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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잃어버린 아이 - 4화(마지막이야기)

Part2. 자개농을 위한 멜로디

by 달빛기차

※ 이 에세이는 글쓴이의 경험에 픽션이 가미된 팩션(faction)입니다.


“뭐 해? 넌 다 커서도 거기 들어가니?”

이불을 헤집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딸 다 큰 거 맞아? 왜 맨날 거기로 도망가.”

편안한 흰색 원피스를 입고 서계시는 어머니를, 붉어진 눈으로 흐릿하게 바라봤다.

“울다가 지쳤나 보네”

어머니는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어머니의 손끝에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이불속에서 찾던 그리운 온기. 그 온기가 머리를 타고 발끝까지 내려갔다. 난도질당한 심장을 따뜻하게 이어 붙이며. 눈물로 차가워진 몸에 서서히 온기를 더했다.


“엄마”

“응”

“엄마”

뜻 없이 어머니를 불렀다. 어릴 때처럼, ‘엄마’라고. 아무리 불러도 아까운 말을 토해냈다.


“응, 많이 힘들니?”
‘응, 힘들어. 너무 힘들어.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아.’

힘들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

‘안 괜찮아. 왜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지?.’

“정말?”

“그럼, 늘 그랬으니까. 괜찮아질 거야.”

‘그럴 수 있을까…’

“그렇구나, 우리 딸 괜찮구나.”

어머니는 괜찮다는 말에 멈칫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이셨다.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목구멍까지 차오른 ‘힘들다’는 말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런데 딸, 엄마는 안 괜찮네.”

흐릿하던 시선에 초점이 돌아오며, 어머니 표정이 선명하게 보였다. 평소의 온화하던 얼굴 위로 옅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우리 딸이 괜찮다고 해서, 엄마는 안 괜찮은데 어쩌지?”

“엄마?”

그림자는 차츰 짙어지며, 슬픔으로 물들었다. 마치 지금의 내 모습과 비슷한 어머니를 보면서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슬픔을 목 안으로 삼키면서, 웃는 모습이 나와 같았다.


“이렇게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는 법도 잊어버려서 어떻게 하지. 힘들다고 말하는 법도 잊고, 괜찮다고만 말하니, 어떻게 하지? 엄마는 안 괜찮네. 우리 딸 걱정되는데, 어떻게 하지?”

“엄마…”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때구르르르”

“딸, 엄마는 딸이 어떤 모습이라도 다 좋아. 그리고 항상 여기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것만 기억해. 엄마가 우리 딸 많이 사랑한다는 것만 잊지 마.”

“때구르르르”

“엄마….”


“덜컥”

“누나! 뭐 해?”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사촌 동생이 들어왔다.

“와… 다 큰 누나가 지금 뭐 하는 거야. 할머니 보셨으면 농 무너진다고 하셨겠다. 망가트리지 말고 빨리 나오지? 그 몸으로 들어가 있으면 죄책감도 안 들어?”

동생의 시끄러운 소리에 순간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왔다. 그리고 가슴 저리게 알게 됐다. 아주 잠시 잠들었다는 것을. 어머니 꿈을 꾸었다는 것을.


벌써 한참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꿈에 찾아오셨다. 할머니가 떠나신 것이 어머니도 충격이셨을까? 아니면 내가 그만큼 그리웠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잘 못 살아왔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안 계신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먼지 쌓인 문양이 되지 않기 위해, 온기 잃은 솜이불이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어른인 척 살아냈다.

“으으으-“

괜찮았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누나?”

“으…으….윽….으아아앙-“

아니 안 괜찮았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잘 버텨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목구멍을 기어코 넘어왔다.



@CapCut생성

“으앙아아앙”

어릴 때 이후 처음 그렇게 목놓아 울었다. 그리워서. 모든 것이 너무 그립기만 해서.

“누나?? 어어.. 내가 잘못했어. 농담이야!! 농담! 안 나와도 돼! 안 무너져!!”

당황한 동갑내기 사촌 동생이 다가와 따스한 손길로 나를 달랬다. 그 온기가 못내 더 서러워서, 더 사무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울었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이 보였다. 부끄러웠지만, 괜찮았다. 정말 괜찮았다.


“울보, 다 울었냐?”

어느새 듬직하게 큰 동생은 가벼운 농담으로 나를 위로했다. 어릴 땐 여리기만 하던 녀석이 벌써 속이 단단히 여물었다. 누나 위로할 줄도 알고.

“그래. 시원하다. 죄송해요. 놀라셨죠?”

나는 민망함에, 붉어지고 퉁퉁 부었을 눈을 슬쩍 가렸다.

“아니, 다행이다. 그리 울어야지. 네가 안 울면 어떻게 해. 그 속을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참았어. 울 때는 울어야지. 잘했다. 암. 잘했어.”

고모의 한마디가 너무 따스하게 다가왔다. 어린 날 자개농의 솜이불처럼 날 포근히 감싸줬다. 멋쩍으면서도, 따스한 눈빛으로 고모를 바라봤다. 가족, 그래 가족이 있었다. 잊고 있었다. 내게도 가족이 있다는 것을.

가족들은 내가 안정이 되는 것을 보며 방 밖으로 나가셨다.


“그런데 누나, 이거 누나 거야?”

동생은 빨간 유리구슬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구슬을 자세히 보았다. 빨간색 유리구슬에는 얇은 파란 줄을 휘감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아끼던 보물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여기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거 어디서 찾았어?”

“저기 이불 안쪽에서 튀어나왔어.”

나는 다급히 이불에서 내려와서 이불 안쪽을 살펴봤다. 이불 맨 아래 작은 종이 상자가 보였다. 내가 누우면서 찌그러진 상자는 귀퉁이가 찢어지면서, 물건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나는 상자를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하-“

“뭐야? 이거 내 딱지 아니야?”

“그러게, 이건 내 인형이네”

어린 날 자개농에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었다. 그 시절 나의 보물. 장난삼아 빼앗은 동생의 딱지까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나는 그 시절 보물을 버렸지만, 할머니는 기다리셨던 것이다. 내가 찾아오기를. 내 보물을 찾을 날을.


“어어… 또 울지 마! 울보야!!”

다시 눈가가 촉촉해졌다. 울고 싶어졌다. 뭐가 그리 바빴을까.

“안 울어 이 꼬맹아. 울 꼬맹이 꿈이 뭐였지?”

“뭐야!! 누가 꼬맹이야!”

“그니까, 꼬맹이란 말에 화내는 꼬맹이는 꿈이 뭐였지?”

“나야, 누나보다 키 크는 거?”

동생이 농담으로, 어릴 적 꿈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는 나보다 두 뼘은 더 커버렸지만, 여전히 귀여운 동생이다. 녀석에게는 영원히 비밀이지만.

“하하하하… 맞아. 그랬지.”

“그러는 누나는, 나보다 크는 거라며”
“그랬지. 네가 이겼네.”

사실 우리는 동갑내기 사촌이었다. 생일이 늦은 녀석이 맘씨 좋게 누나 대접을 해준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오빠라고 부르라고”

“됐네요.”

나는 보물 상자를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동생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쓰다듬으며 방을 나왔다. 할머니와의 이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도 할머니와 어머니와 이별하는 중이다.


우리 딸 정말 괜찮아?

그럼 됐어.



@CapCut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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