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바라보면 안 될까요?
“Excuse me. I don’t speak English, very well. So I’m sorry. May I have books?”
말도 안 되는 영어를 더듬더듬 말했고, 도서관 사서는 웃으며 한마디 했다.
“You speak English well.”
그날 내가 어떻게 회원증을 만들고 책을 빌렸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서분의 한마디에 용기와 책을 얻고 도서관을 나왔다. 참고로, 한국어 책이었다.
용기 100% 충전한 나는, 근처 쿠키 상점에 가서 추가 도전을 했다. 직원에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질문을 한 것이다.
“Is this delicious?”
“What?”
직원의 반응에 소심해진 나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Is this delicious?”
‘이즈 디스 딜리셔스’라고 말하는 내 발음이 안 좋았는지, 여러 번 말해도 직원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결국 용기가 1% 남았을 때, ‘에라이’라는 마음으로 소리쳤다.
“Is this delicious!!!”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결국 “Yes, it's delicious.”란 답을 얻었다. 얼굴은 벌게졌지만, 승리했다.
그 무렵 셰어룸에는 새로운 룸메이트가 들어왔는데, 외국인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그 친구가 말을 시키면 심장이 두근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는 사람이라서 실수할까 봐 더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도 대답은 해야 하니, 안 되는 영어와 바디 랭귀지로 소통을 시도했다. 그때 그 친구가 나를 보고 한마디 했다.
“It's not that you can't speak English, it's that you lack confidence.”
익숙하지 않은 말들은 빠르게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더듬거렸고, 다른 룸메이트가 통역을 해줬다.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이 없는 것이라고. 자신이 하는 말을 대부분 알아들으면서도 용기를 내지 않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지금은 다시 잊어버렸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그 룸메이트의 말이 맞았다. 완벽하지는 못해도 더듬더듬 이해했고, 온전한 문장은 아니더라도 말을 했다.
구멍 난 둑이 단단해지고, 낮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어를 조금 편안하게 대하게 됐다.
사실 호주에 살면서 낯선 것은 영어만이 아니었다. 외국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언어보다 문화 차이지도 모른다. 십 년간 몸에 밴 습관이 한순간에 바뀔 수 없듯, 사고방식도 마찬가지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가다, 떡진 머리를 여성을 봤다.
‘어머… 옷은 깔끔한데, 머리가 저게 뭐야. 사람들이 보는데’ 이란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나만 그녀를 바라봤다.
‘흠…’
작은 고민이 시작된 날이다.
그날 이후 시선이 가는 일들이 생각보다 자주 발생했다. 8시 이후면 한산해지는 거리, 사람들이 모이는 클럽, 점심시간에 마시는 맥주 한잔, 직장인들의 자유로운 복장, 길거리에서의 스킨십들.
한 번은 동성끼리의 찐한 스킨십을 보기도 했다. 역시 나만 놀라서 바라봤고, 아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성끼리 그래도 눈총 받는 곳에 있던 내겐 충격이었다. 여기서 충격의 포인트는 문화 차이였다.
거기에 시드니 옥스포드 거리에서 열린 ‘게이 앤 레즈비언 마르디 그라’ 축제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날 내 안의 견고한 장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벽에 금이 간다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벽 안에 서서 금이 간 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치마로 단단하게 무장한 채.
나는 열이 많은 체질이다. 한여름에는 앉아만 있어도, 다리에 땀이 흘러서 일어날 때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래서 반바지라도 입으면, 맨 살이 닿지 않도록 끝으로 조심히 앉았다. 그런 내가 치마를 입을 때는 속치마나 속바지를 꼭 입었다. 그건 내게 예의고 습관이었다.
“치마를 입을 때는 속치마나 속바지를 입어야 해.”
“왜?”
“비칠 수 있잖아.”
“안 비치는 원단인데?”
“앉을 때 보일 수 있잖아. 그러니 늘 조심해야지.”
교복을 입을 때 일이다. 그럴 거면 왜 교복을 치마로 만들었냔 말이다! 바지로 만들 것이지. 여자는 치마가 필수, 속치마는 예의였다. 속치마를 예의로 생각했으면서도, 그게 왜 예의인지도 모른 채 습관처럼 입었다. 그래서 아무리 더워도 입고 다녔다. 그게 단정한 거고, 안 입으면 예의 없는 사람이 될까, 남의눈이 무서웠다.
그런데 호주에는 그런 사람이 안 보였다. 속치마를 입는 사람이 안 보였다는 말이 아니라, 타인을 신경 쓰는 사람이 안 보였다. 모두 자신의 시선 안에 있었다. 그들의 문화를 쫓던 나의 시선도 점점 그들과 동화되어 갔고, 어느 날부터 이방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 오롯이 나만 바라보는 법을 아주 잠깐 배웠다.
코끼리 다리 때문에 신경 쓰던 짧은 반바지를 편안하게 입고 시드니 거리를 활보했다. 계절감도 없고, 스타일도 안 맞는 옷들을 내 취향껏 입고 다녔다. 그래도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점점 자신감이 생긴 나는, 결국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금발을 해보겠어!”
매번 단정한 갈색, 조금 튀면 블루블랙 정도만 하던 내게 큰 도전이었다. 호주에서 미용실은 너무 비싸서, 직접 염색하기로 결정했다. 룸메이트의 도움을 받아서 머리에 덕지덕지 발랐다. 30분 후.
“으악!!!!!!!”
비명을 질렀다. 머리카락이 밑에서부터 그라데이션으로 염색된 것이다.
“왜 그래? 헉! 머리카락??”
“나… 검은색 염색했었는데 잊고 있었어.”
밝은 갈색으로 염색했다가, 지겨워서 블루블랙으로 염색했던 것을 잊은 것이다. 그래서 새로 자란 정수리 부분만 붉은빛이 도는 옅은 갈색으로 염색되었다. 뚜껑이 생긴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래 바라던 금발이 되었다면, 난 정말 완벽한 투톤 뚜껑을 보유하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몇 달 뒤 향수병이 생겨, 그라데이션 머리카락을 들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때 받은 시선은… 다시 호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온 실감이 났다.
며칠 뒤 면접을 봐야 했기 때문에 머리는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했지만, 다시는 더운 여름에 속치마를 입지 않았다.
그리고 영어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 중 강박을 떼어버렸다.
덕분에 지하철역에서 헤매는 외국인을 보고 “Can I help you?”라고 말했고. 출구번호를 찾지 못하는 외국인에게 말은 못 해도 직접 데려다주었다. 완벽하게 말하지 않으면 부끄럽다는 생각을 내려놨다. 타인의 시선에서 아주 조금 자유로워진 순간이었다.
얼마 전에 다른 외국인을 만났다.
그는 또 내게 영어로 말했다. 이해하는 말들은 단어라도 던지며 대답했지만,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그래서 나는 영어용 긴급 버튼 같은 말을 던졌다.
“I don’t English, very well.”
오랜만이라 speak를 빼먹었다. 그럼에도 그는. “You speak English well. hahaha” 라며 웃었다.
“Oh~No!”
뭐든 반복해서 습관이 되어야 바뀐다. 영어와 멀어지니 나는 다시 영어 울렁증이 생겼고, 타인의 시선 속에 사니 다시 그 시선에 신경 쓰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알고는 있다. 그것들이 모두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다짐하고 노력한다.
나의 시선 안에서 살기 위해. 문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선에 무심하신가요?
그럼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