 듣게 되니 서서히 내 결정이 잘못된 건가? 하는 의문과 불안이 일기 시작했다. 사실이다. 부모님이 '저년이 미쳤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왜 지가 먼저 발로 차서 그러는지. 창피해 죽겠구만. 나이도 많아가지고 능력도 없는 것이 뭐가 잘났다고 그러는지. 남자가 홀아비 자식에 혼자 그렇게 준비하니 알뜰하게 살려고 하는 거지. 미친년이 에이 창피해.'라는 내용이다. 서서히 내 결정에 오류가 있는 건가? 난 아직 경험이 없어서 부모님 말이 맞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 사람이 반성하러 온거 잖아 너무 야박했나. 우린 나름 잘 맞을 텐데. 해코지도 안한걸 보면 누군가는 헤어질 때 해코지를 한다는데 그럼 사기꾼은 아닌가? 그냥 자존감이 너무 높아서 상당히 민감한 성격인가?라는 생각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오후 난 문자를 넣었다.

<잘 지내?>

그러자 그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전화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만났다.




그리고 12월에 결혼할 일은 취소되고 다시 1월에 결혼을 잡았다. 그때 서야 엄마는 아쉬운 사실을 더 자세히 말했다.

"아이고 그때 손 있는 날이라고 날짜가 안 나온다는 것을 억지로 잡아서 근가. 참이상하네."

아빠는 "어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소!" 라며 입단속을 하려했다. 두 분은 이미 아는 사실인 것이다.

"아이고 근게 길일을 잡아 달라고 하니 그 사람이 어째 손 있는 달이라고 없다고 하드라. 근데 그날 아니믄 막내아들 날짜는 절대 다른 날로 잡으면 안 된 게 아무 날이나 좋은 날로 잡아주라 했드니 그랬네."

라는 황당한 발언을 듣게 됐다. 엄마한테 배신감을 크게 느꼈다. 나를 하찮게 보는 느낌이었다. 뭐가 그리 중할까. 좋은 날이라니. 그 좋은 날의 개념이 맞는 건지

우선은 그날이 매우 좋은 날이라고 엄마는 말했었다. 그리고 좋은 날을 굳이 잡겠다며 사주 보는 곳에 가겠다 했던 사람이 "아무 날이나 아들 결혼식날에 안 잡히는 때로 잡아주라." 했다는 말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부모가 더 미웠다. 분노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두 번째 결혼날은 내가 잡기로 해서 1월로 잡았다. 내가 파혼하겠다는 그즈음 아빠는 본인이 만나보겠다며 어느 날은 다녀오셨는지, 나쁜 사람아니든디를 반복했다.


'그래 누가 어르신 앞에서 나쁜 모습을 보일까? 책 안 잡히려면 착한 척해야겠지. 아님 혼인빙자로 신고당할지 모른다는 죄책감이 있을 텐데...'

그리고 아빠가 나에 대한 생각이 너무 하찮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분노가 솟구쳤다.


"아니 괜찮던디, 네가 뭐 하러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냐. 니년이 뭔디 능력도 없는 것이 니깐 것이 먼저 말했냐. 말해도 그놈이 말했어야지!"


"뭐? 무슨 말이야. 당신네들이 뭐가 잘났다고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그 새끼는 미친놈이라 했잖아. 내가 다 말했잖아!"


꾹 참았던 32년 분노가 한 번에 솟아올랐다. 엄청난 두려움을 견디다 도저히 구역질과 혐오가 뒤덮여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자. 어떻게 딸 말을 저렇게 믿지 못할까. 미친 것 같다. 나를 아주 팔아먹으려고 작정하셨구나. 잘못은 그 사람이 했는데. 왜 내가 미친년이야? 우리 집안은 아수라장이었다.


그렇게 어수선한 풍파가 지나간 즈음, 아빠의 새벽까지 연일 이어지는 한숨과 비난들, 그리고 파혼 이후 찾아왔던 그 사람의 반성의 모습들이 다시 긍정적인 해석으로 심정이 왔다갔다 할 즘. 내가 그에게 살짝 문자를 넣자마자 전화벨이 바로 울리 길래. 확신이 들었다. '아~반성했구나.' 하고 이미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게 재회하여 다시 결혼한 우리가 시아버지의 불시에 찾아오는 방문으로 신혼 4개월째부터 매일같이 싸우는 삶을 지속하는 5년이 되는 해, 남편이 고백을 했다.

"너는 모르지, 장인어른하고 만난거."

"뭐?"

"뭐가 그리 이쁘다고 너같이 능력도 없는 것을 애지중지하실까?그런데 장인어른이 너 똥차라고 치우고 싶어서 치웠다니까. 아주 좋으시겄어. 똥차를 나한테 치우셔가지고. 아주 부럽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그래!"


어떻게 저런 거지 같은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 따라 하고 싶어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 그 알 수 없는 말들 의미도 없으니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2-3년 전 또 엄마의 고백을 들었다. 코로나로 한참 왔다 갔다 하며 논문얘기를 하면서 힘들어할 때 엄마가 아빠랑 ㅇ서방이 만나서 한 얘기를 다시 한번 물었다고 하셨다.


"네 아빠가 그날 만나서 그랬다 해야. '니깐 것이 뭔디. 돈이나 바라꼬 그러는 것 같은디. 돈 없다. 돈 있어도 내돈은 절대 못준다.'라고 했다 해."


아.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보통의 부모라면 사위될 사람이 딸 예복의 멱살을 잡았다 하면 흥분하지 않나? 그리고 삼겹살 사줄 것처럼 3일을 준비하더니 온갖 핑계를 대며 사람 놀려가면서 자기돈 18,000원이나 썼다고 아까워하면,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파혼 이후에 찾아가서는 자기돈 걱정을 했다는 게 너무다 한심했다. 내가 창피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저거였구나 그렇게 우리 집안까지 들쑤시며 맘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한 이유가. 나르의 밥으로 인식된 이유가.

아빠와 나르 둘 다 같은 사기꾼이 되는 순간. 어려서 내 젖병을 내 눈앞에서 망치로 처참히 깨더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때마다 방해를 치는구나. 첫 직장을 얻을 때도 무슨 거지 같은 데 다니냐며 비난하시더니, 그 욕망에 부흥하기 위해 신분 상승해 보겠다며 퇴사 후 사대를 진학하기로 한 결정. 편입시험 보러 가는 당일 때도 온갖 비난을 해대면서, 이제 내 결혼에까지 관여해서 모든 것을 망쳐놨다니. 그래서 저 나르가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온갖 난도질을 하는데도 눈감고 있었다는 것. 하늘이 다시 무너졌다.


두 나르, 자신의 안위밖에 모르는 아빠 그리고 남편. 어쩜 그리 그 특징이 너무도 닮았다.

"누나 아빠가 누나 없을 때 늘 그랬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어, ㅇ서방 잘 골랐냐. 내가 고른 것이다'라고 늘 자랑했어."

내가 힘들어질 때마다 아빠의 생신은 이제 갈 수가 없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나는 갈수록 힘든데 아빠는 생신 축하를 받으셔야겠다고? 누구한테? 그 자랑스러운 ㅇ서방한테? 착각하지 마. 그 동안 내가 번 돈으로 다 드린 거야. ㅇ서방은 한 번도 돈을 준 적이 없네. 그런데 난 이제 줄 돈이 없어. 그리고 내 마음이 다 갈기갈기 찢어졌어. 그 후로 가족 행사 2년을 가지 않았다. 도저히 분노가 삭히질 않아서.

우 온갖 두려움을 극복하며 버린 쓰레기를 잘 주어와서 다시 곁에 붙여놓으셨네. 그 굴레를 다시 씌워서 얻는 게 뭐라고.


(난 이제서야 알았다. 그 혼수 취소건에 아빠의 예단비도 있었다는 거 그 돈이 아까웠다는 것. 내가 그 돈을 직접 드렸다면 다시 붙여놓지 않았을 텐데. 차마 파혼 후 정신이 혼미한 내 앞에서 자기 돈을 셀 줄은 몰랐다. 그 돈 300만 원)


과연 니체의 자기 초극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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