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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잃어버린 아이 - 3화

Part2. 한 걸음의 후회

by 달빛기차

※ 이 에세이는 글쓴이의 경험에 픽션이 가미된 팩션(faction)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일하다가 연락을 받고, 핸드폰을 놓쳐버렸다. 믿기 어려운 사실에 굳어버린 내 손을 떠난 핸드폰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명료하던 소리는 아득해졌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거부하기 위해, 시간을 멈출 것처럼 숨을 참았다. 내 숨이 멈추면, 시간도 멈추고 이 모든 것들이 흩어질 듯해서. 한 호흡, 한 호흡 숨 쉬는 법을 잊을 만큼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이별은 편법을 허락 않기에, 기어코 이성이 할머니와의 이별을 인지한다.


이성은 돌아왔지만,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의 위치를 물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앞에 있었다. 사라진 기억과 앞에 다가올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멈췄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던 악몽이길 바라며, 돌아서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정말 저 안에 할머니께서 계실까 봐, 그럼 나 또 돌아서는 거니까. 꿈이길. 이 모든 것이 하룻밤에 흩어지는 꿈이길, 간절히 바라며 문 앞에 섰다.


“드드드드”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전광판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지독한 현실감이 발끝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난도질했다. 진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한 걸음이었다. 그 한 걸음이 무에 그리 무거워서 내딛지 못했을까. 딱 그 한 걸음 앞에 계셨는데. 어리석음은 때늦었을 알면서도 모른 채 하며 후회를 불러온다. 후회는 아무리 해도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마음의 상처를 지연시키니까.

@CapCut생성

“왔니?”

감정적인 내게, 누군가 담담한 인사를 건넸다. 무미건조한 음성이 그 사람 마음 같아서, 울컥 화가 났다. 어찌 그리 담담할 수 있단 말인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고개를 돌리자, 붉어진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보내며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저 담담한 척할 뿐이라는 것을 잊었다. 슬픔을 소화할 줄 아는, 그것이 어른이니까. 붉어진 눈동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너도 어른이라는 것을.


어른의 이별은 일상과의 단절을 만든다. 3일 밤, 4일 낮, 추억을 꺼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에, 애끓는 마음으로 이별을 준비한다. 오는 이와 가는 이 사이에 서서 추모의 말만 담담히 받아 낸다. 마음은 받을 여유가 없으므로.

“아프셔서 고생하셨다면서요, 이만하면 호상이지.”

‘이별에 호상이 어딨어?’ 소리치고 싶지만, 숨을 삼킨다. 무자비한 위로를 되돌려줄 방법이 없음으로. 그대도 ‘호상이 되길’은 악담이므로, 입술을 깨물고 피나는 위로를 곱씹는다.

우리는 모두 생각할 것이다. 하루라도 더 같이 계셔 주시기를.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생각으로. 호상이라니…감히 호상이라니. 흘리지 못한 눈물이 목구멍을 채운다.

그렇게 말들에 다시 상처받고 위로받는 세 번의 밤이 지나고, 할머니는 너무나 가볍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한 줌의 한과 한 줌의 고됨을 내려놓으시고, 영원히 편안할 곳으로. 그렇게 믿어야 하므로,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안녕을 고했다.


이별은 마음을 빼앗고, 물질을 남긴다.

“이 농은 어쩌지?”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직도 할머니 방에 놓여있는 자개농이 보였다. 학과 거북이 친구가 아직도 건재한 십장생 자개농. 꿈에서 그리도 날 찾아왔던 녀석이 눈앞에 건재하게 서있었다. 왜 너만 건재한 건지. 이기적인 원망이 일었다.

“어쩌긴 버려야지. 다 틀어져서 이제 못써요.”

“이모, 아버지가 잠시 나오시래요.”


모두 나가고 방에 혼자 남았다. 아니 자개농과 나만 남았다.

‘너도 버려지는 거니?’

동정심이 담긴 손으로 자개농을 쓰다듬어봤다. 문양마다 쌓인 먼지가 주인을 잃은 티를 냈다. 빛과 온기를 잃고 먼지마저 쌓인 녀석을 보며,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살짝 열린 문틈에 손을 넣고 힘껏 열었다.

“크으-드르르륵”

자개농은 세월의 무게를 토해내며 힘겹게 속을 내보였다. 그 속에는 여전히 솜이불이 들어있었다. 아직도 따스할지 궁금해졌다. 손을 이불속으로 넣었다.

‘뭐야… 왜 차가운데… 우리 할머니 게을러지셨네.’

뜻 모를 화가 났다. 늘 햇살의 향기를 머금고 따스했던 이불마저, 온기를 잃고 주인 잃은 티를 냈다. 그곳에선 더 이상 햇살의 향기도 나지 않았다. 아니다. 안은 더 따스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손을 더 깊숙이 넣었다. 온기를 찾아서 이불속을 헤맸다. 조금이라도 남아있길 바라며.

어느새 자개농 안으로 얼굴을 묻고 있던 나는 기어코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안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를 품어주는 녀석의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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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는 왜 자꾸 들어가.’

“좋아서. 너무 좋아서.”

‘어두운 데서 놀지 말고, 밖에서 놀아.’

“어둡지 않은걸, 할머니 모르지? 여기가 얼마나 따뜻했고, 밝았는지”

‘농 무너진다’

“그러게 이제는 진짜 무너지겠다.”


잊힌 이야기가 다시 귓가를 울린다. 들을 이도 없는 대답을 이제야 돌려드린다. 그때 말씀드릴 것을. 너무 때늦은 대답이다. 곧 사그라질 자개농이라도 할머니께 전해주길 바라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축축이 젖어가는 솜이불은 눈물을 머금으며 온기를 되찾아갔다. 조금 더, 조금 더. 이불 위에서 솜이불을 껴안았다.


“뭐 해? 넌 다 커서도 거기 들어가니?”


[다음 편(마지막)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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