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글은 꼰대에 관한 사적이며 가장 자세한 분석일지 모른다
* 본 글은 일상 관찰 에세이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를 쓴 작가 문희철이 우리가 쓰는 '꼰대'가 언제부터 우리가 쓰는 의미였는지, '꼰대 현상'의 사회적 의의는 무엇인지 고찰해본 보고서입니다.
https://brunch.co.kr/@moonlover/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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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케이트 질문 – 귀하가 생각하는 꼰대의 의미란 무엇이며
어떤 상황에서 사용됩니까?
* 답변의 길이는 1~3문장 이내로 요구했다.
작가는 위 질문을 주관식 답변의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hakenon)으로 설문 기능(프로필에 24시간 표출된다.)을 활용했다. 6월 27-28일 양 일간 총 251명이 확인하였고 그중 31명이 응답했다. 답변자들은 타인의 답변을 알 수 없었다.
그 밖에 인스타그램 계정 답변자 중 대표성이 모자란 연령을 수집하기 위해 만 19세인 작가의 여동생의 준거집단(10대)에 개별 질문을 발송을 요청했다. 만 나이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 한국식 나이를 기재했다.
위를 종합한 답변자는 총 37명이며 통계적 대표성은 약하지만, 답변자들의 평균은 26세이며 최솟값은 17세, 최대값은 31세였다.
개별적 특성(거주 지역, 학력, 직업 등)들은 통계적 대표성은 없으나 답변자들 중 일부를 대상으로 특이할만한 배경 등(석사 이상 학위 취득 여부, 조직 생활 여부 등)을 고려하여 추가질의를 진행하였다.
또한 답변자들의 답변을 모두 읽고 각 답변에서 의미를 분류할 기준을 도출하였다. 이 기준을 토대로 작가는 ‘꼰대’의 의미와 상황의 맥락을 작가가 분류하였다.(하나의 답변에 중복으로 분류를 허용하였다.) 각 분류 기준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권위-위계 강요형 : 꼰대는 자신의 귄위와 위계를 강요하고 복종과 수용을 원한다
2) 세대 차이 부각형 : 꼰대는 세대 차이를 부각한다*
3) 배타적 사고/공감 결여형 : 꼰대는 독단적이고 다른 생각에 대해 닫혀있다
4) 조언- 간섭형 : 꼰대는 불필요한 발언과 행동으로 타인에게 간섭한다
위 기준에 따라 답변이 기준에 가까운 의미인 경우 중복 체크했다.
주* - 권위 위계 강요형과 세대차이 부각형을 구분한 기준은 위계의 기준이 ‘나이’가 되는지 여부였다. 나이가 위계 형성의 주된 속성이면 세대 차이부각형으로 분류했다.
가령 한 남성(24세 대학생)의 답변은 위 유형 모두에 해당한다.
“본인의 얄팍한 지식과 좁은 지식을 남에게 강요할 때!(1,2) 남과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이나 지위 등으로 찍어 누르는 행동을 하는 사람(1,3),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의 다른 행동을 이해못하고(3) 핀잔을 주는 사람(4)”
표 3은 답변자들의 답변을 각 유형에 맞게 분류하고 각 유형에 해당하는 숫자들을 모두 더한 결과를 표시*한 것이다. ‘배타적 사고와 공감결여’는 가장 많은 분류된 유형이었다. 답변에서 가장 많은 속성에 따르면 연령과는 무관하게 꼰대로 치부될 수 있었다. 주목할 특징은 10대 답변자들은 모두 ‘세대 차이 부각형’으로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위계상 상위에 놓이는 기준이 나이에 의한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 즉, 귄력 위계 강요형의 특성이 8번 나왔다는 뜻이다.
“나이만 먹은 진상들 느낌”(2)
“나이 좀 먹었다고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들 (상황이랑 때에 맞지 않게)”(2,4)
“나이로 거꾸로 드신 분들”(2)
“나이 많은 사람이 '라떼는 말이야' 하거나 심하게 가르치려 할 때”(2,4)
“나이 많은 사람이 나 가르치려할 때?”(2,4)
“띠꺼울 때(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자기가 나이 많은 거 티낼 때”(2)
앙케이트 답변에서 특이할만한 의미가 도출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꼰대’가 아닌 ‘꼰대 규정짓기’ 행위가 1) 강력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2) 상황이나 인물을 희화화하는 의미로도 쓰인다는 것이다. 그중 3건을 소개한다.
A(직장인, 30세 여)
“나이 여부를 떠나 1) 생각보다 상대방의 입을 막아버리는 행위를 유도하는 단어로 많이 쓰이고 있다.”
B(직장인, 석사 학위 보유, 29세 남)
“주로 회사나 사회생활을 할 때, 2) 어떤 행동에 대해 이유를 장대하게 설명해야 할 때 나는 꼰대다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함. 1) 뭐만하면 꼰대라고 많이들 하지 않나. 조금만 진지하면 진지충이라하고 오글거린다고 하는 세대가 사회로 진출하면서 이런 경향이 커진 것 아닐까?”
C(대학원생, 석사학위 보유, 28세 여)
“꼰대는 기존 방식과 틀을 융통성 없게 고집하는 사람이고, 공감능력 결여와 소통불가로 자신의 제안이 아닌 강요, 타인의 반응을 살피지 않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2) 자신이나 주변 동료들의 현 상황을 희화화하기 위한 용어로도 활용된다.”
이들은 모두 조직 생활을 5년 이상 경험한 사람들로 자신보다 하급자를 대면할 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메신저를 통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들은 무분별한 ‘꼰대규정짓기’가 폭력적이고 대화를 거부하는 배타성이 강함을 지적했다. 꼰대 규정짓기의 당사자들이 표3에서 많은 답변자들이 공감한 꼰대의 가장 큰 속성인 ‘배타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그런데 앙케이트에서는 40대 이상 답변이 취약하다. 40-50대 대상 답변은 시간과 여건의 어려움으로 진행하지 못하였다. 다만 59세 이상 인터뷰이를 섭외할 수 있었고, 이들에 대해서는 전화 또는 대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앙케이트와 같은 질문의 답변을 요구했으며, 해당 단어가 쓰이는 상황과 맥락에 대해 추가 질의를 진행했다.
작가의 부모는 2020년 올해로 59(한국식 나이)세로 이들은 자녀 이외에 젊은 세대와 교류가 있지는 않으며 사무직이 아닌 블루컬러 노동자들로 인터넷을 그렇게 많이 쓰지 않는다.(단적으로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며,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다.)
- 작가의 어머니
“왠지 옛날에 그냥 촌스러운 양복입고 아는 척하고 나서는 느낌이고 중년의 남성같다. 고지식한 선생의 느낌도 든다. 옛날에 어른들을 일컬을 때 어르신이 아니라 ‘우리 꼰대’ 이런식으로 썼다. 윗사람을 비꼬는 느낌도 있다. ‘우리 집안에 꼰대가’ 이렇게 썼는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단어다. 어린 사람한테 꼰대라고는 안한다.”
- 작가의 아버지
“나이 먹은 사람인데 좋은 얘기는 아니다. 존중은 아니고 분명 비하의 의미다. 요새는 그런 말 쓰면 촌스럽지. 지금 사람들은 그런 말 안쓴다. 옛날 사람이나 쓰는 말이다. ”
추가로 작가의 83세 외할머니와 같은 문항으로 대면 질의를 진행했다. 작가의 외할머니는 TV 외에는 다른 매체를 전혀 소비하지 않는다.
- 작가의 외할머니
“그거 예전 말이다. 영감이나 할애비한테 쓰는 말. 요즘도 그런 말을 쓰나? ”
표준 대국어 사전이 정의하는 꼰대의 의미인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이들은 ‘꼰대’의 대상으로 ‘나이든 남성’을 말하고 있고, 꼰대 단어 자체는 아주 강하지는 않은 부정적 늬앙스를 가지고 있다. 작가가 1에서 규정한 의미나, 앞선 문헌조사, 앙케이트 조사에 드러난 권위-위계형, 배타적 사고형, 조언-간섭형의 의미가 두드러지게 관찰되지 않는다.
역시 통계적 대표성을 가지기는 어려우나 2.3의 결과를 통해 ‘인터넷, 뉴미디어 환경에 주로 노출되지 않는’ 장년 이상의 화자가 확대된 꼰대의 의미를 수용하지 않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2.1에서 작가는 연구 목적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1) 단어 ‘꼰대’의 사용 빈도 추이를 시계열적으로 파악한다.
2) 조사 연간 각 시기 별로 활용된 ‘꼰대’의 의미를 추출한다.
3) 단어 사용이 폭증한 시기의 사회적 변화를 추론한다.
1), 2)의 목적은 2.1에서 전술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규명되었지만, 3) ‘단어 사용이 폭증한 시기의 사회적 변화를 추론’은 연구자의 주관을 따를 수 밖에 없다. 작가는 ‘꼰대’의 의미 확대를 유발한 사회 변화의 주요 요인이 다음 연쇄된 2가지**라고 생각한다.
1) 고성장기 종료와 기존 질서 복종에 따른 보상 체계 붕괴
2) 기성 질서와 기성 세대에 대한 개인의 반감 형성, 저항 언어의 확산
주* 2.1에서 언급한 한계 2)는 다음과 같다. <개인 단계 연구 레벨의 한계와 언어 연구의 속성상 가설의 상관성 검증은 어렵다. 가령 “꼰대의 의미변화와 빈번한 꼰대의 활용은 ~~한 사건의 영향일 것이다”라는 가설을 검증하기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2)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추가적인 질적 연구도 연구자의 주관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 정보의 선택과 해석, 추론에서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 추가적 요인으로 <새로운 세대에서는 언어유희를 활용하는 특유의 해학 문화가 발달>을 꼽을 수 있으나 이는 온라인 플랫폼 내 언어 사용과 ‘밈meme’ 활용을 함께 두루봐야한다. 주된 요인으로 제시하기에 본 보고서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판단했다.
개인의 삶에 대한 개입에는 납득할만한 이유가 필요하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시스템은 나름대로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 규칙과 질서는 시스템을 건재, 유지, 보전하기 위한 성격이 있다. 또 구성원들이 그 규칙과 질서를 수긍할 때 '모두에게 더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규칙과 질서는 더 잘 준수된다. 덧붙여 문화는 규칙과 질서를 개인이 자연스레 내면화하게 한다.
어떤 사회나 조직이 요구하는 규칙과 질서를 지속적으로 잘 준수했을 때, 각 개인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확실하고 마주할 위험이 감소한다면 각 개인은 그 규칙과 질서의 적극적인 수호자가 될 것이다. 고성장기 대기업에서 회사에 복종하면 개인은 큰 집과 빠른 차, 보다 높은 지위를 기대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물론 고성장기 사회에 진출한 개인들은 끔찍이도 높은 물가상승과 사회인프라 미비에도 시달렸다.) 이제 고성장기는 끝났고 사회나 조직은 규칙에 대한 복종 그 자체로 개인에게 괜찮은 보상을 줄 수가 없다. 그러나 새로 사회에 진입할 세대 개인들은 과거 세대보다 자신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다.*
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용관, 청년층의 주관적 계층의식과 계층이동 가능성영향요인 변화 분석,2018>
물론 고성장기에 대비해 지금이 훨씬 더 부의 총량은 크다. 1970년보다 2019년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물가상승을 감안해도 100배가 넘게 차이난다. 방점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주관적 인식인 것이다.
어떤 체제 일단 형성되면 연속성과 경로의존성*을 가진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개인이 느끼기에 기존 체제는 충분한 보상과 기회를 주지 못한다. 이제 보상 없는 복종 강요에 개인은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거 정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질서, 규칙, 문화에 대해 제법 많은 개인들이 적극적인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야근과 업무능률은 상관이 있는 것일까? 회사에 충성하고 더 많은 일을 하면 회사는 나를 지켜줄 것인가? 즉, 이제 기존 질서와 규칙에 복종해도 개인에게 보상이 늘어나거나 위험이 감소하지 않기에 개인들은 기존 질서, 규칙을 회의, 거부하기 시작했다.
주* 경로 의존성(經路依存性, Path dependency)은 사회심리학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폴 데이비드 교수와 브라이언 아서 교수가 주창한 개념으로,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을 뜻한다.<위키백과, 2020.06.29. 검색>
개인주의자로 성장한 개인들에게 어떤 규칙과 질서는 존재 이유가 도무지 물음표일 때도 있다. 중고교 시절 왜 중앙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벌점을 먹어야 했나? 왜 보충학습이나 야간 자율(형용모순 그 자체의 단어다) 학습을 거부할 수 없었는가.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는 단지 생물학적 나이가 많은 존재에게 애써 예의를 지킬 이유는 무엇인가? 공정하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이 의구심은 저항 언어의 사용으로 이어진다. 저항 언어란 기존 체제와 그 수혜자인 기성 세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용어다. 개인들은 체제에 대한 회의감과 반발심을 저항하는 언어로 표현하고 자조한다. 많은 개인들이 저마다 생각한다. 기존 규칙, 질서, 문화에 열심히 복종해봐야 남는 것은 '사축'(회사의 노예), '호구' 취급이다. 이러한 생각은 요즘 유행하는 "적게 일하고 돈 많이 버세요"라는 말로 대변된다. 요구되는 최소한의 역할만을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회사와 조직, 사회의 질서에 복종하는 것은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현대 개인들은 이러한 이유로 보상 없는 체제 속 위계에 따른 개입을 싫어하고 자유롭길 원한다.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하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남에 의해 떠밀리듯 삶이 결정되는 것은 경계한다.'고나리질'(관리질), '궁예질'(타인의 상황이나 마음에 대해 마음대로 재단하는 행위)이라는 말이 널리 퍼진 것도 그 증거가 아닐까 한다.
이 시대에 의미가 확대된 꼰대란 부당한 기존 질서, 규칙, 문화의 구현자이자 의인화된 존재로 타도해 마땅한 대상인 것이다. 이제 저성장기에 사회에 던져지거나 던져질 새로운 개인들은 '꼰대 규정짓기'라는 기존 질서와 기성 세대에 대한 이념적 대응 무기가 있다. 개인들은 자신이 느끼기에 필요 이상 역할을 강요, 기대하는 (주로 자신보다 기성세대인) 사람을 만나면 그를 '꼰대'로 규정하고 적극적 거부, 수동 공격으로 맞서는 것이다. 이는 2.2에서 전술한 ‘2012년 세대 갈등 양상’에서 예고된 바 있다.
이것이 비단 한국에서만 있는 현상일까? 꼰대는 영어 선진국의 ‘베이비 부머’와 대응된다. 이른바 부머 세대는 1946-1964년 시기에 태어났다. 90년대 말~2000년대 초 전후에 태어난 밀레니얼/ Z세대의 대립항으로 쓰인다. 밀레니얼/ Z세대가 인지하기에 부머 세대는 고성장기에 태어나 풍요를 누린 세대다. 때문에 그들에 대한 비토는 언어에도 반영된다. 급진적인 사회변화보다는 개선의 중요성을 일갈한 오바마의 연설에 대해 일부 Z세대는 다른 부머 세대에게처럼 “Okay boomer”* (“응 알겠어~ 꼰대”정도로 의역이 가능하다.)라는 공격적인 언사를 보내거나 상대적으로 장년이상 연령대가 취약한 Covid-19 바이러스를 “Boomer Remover”라고 부른다. 기성 세대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저항 언어는 새로운 세대 특유의 밈 문화와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의 활성화로 밀레니얼 세대 전반에 일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 ‘young boomer’라고 하지는 않기 때문에 아직 ‘꼰대’보다는 활용 양상이 적어보인다. 다만 꼰대에 대응되는 다른 용어는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저항 언어는 대상에 대한 비토, 거부와 희화화, 저항언어 사용자의 자조를 기본 속성으로 한다. 그중 ‘꼰대’와 그 파생 용어들은 한국 사회에서 저항 언어 중 가장 대중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꼰대’의 의미와, 꼰대를 규정하는 방식과 활용은 그 자체로 사회 변화와 맥락의 발현이라 할만하다. 우리가 ‘꼰대’에 집중해야하는 이유다.
‘꼰대’하면 떠오르는 어떤 일반화된 표상이 있다. 왠지 그 존재는 1) 나이가 많을 것이며, 2) 주로 남자이며, 3) 무엇을 배우기보다는 이미 아는 것을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4)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아는 것처럼 말할 것만 같다. 게다가 그 '아는 것'이 전하는 내용에는 구체적인 각론은 없고 대강 그렇다는 큰 방향만 있다. 어쩌면 정말로 ‘꼰대적 속성’(권위 위계 강요형 /세대 차이 부각형 / 배타적 사고형 / 조언- 간섭형 태도)을 많이 가져 '꼰대'로 불리는 이들 중 중년 남성의 비중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 2의 논의에 따르면 꼰대는 태도에 있고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꼰대는 불통과 독단적 태도가 발현된 존재라 여기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꼰대라고 명사가 널리 사용되기 이전에도 이른바 ‘꼰대적 속성’은 있었다. '꼰대'를 거부하겠다는 생각과 행동에서도 ‘꼰대적 속성’이 발현될 위험은 도사린다.
꼰대 담론에서 경계할 점은 1) 기존 규칙이나 질서 자체에 대한 맹목적인 회의와 거부가 삶의 기본 태도가 되어버리고, 2) 자신의 기분을 지키는 수단으로만 '꼰대 규정짓기'가 남발될 때다. 분명 부당했던 질서나 규칙도 있겠지만, 어떤 질서나 규칙은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 또 오래되어서 낡은 것도 있지만, 그렇기에 검증된 방법과 기술도 분명히 존재한다. 유용하고 필요하고 공정한 질서, 규칙, 문화와 덧붙여 기술은 학습하는 것이 좋다. 스스로 체득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 아는 것보다는 먼저 체득한 이로부터 자연스레 교류하고 배우며 아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하다.
준수되어야 마땅한 것의 전수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과 다른 대상, 이해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꼰대'로 규정짓는 것은 거부를 위한 편리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쨌거나 같이 살아갈 운명인 우리 모두에게 큰 손해다. 만약 자신이 꼰대로 치부될 위험이 있다면 몸을 사리지 않겠는가? 알아야 할 것을 알기 어려워진다. 꼰대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가 되면 안 된다. 사실은 배우기 싫고 듣기 싫은 말을 차단하는 간편한 수단으로써 '꼰대'라는 말을 남용하는 것은 아닐까? 배울 때는 배워야 한다.
니체의 말을 변형해서 인용하자면 ‘꼰대와 싸우는 이는 스스로 꼰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꼰대적 문화를 들여다볼 때 꼰대적 문화도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가 꼰대를 잘 아는 만큼 우리도 꼰대를 닮아가기 쉽다. 독단과 불통과 맹목적 거부가 꼰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소통하지 않겠다는 일방 선언과 이해 거부는 우리를 역설적으로 꼰대와 가장 닮게 한다. 혐오하다 보니 혐오하는 대상을 닮아간다는 것이 꼰대 거부의 역설이다. 그러므로 아무데나 꼰대를 붙이지는 말아야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꼰대가 아니게 될 수 있을까?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재수 없음과 불안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단단한 내면, 스스로를 지위와 상황만으로 규정하지 않는 빈곤하지 않은 나, 개입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지혜. 고수하지 않는 용기. 꼰대가 아니려면 한 인간으로서 참 괜찮은 객관적 현실 인식과 인격적 성장이 필요하다.
한편 ‘꼰대’로 대표되는 저항 언어는 사회상의 반영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보다 격차가 확대되고, 더나은 삶을 위한 희망이 사라지고, 소통을 위한 문화와 수단이 계속해서 제한된다면, ‘저항언어’는 사회 해체를 위한 저항 행동이 될지도 모른다. 공염불일지도 모르겠으나 사회는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완충 장치를 형성할 수 있어야겠다. 그것이 저항언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사회적 함의가 아닐까.
꼰대에 관한 사소하고 자세한 분석이었습니다.
저의 일상관찰 에세이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도 많이 사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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