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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Oct 26. 2019

자기개발로 성공하기란 어렵다

한정된 의자뺏기 게임. 실력과 운 + 타고난 자원의 차이로 결정되는 승패

바야흐로 지금은 자기개발 시대

서점에 가면 넘쳐나는 자기개발 서적들. 이 책들을 읽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제대로 미치기란 어렵다(?)

서점 방문은 시간을 때우는데 정말 좋다. 특히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했을때, 역 근처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약속시간이 되어 있다. 아무래도 이럴 때는 책을 자세히 탐독하지는 못한다.(뭐..아직 내 책도 아니고) 대신 책들의 종류와 제목들을 유심히 보고는 한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책 제목이나 표지가 있으면 책을 펼쳐서 인상깊은 목차 내용을 찾아 조금씩 읽는다. 구매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5~10분. 원래 기다리던 작가의 책이 아니라면, 탐독하고 숙고하며 책을 사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서점에는 책의 범주 별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가끔 가는 교보문고에서는 잡지/정치·사회·수험서/경제·경영·자기'계발'/외국어 등.. 뭐 이러한 카테고리로 책들과 그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경제·경영·자기'계발'> 도서는 사람들이 오며가며 가장 보기 좋은 곳에 놓인다. 시간상 자세히 탐독하기 어려운 우리에게 이 곳에 놓인 책 제목들은 참 매혹적이다. (이제는 트렌드가 지났지만) 책들은 '무언가에 미치라'고 말하거나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사회적 성공에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거나 '중요한 업무, 처세에 대한 본질'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매대에 놓인 책들은 저마다 말한다. 아니 외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당신은 성공에 한 걸음 다가갑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모른다면 당신은..?
(도태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무림 세계 속 전설의 비공서적처럼 경제! 경영! 자기'계발'! 매대 책들은 매력적인 제목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이 책들이 말하는 내용을 모르면 왠지 뒤쳐질 것만 같다. 그래서 책을 사게 되는 효과도 분명히 있다. 원래라면 안 볼 책 안 살책을 보게 만드는 효과가 분명히 있고, 뜻 밖에 그 책이 괜찮을 수도 있어서 딱히 반감은 없다. 다만 책이 제목 카피만큼 매력적이지 않을 때 아쉬울 따름이다. (책이 나무에 덜 미안해야지 말이야)


약속 시간을 임박해서 서점을 나서다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 <자기 진화를 위한 몰입의 재발견>은 그 내용이 정말 괜찮았다. 제목은 왠지 구체적 방법론스러운 내용일 것 같았는데 읽어보니 몰입flow(몰입의 순간은 마치 흐름을 타는 느낌이라 이 저자는 'flow'라고 부른단다.)이라는 현상과 원인에 대해 꽤나 본질적인 탐구를 한 좋은 책이었다. 반대로 방법론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수 있는 책이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저자인 미하이 칙센 미하이는 '몰입'에 관한 가장 권위자 중 한 명이었다.


교보문고 광화문 점의 내부 안내도


이쯤되면 많이 팔리는 책인 '자기계발서' 혹은 '자기개발서'에 대해 또 자기개발, 자기계발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전은 자기'개발' 그리고 자기'계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기개발 自己開發

본인의 기술이나 능력을 발전시키는 일.
영어로는 self development


자기계발 自己啓發

잠재하는 자기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


정의대로라면 자기'개발'은 <30일만에 브론즈 리그 탈출하기> 같은 구체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기술과 방법론 익히기, 능력 발전과 관련된 것 같고, 자기'계발'은 보다 내면적인 사고 방식 개선 및 전환과 관련되어 보인다. <아침형 인간은 왜 좋은가?>, <당신의 생각을 바꾸면 당신은 행복해질 것입니다>은 자기 계발에 가까울 것이다. 혹시나 해서 더 찾아보니 국립 국어원은 자기개발, 자기계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며 다만 '개발'은 인간 외에도 '토지 개발', '핵개발'처럼 물리적이고 실질적인 대상에도 활용할 수 있어 더 활용 범위가 넓다고 한다. 한 마디로 사고관에 전환을 촉구하면 '자기계발', 구체적인 능력 발전에 초점을 맞추면 '자기개발'이다.


서점 내 가장 잘보이는 매대에 위치한 '자기개발'서 혹은 '자기계발'서

구체적인 능력 증진이든, 사고의 전환을 촉구하든 책들은 말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닫지 않으면 도태될 지 모른다"


단행본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는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이 만큼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 사는 게 참 어렵군.' 정도는 확실히 느끼셨을 것이다. 세상에는 예외가 많고 다양한 상황들이 대단히 많기에 이 책은 애초부터 구체적인 방법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독자의 삶에서 작은 실천을 위한 생각의 계기라도 되었다면 이 책은 역할을 다했다. 사실 뭐 책이라는 것이 실천가능성을 배제하면 삶을 바꾸는데 그다지 영향은 없는듯 하다. 아무튼 넓은 범주로 보면 이 책도 '자기계발'서다. 일상 속 마주하는 구체적 어려움을 '인식하자'는 측면에서는 그렇겠다. 이 책은 서점 매대 어디에 놓이게 될까. 많이 팔리기 위해서라면 <경제·경영·자기계발>에 놓여야 할 것인데.. 이 책은 정말 잠재하는 자기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주는가..??? 이 책을 집어서 여기까지 읽어준 당신께 감사하다. (정말입니다. 이 책은 당신의 삶에 뭐..어딘가 쓸모가 있을 겁니다! 아직 사지 않으셨다면 일단 사보세요! 돌가루를 많이 넣어서 냄비받침으로도 좋습니다.)


책은 시대의 트렌드를 이끄는가.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는가. 공산당 선언 같은 인류사에 남을 희대의 서적이 아닌 다음에야 후자에 가까울 것이지만, 어느 쪽이든 책은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점만 보자면 지금 시대는 바야흐로 자기개발(혹은 자기계발)과 경쟁의 시대인 것이다.


사회적 성공 = (개인의 실력 + 보유한 자원의 활용) X 운

개인의 능력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개인의 탁월함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젠장 실력도 있고 돈도 많은데 운이 나빴어 ㅠㅠ(그리고 아이언맨을 만듭니다)

자기개발서(이제부터는 자기계발서와 구분없이 자기개발서라고 부르겠다)들이 강조하는 것은 대체로 개인이 투입가능한 노력과 그로 인한 개인 역량의 증진이다. 개인은 언제나 더 나은 모습을 추구해야하므로 개인이 탁월해지는 것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꽤나 많은 자기개발서들이 누구나 '대단한 사람'처럼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들이 말하는 목표는 아마도 <사회적 성공™>일 것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사회적 성공™>이 무엇인가하면 대체로 큰 집을 가지는 것이고, 좋은 차를 타는 것이고, 생존과 생활을 넘어 남들과 비교할 때는 '꽤나 많이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지위가 있음도 물론이다. 애석하게도 보통 이 책들은 그 성공을 위한 <구체적 스킬>들을 '인지'시키는 정도를 잘 넘지 못한다. 내가 과문해서 잘 모르는 것일 수 있겠으나 꽤나. 자주. 오랫동안. 자기개발서가 있는 서가를 탐독도 해보고 사서도 읽어본 바, 어떤 책이 말하는 구체적 기술들이 성공으로 바로 직결될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개인의 일상과 업무에서 적용가능한 구체적 기술이 성공을 이끌 수 있을까?

자기개발서 시장이 파는 것은 성공하는 법이 아니라

개인이 나아지고 있다는 효능감은 아닐까?


철저히 편견이자 단견임을 전제로 말하자면 어떠한 방법들이 구체화될 수록 그것은 아주 유용하거나 대체로 무용하다. 어떤 기술이 구체적이라는 것은 특정 현업 영역에서 실무적일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라면 실무 단위에서 생산성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디자인 소프트웨어 도구인 스캐치를 잘 다루는 법을 담은 책이 있고, 그 책에 저자만의 좋은 노하우가 있다면 해당 툴을 다루는 디자이너 실무자에게는 유용할 수 있다. 반대로 구체적 기술의 무용함은 기술과 그 분야가 '구체적일' 수록 융통되는 범위가 지엽적이고, 그 자체만으로는 다른 영역으로의 응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기술을 배워두면 도움은 된다지만 자기 생각과 해석없는 무분별한 기술 수용은 <사회적 성공™>과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애시당초 어떤 기술이 환금성이 매우 높은 구체적인 고급정보라면, 관련 책을 집필, 편집하는 과정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서 시장에서의 의미는 미미해질 것이다. 시장이 파는 것은 엄밀히 말해 자기개발의 방법이 아니라, 자기개발하고 있고 개인이 나아지고 있다는 효능감이 아닐까. 자기 개발의 사고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노력하고 나아지고 있는 자신에 심취/도취하기 쉽다. 때문에 자신 밖 관계와 사회를 보는 눈을 약하게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게 한다. 개인의 성공에는 정말 정말 치명적이다.


잠시 옆길로 새자. 굳이 또 짚고 넘어가고 싶은 존재는 이른바 '힐링' 서적들이다. 이미 앞서 다른 글<불안하지 않기란 어렵다>, <꾸준히 노력하기란 어렵다>에서 그 해악은 지적한 바 있지만 힐링 서적들은 자기개발과 더불어 인민에게 아편(?)을 제공한다. 힐링 서적과 그 담론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자신을 괴롭게하는 현실을 직면하기보다는 외면하게 하고 자기 내면을 위로하는 행위에 과몰입하게 만든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방향제를 뿌리는 짓이다. 그 점에서 욜로YOLO 담론(You Only Live Once : 인생은 한 번 뿐이야! 그러니 지금을 즐겨!)도 힐링 담론과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 현재 직면해야할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미래 가치를 당겨쓰게 하고, 끝내는 삶의 기회를 갉아먹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쩌면 더 유해하다. 이 친구는 차사고 여행가느라 돈을 당겨 쓰게하거든.


자기개발서와 힐링 서적들 모두 비판적 생각없이 읽으면, 개인에게 냉정한 현실인식을 회피하게 만드는 악영향이 있다. 고 생각한다. 책의 저자들은 독자들이 그렇게 되기를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현상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책임지려는 태도가 쓰는 사람과 그 산업에 있는 사람들의 직업윤리라고도 생각한다. 다시금 생각나는 질문. 책은 시대의 트렌드를 이끄는가.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는가. 무엇이 되었든 독자인 우리는 자기 생각을 해야한다. 책이 말하는 내용에 대한 자기 주관과 자기 해석을 가져야한다. 자신 밖에서 자신, 사물,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인 '메티인지'를 높여야 한다.


자기개발, 힐링, YOLO 등의 담론에 심취하면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사회적 성공™>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주변과 세상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없다면 성공은 요원할 것이다.


굳이 옆길로 새서 자기개발과 더불어 힐링과 YOLO를 끌고온 이유는 우리의 사회적 성공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당신의 사회적 성공은 당신의 실력과 가진 자원의 활용과 운이 작용하는 복잡한 함수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에 대한 이러한 전제에 동의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개인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자기 자신과 주변 그리고 세상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개발은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은 절대 자기 자신의 탁월함만으로 성공에 이르지 못한다. 그렇기에 주변을 보아야하고 세상을 보아야한다. 그냥 보아서는 안되고 자세히 보아야 한다. (한편 주변을 '의식'하는 것과 '인식'하는 것은 한 끝차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자기개발서는 주로 '의식'하지 말라고 하지만,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은 '인식'하는 회로를 꺼버린다.)

어떠한 서퍼도 파도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아무리 유능한 서퍼라도 없는 파도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서퍼가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히 기량을 갈고 닦으면서 '좋은 파도'가 있다고 예상되는 곳으로 가서, 파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과정 전반은 운과 환경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물론 탁월한 서퍼는 같은 상황에서도 더 나은 퍼포먼스를 해낸다. 실력자 서퍼는 부단히 파도를 만나왔을 것이다. 크고 작은 파도를 기다리고 그 위에 올라서고 물도 많이 먹어야한다. 그러다보면 그는 일생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진짜 파도'가 왔을 때 그는 자유롭게 파도를 타는 '테이크 오프'를 해낼 수 있겠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말이지만 성공하려면 부단한 시도를 해야한다. 첫 번째 시도로 성공을 거둘 수 있겠지만 확률상 매우 낮은 확률이다. 그리고 역시나 매우 높은 확률로 어떤 사람이 성공했을 지어도 그는 그 성공을 수성할 실력이 모자랄 것이고, 훌륭한 조언자 그룹이 없다면 그는 자신의 성취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실패 후 그가 다시 '시도'할 수 있냐는 것이다. 만약 시도 후 실패를 했을때 이전 상황으로의 복구가 어렵다면 우리는 시도를 주저한다.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현상 유지나 점진적 발전만을 선택한다.


<사회적 성공™>은 <개인의 실력>과 <가진 자원>과 <운>이 작용한 결과다.

개인이 가진 자원, 특히 부는 타고난 환경과 강한 관련이 있다.

많은 자원을 가진 이들은 성공을 위한 시도의 빈도과 크기를 높여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시도'로 인한 성공의 크기를 키우려면 '많이 거는 것'이 좋다. 많이 걸면 리스크도 커진다. 이는 상식이다. 같은 실력, 같은 시대적 환경이라면 단일 시도에 자원(돈, 노동력, 시간 등)을 '많이 거는 것'이 시도에 따른 효과를 산술적 증가(1, 2, 3, 4, 5, …)가 아닌 기하급수적 (1, 2, 4, 8, 16, 32, …)으로 증폭시키는 요건이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시도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큰 시도에 따른 실패는 개인을 궤멸적 타격으로 이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시도는 작은 차원에 머물게 되고, 그것으로 얻는 효과도 미진하다.


성공을 위한 시도의 크기와 빈도는 개인이 보유한(주로 타고난) 자원에 매우 강력하게 종속된다. 연쇄적 시도가 가능해야 성공의 확률도 높아지고, 시도 마다 투입하는 자원이 커야 성공의 크기는 커진다. 하지만 실패는 위험하기에 타고난 자원이 적은 사람들은 시도의 빈도를 줄이거나, 시도 당 투입하는 자원을 줄인다. 그러니까 같은 실력을 가졌다는 전제 하에, 살면서 단일 시도당 비슷한 운을 만난다는 전제하에 <타고난 환경>은 당신이 성공의 기회를 얼마나 증폭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타고난 환경의 의미는 가장 일반적으로는 '수저'다. 어떤 개인이 더 풍요로운 경제 자본, 문화 환경, 인간 관계를 활용할 수 있는 조건에 놓여있냐는 것. 우리는 태어나며 부모를 선택한 적이 없고, 최초 국적을 선택한 적이 없고, 1살때 사는 지역을 선택한 바가 없다. 이것은 우리의 시작을 규정한 강력한 토대였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타고난 환경>과 <운>이 그렇게나 성공에 결정적이라면 자기개발은 무의미하고, 우리에게 성공은 불가능한 꿈같은 것인가? 극단적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개발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함의 추구'를 멈추지 않는 것

당신이 탁월함을 추구하고 있고, 나쁘지 않게 해나가고 있다면 어쩌면 당신은 잘 될지도 모른다.

의자 갯수는 정해져있고, 모두가 앉을 수 없다.

<의자 뺏기 게임>에서는 언제나 게임 참여자들보다 앉을 수 있는 의자 숫자가 더 적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누군가는 앉을 수 없다. 모두가 전교 1등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성공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회적 성공은 희소한 가치이고 모두가 획득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사회적 성공의 보상은 크고 많은 이들은 성공을 갈망한다. 하지만 모두가 사회적으로 성공(부와 지위의 획득)할 수 없다고 해도 성공하지 않은 삶이 나쁜 삶이나 실패한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묻고 싶다. 매우 높은 확률로 <오지도 않을 성공>이 인생의 모든 가치에서 정말 최우선일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말이다.


<의자 뺐기 게임>처럼 사회적 성공은 희소한 가치다.

모두가 성공할 수 없고, 내가 성공한 개인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나는 성공을 지향하되, 맹목적으로 성공만을 추구하느라 삶을 낭비하지도 않을 것이다.


고성장기가 아닌 사회에서 새로운 성공 의자는 잘 생기지 않는다. 성숙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는 통일 정도를 제외하면 사회 전반이 새롭게 천지개벽할 기회가 많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의자를 놓고 실력이 뛰어난 개인들, 타고난 자원이 많은 개인들, 둘 다 가진 이들 역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다. 운까지 닿는다면 누군가는 새롭게 성공 의자를 쟁취할 것이다. 그들의 탁월함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들에 비하면 솔직히 나의 성공은 지극히 확률이 낮다. 그것은 저성장기 얼마 안되는 성공 의자를 쟁취할 정도로 지금의 내가 탁월한 개인은 아닌 탓이요, 많은 자원을 가진 인간도 아닌 탓이다. 국민연금과 금융회사는 어떤 개인의 현재 연령과 소득, 질병 유무, 가정 환경 등으로 그 개인에게 앞으로 남은 삶 동안의 경제적 성취를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다. 나 역시 통계 속 정규분포에 가까워지는 나와 비슷한 여타 개인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남들이나 나나 유달리 바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성공하길 바란다. 나와 주변, 세상을 관찰하기를 게을리 하지도 않을 것이고 가장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뭔가를 부단히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내게 오지도 않을 성공 때문에 삶을 낭비할 생각도 없다. 성공에 대한 맹목적 추구로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청춘을 색깔없이, 재미없이, 낭만없이, 향기없이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그렇게 청춘을 보낸다면 나는 내 삶을 낭비한 것이다. 내게 성공은 오면 정말 기쁜 일이고, 오지 않았다면 에이 뭐 할 수 없지. 정도의 가치다. 삶의 과정이 재밌고 그래서 즐거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삶이 곤궁하지 않고 비참하지 않을만한 실력을 갖추고 성공할 수 있는 좋은 운이 온다면 내가 잡을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나는 고교 시절에는 전혀 생각해본 적 없던 경영학과를 진학했다.(그리고 지금도 다니고 있습니다...?) 새내기때 나는 경영학이 나와 대단히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가 지금 내가 가장 경계하는 <배제적 사고>의 일종이다. "○○이 아니면 안돼!" 또는 "□□은 절대 할 수 없어!"를 너무 쉽게 예단하는 것이 그 전형이라 하겠다. 아무튼 스무 살 나는 서점에 가도 의식적으로 사회과학 서가에만 갔다. 지적 허영심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그때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은 손바닥 만한 크기인 작은 책.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학문>이었다. 이 책들은 거창한 제목과는 다르게 강의록인지라 구어체로 비교적 쉽게 정치와 학문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그는 특히 <직업으로서의 정치> 후반부에 아주 인상적인 구절을 남겼는데 나는 그 말에 뼈에 새기는 듯한 강한 충격을 받았다.


무언가 노력을 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할때, 희망의 좌절과 마주한 절망 앞에서 그대들은 이 말과 그 정신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되뇌이고 좌절을 이겨내고
 훌훌 털고 있어나 겸허히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기억 나는대로 썼기 때문에 원문 그대로가 아닌 문장의 재구성은 있지만 내용은 이러했다. 그가 함께 말한 '널빤지를 뚫는 것'의 비유도 잊을 수 없다. (그 대상은 책에서는 사회였지만)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널빤지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다고 한다. 너무 약하면 뚫리지 않고, 너무 강하면 판이 깨져버린다. 적절한 힘으로 그러나 꾸준히 계속 구멍을 내야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의 책임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나의 경영 전공 판때기는 작살이 나고 있었다. 제2 사춘기를 겪던 방황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인데 새내기 때는 백지 시험지를 내고, 서울시가 주는 전액 장학금을 받아놓고도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다. 그만큼나는 온몸으로 경영 전공을 거부했다. 회고해보면 사실은 경영 전공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거부한 것에 가까웠다. 지나보니 경영학은 어떤 단일한 학문이 아니다. 이것 저것 전공 안에 수많은 옆길들이 있어서 최소 할 것만 하면 자유도가 높았다. 나름대로 사회과학도 흉내도 낼 수 있고, 수학의 신이 될 수도 있다.  철저히 주관적 판단이지만 경영학에서 배운 어떤 내용에는 실용도 있었고 나름의 본질도 있었다. 서른이 다되어 들은 경영 전공은 그랬다.


20대 초반 나와 친구들은 어린 나이에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그러나 20대 거의 전부를 채운 창업을 시작했었다. 아무튼 스물 셋, 창업 동지들이 군대에 가고 홀로 남았던 겨울에 나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책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만났다. 사실 이 책은 정말 '자기개발서'에 가깝다. 실제로 나는 교보 문고의 관련 서가에서 이 책을 집었다. 다만 이 책이 여타 자기개발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이 책은 드러커가 썼다는 것이다. 저자인 피터 드러커는 그 사람의 삶이 곧 현대 경영학의 역사와 매우 밀접한 인물이다. 말하자면 처음으로 길을 낸 사람 중 하나랄까.


어떤 사람의 삶이 어떤 학문의 발자취를 담는 경우가 있다. 드러커는 아직 몸으로 일하는 노동자가 절대 다수이던 1959년에 '지식노동자'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고, 오늘날 '머리로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보편적 문제를 일찍이 예상한 대단한 선각자였다. 그의 저작은 '자기개발' 열풍이 불기 훨씬 이전 자기 경영과 시대 변화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담은 본류이자 그 관점의 원조였다. <프로 페셔널의 조건>은 그 중에서도 참 특별하다. 그가 90세가 넘어 삶의 마지막 시기에 쓴 책이기에 그가 가진 지혜의 정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드러커는 자신의 삶과 성취들을 돌아보며, 담담히 자신이 예견한 것과 역사 속에서 증명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더 나은 인간이 되기위해 개인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조언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결국 기업 경영이나 개인의 자기 개발이라는 것도 시대와 역사의 토대 위에서 성립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무리 탁월한 개인이어도 혼자서 시대를 이겨낼 수 없고, 파도를 만들 수 없었다. 어떤 부분의 논리는 너무나 설득력있고 명료해서 감동적이었다. 책을 읽다 멈추고 생각하고 다시 읽고 다시 멈추고는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끊임없이 '탁월함'을 추구할 것!
남이 아닌 어제의 나를 넘어서며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지 말고,
세상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라.


그러기 위해 개인은 자신의 시간을 경영하는 일과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개발하는데 집중해야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말아야한다. 결국 탁월함의 추구는 능력을 증진하고, 여력을 관리하고, 의지 다지는 과정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이 책이 자기개발서가 가져야 할 정신적 가치는 거의 전부 반영하고 있다. 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단지 그것을 일상에서 실행하지 않는 내가 있었고, 나는 그런 점에서 그다지 탁월한 개인은 아직 못됐다. 공교롭게도 20대 초반 내게 큰 통찰을 준 베버와 드러커의 책들은 모두 그들의 인생 말년에 쓴 저작이었다.(비록 베버는 급성 질병사였지만) 그래서인지 더 절실하고 무게가 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단지 돈을 벌기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추구하는 가치에서 더 나은 인간이 되기위해, 좌절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사람이 더 성공에 다가서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잠재하는 자기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우는 '자기계발'은 충분하다쳐도, 구체적인 능력의 증진의 방향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드러커의 말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개인은 세상이 변화하는 방향에 필요한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고 개인은 자신의 강점이 두드러지게 해야한다. 앞서 말한 무분별한 기술 습득이 이러한 방향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기에 시간과 비용과 마음은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자기개발 해야하는가? 가장 현대의 HRM(Human Resource Management 인적자원관리) 접근에 따르면 어떤 분야든 '일'은 다음의 내용으로 구성될 수 있다.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위서는 <KSAOs>가 필요하다. 각각의 알파뱃은 지식(Knowledge), 업무 기량(Skills), 능력(Abilities), 그 밖에 특성들(Other characteristic)의 첫머리를 딴 것이다.


지식(Knowledge)

이는 일반에 통용되는 상식과는 다르다. 주어진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실적 정보, 절차적 정보 등을 의미한다. 가령 주식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이 시장에서 사용되는 기초 용어의 의미도 모른다면 그는 기초적인 지식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알아야한다. 유능한 공장 관리자는 공정 전반을 알고 있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업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손을 떠난 이후에는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자기개발의 방향이 자신이 뛰어들고자 하는 분야의 지식을 확충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자기개발은 필요하다.


업무기량(Skills)

아는 것과 하는 것은 꽤나 다르다. 업무기량 또는 업무기술은 어떤 특정 과업을 실제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실제 기량, 기술이다. 회계업무를 해야하는 사람이 회계를 못하고, 영상 편집을 해야하는 사람이 영상 편집 툴을 못다루고, 통역을 해야하는 사람이 통번역을 할 줄 모르면, 그들은 그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업무 기량이 모자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분별한 '스펙' 쌓기, 기술 습득의 주가 되는 영역이 바로 이 기량에 해당한다. 기술을 배우면 어디에든 쓸모가 있다는 말을 하고, 그것은 꽤나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 개인이 어떤 기술을 배울 때는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 자기 업무 분야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배우든, 하다못해 자기가 재밌어서라도 배워야한다.


물론 관리자 역할, 경영자 역할로 갈 수록 구체적인 업무 기술을 할 일은 적어지지만, 그래도 어떤 기술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수행할 줄 아는 것은 훨씬 정확한 업무 지시가 가능하게 한다. 당연하게도 '빨리'하는 것이 꼭 그것을 잘한다의 의미는 아니다.


능력(Abilities)

지식과 업무기량은 하려는 직무나 수행해야 할 과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능력은 그보다는 훨씬 더 일반적인 역량 특성이다. 특정 영역에만 국한되지는 않고 다른 업무 영역이나 분야에서도 함께 활용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적성'과도 밀접하지 않은가 싶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정말 꼼꼼하다. 장부 상 숫자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 나는 그런 부분은 좀 떨어지는 편이다. 나는 말로 글로 메시지를 정리하고, 요약하고 풀어나가는 능력이 좋은 편이다. 뭐 그러니까 이렇게 책도 쓰고 있겠지.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타인을 만나서 주요 사항을 청취하고 정리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이 일반적인 '능력'은 객관화하고, 수치화하고, 관찰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철저히 고민하고, 그에 맞는 일들이 있는 곳에 가야한다. 그래야 개인은 불행하지 않다.


나와 똑같이 경영학과인 어떤 친구는 숫자를 보는 것과 계산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했다. 그래서 학생때는 재무나 미시경제학의 계산이 많은 파트에 특히 심취해있었다. 공부를 했다고 전제하면 나도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나는 토하면서 10시간 넘게 한 것이고 그 친구는 틈틈이 보기만 한 것이었다.(..) 나는 재무 공부를 하면서 절대 이것을 내 직업으로는 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면 이 친구는 실제로 금융 분야로 가서 날아다니고 있다. 역시 드러커의 말처럼 강점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능력은 업무 기술을 익히는 속도, 성취도와 분명 관련이 있다.


그 밖에 특성들(Other characteristic)


보다 개인적인 특성에 해당한다. 인내력, 관심, 경험, 성취 동기 같은 것이 해당한다. 이를테면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도 그것이겠다.


(McGraw hill education에서 번역출간한 인적자원관리 7판을 참고했다.)




한편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라는 말이 배타적이고 배제적으로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배제적 사고>를 경계해야한다. 강점에 집중이, 약점을 '간과'하라는 말은 아니다. 못한다고 생각해서 멀리하고 회피하면 '못하는 영역'에서 오는 새로운 기회나 위기를 보지 못하게 된다. 반면 잘 모르는 영역을 알아가려 노력하다보면 기존 자신의 강점과 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약점인 영역이어도 그렇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꼼꼼함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의경 시절 2번째 자대는 정원이 15명 남짓의 행정 부대였고, 내 업무는 우리 기동단 산하 중대 수 백명의 의경들에 관련된 행정 및 보급 사항을 관리하는 부서였다. 말하자면 실무자이자 관리자랄까. 당연히 꼼꼼함이 중요했다. 이 일을 일개 의경이 한다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장부상 의료비 현황 및 보급품의 숫자 대조가 대단히 중요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기동단 산하 행정반 중대 친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었다.


내 전임자는 나보다 5살은 어린 친구였는데 정확히 나와 반대 성향이었다. 그 친구는 산업공학 전공한 친구였고, 숫자와 엑셀에 대한 대단한 집착적 열정을 보여줬다. (이 사람은 기계인가 사람인가) 이 친구가 고안한 세부 업무 체계는 꽤나 쓸모가 있었다. 기계 친구는 업무마다 엑셀 문서를 만들어서 나름대로 실무에서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이 업무와 체계를 익히는데 시간이 꽤나 걸리고 쉽지는 않았다. 내가 숫자를 틀리면 상위 기관, 휘하 중대가 고생을 하기 때문에 틀리지 않으려고 매우 집중했다. 안하던 일,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강점의 집중하라'는 '약점을 간과해도 좋다'는 <배제적 사고>가 아니다.

약하다고 생각한 부분에서 뜻 밖에 자신의 다른 면을 발견할 수도 있고,

자신의 강점인 역량과 접목시켰을 때 뜻 밖의 '탁월함'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런데 몇 달을 계속 하다보니 '전체적인 업무 과정'에서의 비효율이 보였다. 각 중대에서는 의료비 증빙 문서를 물리적으로 파일철하는 방식이 달랐다. 그러다보니 이것을 일일히 뜯어서 하나의 방식으로 다시 바꿔야했는데 이게 여간 골치아픈 게 아니었다. 나는 개선된 파일철 방식을 만들어서 기동단 산하 중대에 뿌리고 그대로 업무를 수행하게 안내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바꾸려면 이유가 있어야한다. 나는 이 방식이 각 중대 입장에서도 업무량이 따로 늘어난 것이 아니고 전체 업무는 더 빨리 처리되어서 모두에게 좋을 것이라 전화로도 찾아가서도 알렸다. 일종의 설득이자 바뀐 방식에 대한 교육 과정이었다. 나는 대신 중대 행정반 대원들이 어려워하는 일(숫자를 대조하고 맞추는 것)을 도왔고, 각 중대의 해당 문서들을 상위 기관으로 올리는 속도를 개선하고, 민원 사항을 정리해서 각 중대에 하루 안에는 알려줬다. (친구들과 회사에 있을때 다른 공공기관과 일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결국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고 그들과의 좋은 관계는 업무 전체에서 정말 중요하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간 일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였다. 이 사례에서 전체 효율을 개선하는 과정에서는 나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역량(Abilities)을 활용했지만 그러자면 나는 새로운 업무 지식(knowledge)과 기술(skills)을 알아야했다. 그리고 어떤 기술은 꼼꼼해야만 하는 영역인, 내가 약점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약점이라고 생각한 영역이 강점은 될 수 없어도, 외면하면 할 수 있었던 것을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다.



얼마전 부대에 찾아가보았는데 여전히 바뀐 방식대로 업무가 수행되고 있었다.

탁월함의 추구는 나와 모두를 이롭게 하는 방향일 때 이상적이다.

자기개발의 방향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삶의 우월 전략을 실행하라.

결과에 대한 과몰입이 아니라 지나는 과정에서도 행복함을 추구하는 것

지난 제주 여행 광치기 해변에서


내 삶도 정규분포를 따른다면, 나는 사회가 말하는 큰 성공을 못할 확률이 높다. 이것은 패배주의나 삶에 대한 비관적 사고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다. 나는 나의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고, 그 과정이 즐겁다. 때문에 내게 성공은 오시면 감사합니다. 인 것이고. 정말 기뻐할 것이다. 사실 여생동안 몸이 건강하고 글 쓰고 노래 하면서 즐겁게 살면 나는 1인 몫의 내 삶은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참고하고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들의 삶에 태도에서 내 삶에 적용할만한 <탁월함>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 삶에 맞게 적용하며 탁월함을 추구할 수 있다. 다만 성공에 부수적 효과인이 부나 지위는 희소한 가치이고, 탁월함을 추구한다고해서 반드시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회적 성공의 의자는 한정되어 있고, 능력이 탁월한 개인, 환경이 탁월한 개인들은 그 자리를 위해 부단히 경주하고 있다.


사회적 성공이 불확실하다면 개인은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할까? 탁월함의 추구는 알겠고, 현실적으로 무엇을 기대해야햐는 것이다. 게임 이론에서는 결과가 불확실할 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을 <우월전략>이라고 한다. (이는 대단히 매우 단순화한 것으로, 본래는 보다 복잡하다.) 최선의 전략이 최고의 결과(여기서는 사회적 성공이라 가정하자)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최고의 결과를 얻으려면 '베팅'을 해야한다. 앞서 말했듯 시도의 크기를 키워서 리스크도 키우고 결과도 극대화해야한다.


평범한 개인은 가진 것이 적기에 돈보다는 시간을 쏟는다. 무언가를 위해 미칠듯이 달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잠을 줄이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아무튼 뭔가를 한다. 그들은 미칠듯이 무리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부디 성공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자신의 건강을, 관계를 잃고있는 것은 아닌지 감히 우려해보기도 한다. 내가 본 어떤 이는 뇌가 퓨즈가 나가버리듯, 과로 끝에 공황 장애를 겪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를 보며 유기체 인간의 심신은 그다지 견고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의 쾌유를 빈다.(생각보다 건강한 몸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는 높다. 10억에 대한 연이자율을 2%라해도 2000만원인데, 건강한 신체는 그보다 훨씬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금전적 가치로만 따져도 건강한 몸은 생각보다 가치있는 자산이다.)


나는 <삶의 우월전략>이 성공 지향보다는 <망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경제상황이 곤궁하고 관계가 망가지고, 건강을 잃는다면 개인의 삶은 불행해진다. 때문에 나는 개인들은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지키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삶의 우월전략>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자, 탁월함을 추구하는 평범한 개인들이 해야하는 일이라고도 믿는다.


나는 내 삶에서 (아마도) 오지 않을 성공보다는 망하지 않는 것이, 비참하지 않게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한 가치다.  나는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나는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성공 때문에 지나는 삶의 과정들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도 많은 개인들이 성공의 의자를 향해 뛰어가고 있다.

성공의 의자. 저성장기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그 갯수는 썩 많지는 않을 것이다.

성공을 위해 사는 삶보다는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를 놓치지 않으며 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함을 추구'하면서 말이다.



통일이 되면, 나는 원산 갈마 해변으로  갈 것이다.

새로운 성공의 파도가 그곳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성공은 아무래도 좋고 그냥 서핑을 배우면서 좋은 파도를 기다리고 싶다.


자기개발로 성공하기란

어렵겠다.



나는 실력과 많은 돈과 운까지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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