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희철 Nov 02. 2020

‘무엇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경영학자 드러커가 회고하는 경제학자 슘페터와의 대화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아흔이 넘어 쓴 그의 저서 <프로페셔널의 조건>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모든 내용이 인상적이지만, 나에게는 젊은 시절 드러커가 만난 세기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임종 닷새전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드러커의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조지프 슘페터와 절친한 친구였다. 슘페터가 66세가 됐을 때, 와병중이었던 슘페터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았다.  젊은 드러커는 아버지를 모시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슘페터를 만나러 갔다.


‘무엇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이 질문에 젊은 시절 슘페터는 이렇게 대답했다.


“유럽 미녀들의 최고의 연인, 유럽 최고의 승마인, 세계최고의 경제학자”

(그도 그럴 것이 슘페터는 30세 무렵 이미 당대 학계의 최고 지성이었다.)


73세의 드러커의 아버지가 같은 질문을 66세의 슘페터에게 물었다. 

슘페터가 대답했다.


“대여섯 명의 우수한 학생을 일류 경제학자로 만든 교사”


그리고는 그가 덧붙였다. 

“나는 책이나 이론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어. 진정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이론이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네.”


‘무엇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내 생각에 이 질문은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며, 그 대답은 다음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누구냐는 것.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냐는 것. 
그래서 삶에서 무엇을 남길 것이냐는 것. 

회고해보면 20대 동안 나는 참 많이도 방황했고, 굽은 길로 많이도 돌아갔다. 

그 덕에 뜻밖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덕에 보고 느낀 것들이 많다.  

대신 하나의 길 위에서 진득하게 쌓지는 못했다.


만 30대에 접어든 나는 이제 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해야할 것 같다. 

적어도 대답하기 시작해야할 것 같다. 슘페터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삶을 위한 실용적 쓸모를 고민하는, 기획하는 창작자 그러나 창작하는 기획자.”


나는 창작이 좋다. 그 창작은 대단한 예술혼의 발현은 아니다.

내게 창작은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고, 그것을 실체로 만들어내는 과정일 따름이다.

말년의 슘페터가 말하듯 나의 창작은 ‘진정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도 꽤나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구체적인 일을 찾고 있고, 나름대로 시작한 것 같다.

다음 저작을 쓰게 된다면 그때는 실용서를 써야겠다.

창작자로서의 나는 나를 보다 사람답게 한다.

기획자로서의 나는 나를 삶을 위한 쓸모로 향하게 한다.


밀도 높은 선을 긋자.

내가 기억되길 바라는 것을 위해





매거진의 이전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란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