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딸과 산책 중입니다.
지렁이 가루가 완성되던 밤, 아버지와 하고 싶은 일들을 잔뜩 가슴에 써 내려갔다.
‘아… 뭘 먼저 하지? 내 친구를 먼저 소개하고, 아니야 태권도장에 모시고 가야겠다. 맨날 여자라고 놀리는데, 아빠가 이야기하면 녀석들도 한 마디도 못하겠지?’
잔뜩 써 내려간 리스트의 순서를 정했다.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순서를 바꾸고, 변경하며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몰랐다.
다음날 또 지렁이 사냥을 나갔다. 이미 학살자의 위명을 얻었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저 그리움만큼 잡으면 됐다. 아버지가 빨리 오실 수 있도록, 보고 싶은 마음의 무게만큼 잡고, 거기에 그리움을 더해서 잡았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사랑받고 싶은 만큼 녀석들을 담은 주머니의 무게를 더해갔다.
나는 그렇게 사랑에 ‘당연’은 붙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갔다. 부모에게조차 ‘당연’을 바라면 안 된다는 것을 지렁이의 무게만큼 배웠다.
그리움만큼 무거웠던 포획물은 할머니의 노고로 모두 약이 되었다. 그리고 나 대신에 아버지의 곁으로 떠났다.
‘우리 아버지 잘 부탁해!!!’
지렁이에게 아이라서 할 수 있는 잔혹한 기도를 전했다. 내 안부와 함께. 하지만 지렁이가 떠나고도 한참 동안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그때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 너머 어딘가에 아버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밥 먹다가도 쳐다보고, 놀다가도 들어와 수화기를 들어보았다. 멀쩡한 전화기를 의심하며, 억울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아스팔트 아지랑이처럼 내 마음도 억울함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할머니, 아빠 연락 없었어요? 약은? 약은 드셨데요?”
아버지는 괜찮은지, 약은 잘 드시고 계신지 또 필요하지 않은지.
묻고 또 물으며 울리지 않는 수화기의 배배 꼬인 전화선 마냥 속마저 배배 꼬여갔다. 먹었으면 잘 먹었다 인사하는 건 어린아이도 아는 예절이다. 예절도 모르는 아버지 같으니라고.
그리움은 원망이 되고 원망은 미움이 된다. 그리고 덧대어진 미움은 눈물 한 방울에 다시 그리움이 되었다.
얼마 뒤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약을 잘 드셨으나, 또 다른 민간요법을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잘 드셨구나. 잘 드셨어!’
그 뒤 아버지의 약이 되는 익모초를 뜯으러 논으로 밭으로 뛰어다녔다. 햇살에 타는 줄도 모르고, 그 시절 아이는 그 순간을 행복해했다.
‘엄마, 아빠 보고 싶다.’
이 한마디를 가슴에 묻고.
‘할머니… 아빠 언제 와요? 엄마는 언제 와?’
세월의 속도보다 빠르게 커버린 아이는, 이 말이 할머니를 슬프게 할까 봐 묻지 못했다.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 그리움을, 외로움을, 나의 안부를 대신해 줄 익모초와 지렁이를 찾으며 그 시절을 보냈다.
“왕-“
우리 집 개딸이 짖는 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래그래, 가자. 잠시도 생각을 못 해요.”
산책 중임을 기억한 나는 다시 길을 걸었다. 그날의 지렁이를 조심조심 피해 가며. 많아도 너무 많이 죽어 있었다. 그날을 계속 기억하라는 듯이.
아버지는 결국 몇 년 뒤, 멀끔하신 모습으로 내려오셨다. 아팠던 흔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 나으셨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밤새 고르던 체크리스트 항목은 하나도 꺼내지 못했다.
이제는 너무 낡아버린 체크리스트만큼, 나도 컸다. 내가 크는 사이, 쌓인 그리움은 마음을 시시때때로 두드렸다. 작은 두드림이 울림이 되어, 금이 갔다.
생각이 여물수록 친구의 아버지를 볼 때, 드라마에서 가족을 볼 때. 왜 나는 평범하지 않은지 의문이 되었다. 그런 마음이 금을 메꿔가면서 아버지를 향한 단단한 마음의 두께가 생겼다. 그 두께만큼 우리는 서로를 어색해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서운할 아이를 위해 낚시를 준비한다거나, 내가 작은 아버지를 드리겠다고 키운 닭을 잡으며 노력하셨다. 하지만, 어색함의 원망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 한 번만이라도 줬다면. 편지 한 통이라도 있었다면. 이란 때늦은 마음들은 접어두고.
아이가 잡은 지렁이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만이라도 알아줬다면.
“왕왕왕!!”
“안돼!”
갑자기 개딸이 리드 줄을 끌어서 살펴보니 아직 죽지 않은 지렁이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녀석은 자신이 가는 길이 어딘지도 모르는 듯했다. 이대로 두면 얼마 가지 못해서 길 한복판에서 죽을 것이다. 잠시 고민을 했다. 새벽바람이 분다. 곧 태양이 온 세상을 데울 것이다.
‘그럼… 너도 타들어가겠다.’
그때의 나의 마음처럼. 근처에서 나뭇가지를 가지고 와서 녀석을 조심히 옮겨주었다. 직접 만지는 것이 아님에도 온몸에 낯선 감각이 지나갔다. 도대체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맨손으로 잡았단 말인지.
‘그만큼 간절했던 거겠지.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그 시절 나는 사랑은 어른이, 타인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받기 위해 그 나이의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습관이 지금도 내게 말한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그런데 누구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왕-“
“개 딸, 엄마 생각 좀 하면 안 될까?”
“왕왕-“
비둘기를 쫓으며 좋아하는 개딸을 보니 이제 와 무엇이 중요한가 싶었다.
“쓰-읍. 안돼. 이리 와!”
녀석은 날아가는 비둘기를 아쉽게 쳐다보고는, 신나는 눈동자로 내게 다가왔다. 꼬리가 아주 신이 났다. 새벽 산책이 녀석의 취향에 맞은 모양이었다.
“그래, 좋으면 됐지. 그래도 괴롭히지 마! 안돼! 쓰-읍”
타이밍이 늦어서 이해도 못 할 녀석에게 주의를 한번 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녀석이 좋아하는 궁딩이 팡팡도 잊지 않았다.
지나간 사랑이나 오지 않는 사랑에 애쓸 필요 있나. 개 딸과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지.
‘개 딸, 사랑한다.’
다시 산책을 한다.
오늘은 산책을 하셨나요?
그럼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