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좀 못해도 괜찮을까요?
오래전에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를 다녀왔었다.
예술과 자유가 살아 숨쉬는 오페라 하우스의 도시, 시드니가 나의 시작점이었다.
사실 나의 워홀은 야물지 못한 마음에, 향수병이 생겨서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왔다. 그 일로 나는 이민은 못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한국의 정과 예의에 너무 익숙해져서 적응이 쉽지 않을 듯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호주에서 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 유혹은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부터 느낄 수 있었다.
시드니에 도착하자 마자 숙소를 정하고, 처음 한 일은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둔 흑역사를 청산하는 거였다. 바로, 비운의 오페라하우스 찾기!
때는 중학교 2학년 사생대회 날, 집결지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초행길이라 출구를 헷갈려하다가, 지나가는 중후한 아저씨께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안녕하세요. 저 길 좀 여쭤봐도 될까요?”
“그래, 어디를 찾고 있는데?”
역시 젠틀하게 승낙하시는 아저씨를 보며,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페라 하우스는 어떻게 가나요?”
“비행기 타고 가야지.”
“네?”
너무 진지하게 하시는 말씀에, 순간 멍해졌다.
“오페라 하우스는 호주에 있고, 예술의 전당은 4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아!”
“껄껄” 웃으신 아저씨는 그 정도는 알아두라고 말씀하시고는 가셨다.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 일이 있은 뒤부터 내 머릿속에는 ‘예술의 전당’과 ‘오페라 하우스’가 실타래처럼 뒤엉켜버렸다. 그 뒤에도 몇 번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거기 있잖아, 오페라하우스”라고 말해서 모두를 웃겼다.
나만 웃을 수 없는 흑역사를 차곡차곡 쌓다 보니, “내가 반드시 비행기 타고 간다”란 마음을 늘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결국 다짐이 실현되었다. 그 순간의 오페라 하우스는 심장이 뛸 만큼, 웅장하고 감동적이었다.
“아저씨, 저 비행기 타고 왔어요. 오페라하우스 여기 있어요.”라고 외칠 뻔할 정도로.
특히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다. 예술의 전당 더 멋있다고 세뇌하며, 바로 옆 ‘로열 보태닉 가든’ 공원으로 갔다.
바다 옆의 공원이라니. 물론 한국에도 있지만, 그 맛이 달랐다.
이제 해외에 나오면 하고 싶었던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펼쳤다.
[패턴 영어 핸디북]
한낮의 공원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얼마나 부럽던지, 그걸 또 해냈다. 달성감에 도취되어 책을 보는 것은 잊고 키득대고 있었다. 그때 한 외국인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Excuse me. May I have a seat?”
당시 나의 회화 실력은 “Hi”와 “Bye”가 다였다. 듣기는 유치원생보다 못했고, 스피킹은 “마미”를 할 줄 아는 아이만 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외국인의 말에 나의 세상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 자리를 비켜달라고?’
나는 끝에서 더 끝으로 자리를 옮기며 말했다.
“Yes!”
그것이 다였다. ‘Please sit down’ 따위의 말은 할 줄 몰랐다. 영어 한마디 못하고 외국에 오다니, 그 순간 부끄러워졌다. 책 제목이 한글임에 감사하며,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책을 들었다.
그럼에도 눈치 없는 그는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Have you been to Sydney for a trip? When did you arrive?”
‘… What?’
차마 처음 떠오른 영어를 내뱉지 못했다. 한국말로 번역해 보면 “뭐라고?”가 된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유고걸이, 중년의 외국인한테 할 말은 아닌 듯했다. 잠시 침묵 속에서 그의 말을 추론한 후 한마디 했다.
“I … arrive today. I don’t speak English, very well. So … sorry.”
‘휴- 해냈다.’
더운 날씨가 아님에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안심했다. 미안하다고 했으니, 더는 말을 안 시킬 줄 알았다. 보통은 그러니까. 하지만 그는 보통이 아니었다.
“No, you’re good at English. Where are you from? Where are you staying?”
이후 벤치에는 혼자서 신나서 이야기하는 아저씨와 멘탈이 붕괴되는 아가씨가 있었다. 서로 동상이몽을 하며, 아저씨는 신났고, 나는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나왔다.
“펠팩트 girl!”
‘… What?’
다시금 찾아온 난관이었다.
당시 나는 문장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단어로 추론하고 답을 했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 못 할 단어가 나온 것이다. 난 별수 없이 가방에서 전자사전을 꺼냈다. 그리고 최대한 웃으며 말했다.
“펠팩트 스펠링 플리즈-”
[Perfect]
‘퍼펙트 아닌가요?’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영어의 발음이 국가별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충격이었다.
그 뒤 영어는 나의 부끄러운 장벽이자, 구멍 난 둑 같았다. 아르바이트도 영어가 많이 필요 없는 자리로 찾았고, 숙소도 한국인들만 있었다. 당시 내가 호주에 간 이유가 ‘영어’나 ‘여행’이 아닌, ‘일상 탈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없을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
그 아까운 기회가 그래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됐던 외국에서 생활하는 거라, 영어와 완전히 단절될 순 없었다. 생활 곳곳에서 외국인과 간단히 대화할 일이 생겼다. 재미도 있었고 난관도 많았다. 그 중 은행 계좌 개설하면서 ‘펠팩트’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당시 은행 직원분이 구사하는 발음이 내가 아는 것과 차이가 있었다. 영어실력이 미천한 나는 펠팩트 같이 낯선 발음들이 난무하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더욱이 은행 업무는 추론해서 답할 수 없기 때문에 발을 동동거릴 수밖에 없었다. 외워간 몇 마디 하다가 멘탈이 와르르 무너질 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같이 살던 동생이 “Please open a bank account.”라고 말하며, 나를 도와준 것이다.
동생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며, 부끄러움이 마음속에서 파도를 탔다. 이렇게 영어 앞에 나약하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고걸로서 동생 앞에 위축되는 일은 참을 수 없으므로! 나는 영어를 사용할 만한 곳을 베짱이처럼 천천히 찾아다녔다.
가장 먼저 만만한 도서관에 가서, 만만치 않은 회원증을 만들고 책을 빌려 보기로 했다.
“Excuse me. I don’t speak English, very well. So I’m sorry. May I have books?”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