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의 비도덕적 언어들은 심장을 겨눈다
칼의 언어_그는 아픈 것인가
그런데 저 사람 괜찮은 사람 같지 않아?
_그러니까 네가 멍청하지. 따지고 보면 나쁜 사람은 없어.
결혼 초 내내 쓸데없는 역사관을 큰소리로 독백
_우리 민족은 모래알 민족이라니까. 일본을 좀 배워야지.
_관점이 다른 거지. 한쪽만 들으면 안 돼. 그거 네 생각이냐? 생각도 없는 게 다른 사람 말만 듣고 그러는 거잖아. 네 생각을 말해. 빨리 5 문장으로 말 못 할 거믄 꺼져.
2008. 임신 4주째
자 보세요 이게 아기집이에요.
_뭐여. 걍 구멍이잖아. 저거 보자고 오자고 한 거야?
2008. 12.11. 조두순 사건 / 징역 12년
(출소일 2020. 12. 12.)
자기야 저것 좀 봐. 어떻게 애한테 저래? 이제 전자발찌 찬데.
_아따 재수 없게 걸렸네. 저 사람은 안 됐네. 그전에는 다른 사람은 안 그랬다는 거잖아.
5.18 광주민주화 운동
자기야 이것 좀 봐바. 봐보라고 사진들.
_아 건들지 마라 너나 쳐봐. 불순 분자는 빨리 처단해야지.
2014. 4. 16. 세월호 사건
자기야 저 얘들 좀 봐 큰일이 터졌어. 어떻게 해.
_아따 돈 되겠네, 이런 악재에 주식을 사야 되는데.
2017 박근혜 퇴진, 촛불 시위
(2016. 10. 29. 1차 집회를 시작~ 2017. 4. 29. 총 23회 범국민대회를 개최. 특히 12. 8-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을 위한 국회 비상국민행동. 3. 9-10일 탄핵 심판을 위한 헌법재판소 집중행동 등은 그 시기에 중대사였다.)
자기야, 촛 불 시위 봐바. 저 물결을 봐바. 놀랍지?
_정치는 잘했다니까.
2001년작 영화 <나쁜 남자> TV방영을 보고
사창가 깡패 두목, 한기가 여대생 선화를 첫눈에 반하자 그를 경멸하는 행동을 보이자, 강제 키스로 대응한 첫 장면
자기야 저것 좀... 어떻게 낯 선 사람을 보자마자 저래?
_당연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누가 흘겨보래? 뭐 하러 사람을 무시해? 저런 것들은 자신보다 더 낮은 위치로 험하게 짓밟아줘야 다시는 안 그러지.
그의 언어는 불쏘시개. 인두. 도끼. 창. 칼. 송곳 아니면 날카롭게 부러뜨린 돌조각이다. 그래 의도적으로 자신 안에 있는 분노나 혐오 때론 정의 내리고 싶지 않아 묻어두었던 주체 없이 넘쳐나는 넘쳐나는 오물과 같은 구토다.
자기 들통났어. 이거 봐 유튜브에 떴다고.
_원래 모든 종교가 그런 거야. 그 후손들이 잘못한 거지. 그럼 직접적인 하나님을 믿어야지. 나는 십자가 교회가 더 문제라고 봐. 그 시대에는 너라도 믿었을 건데.
자긴 안 믿는다고 했으니 가지 마. 왜 가는데?
_어르신들 있는데 평생 봤는데 안 가냐? 네가 뭔데 참견이야. 원래 총각 때부터 매주 갔었어. 신경 꺼. 어차피 너랑 가자고 안 하니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있단 말이야. 그리고 70퍼센트는 믿어. 50퍼센트는 믿어. 30퍼센트는 믿어까지 듣는 중. 난 이제 그가 믿는지 안 믿는지 관심이 없다.
나르는 현재 매주 끌려가던? 자발적으로 가던? 그 교회를 가진 않는다. 민주적 촛불이 타오르는 그 거대한 역사적인 순간과 함께 왠지 남편은 쪼그라들었고 매주 가던 교회는 몇 달에 한 번씩 가더니. 내가 대학원 진학 후 교수님의 존재를 흘린 이후 1-2년 사이에 서서히 발을 끊었다. 나르는 자기만의 틀 안에서 벗어났을까? 다른 '작은 창'이 내어졌을까?
처음 그의 언어들은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지만 아주 천천히 달라지는 모습에서 나르의 형상은 우습다.
그는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은 치유될 수 있지. 넌 아빠의 그늘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거야. 넌 그 종교를 믿지 않은다고 했으니 지켜. 그래서 너 하나만을 보고 결혼한 거니 책임져. 넌 처음에 정상인으로 보였으니까.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혼 초부터 사회적인 중요한 사건이 터질 때는 일상의 소소한 대화에서든 그의 언어는 굉장히 폭력적이고 불쾌하고 혐오스럽고 더럽고 추악하고 냉혈 그리고 멀어지고 싶어 도망가고 싶은 대상으로 의식되어 나 좀 살려줘 무서워 발버둥 치는 내면아이가 활화산처럼 튕겨 올라온 것이다. 그는 딸딸이 아빠다. 그리고 사이비종교를 가진 과거 지역 목사를 했다는 지금은 농부의 아들, 대단하신 아버님 호칭으로 '우리 대주님, 우리 강아지'신가. 왜 그 언어들이 구토스러운지 내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어 난 다시 철학을 배워야 했다.
"교수님 죽기 전에 철학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저는 구천을 떠돌 것 같아요. 제가 미친 건가요? 가족들은 저보고 미쳤다고 해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요. 저희 부모님은 절 믿지 않고, 형제들도 제말을 안 믿어요. 왜 사람들은 진실되지 않은 건가요? 삶이 너무 힘들어요. 왜 삶이 반복되나요?"
"너 정상이야."
아! 내가 서른여섯 해 동안 저 말을 듣고 싶다는 것을 이제 막, 이제야 알게 됐다. 그때부터 교수님은 내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난 또 다른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치유할 대상은 남편의 동생, 도련님도, 시아버지도 아니다. 오로지 나와 그, 우리가 함께 한 순간까지는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그동안은 나르의 내면아이도 구해야지. 어떻게? 할 수 있지. 내 내면아이를 구하면 판이 바뀌는 거야.
내 아픈 네 살의 내면아이, 내 슬픈 여섯 살의 내면아이, 내 고립되어 울고 있는 열네 살의 내면아이가 내게 소리친다. 포기하지마. 계속 나아가라.
"넌 이제 어른이야. 우릴 구원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