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고종석은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 문장을 쓰는 작가였다.
7년전 친구들과 창업한 교육회사에서 일할 때, '글쓰기'는 내게 큰 과제였다. 대문호가 되겠다는 마음은 없었으나 적어도 내가 쓴 교재는 의미가 명료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었다. 마침 당시에는 글쓰기에 관련한 대중적인 베스트셀러도 많이 나온 때였다. 강원국 작가의 책도 보았고, 유시민 작가의 책도 보았다. 그러다 만난 것이 고종석 작가의 책 <고종석의 문장 1-2>이었다.
얼마전 그때 읽은 고종석 작가의 책을 다시 꺼내보았다. 책이 참 만들어졌다 싶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지금 작가 고종석 선생으로부터 어떠한 '총기'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보아도 책은 책이다. 그가 쓴 책들이 내게 준 영향이 있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겠다.
"논리와 수사 둘 중에서 만약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논리를 골라야 합니다. 심지어 문학작품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76쪽)
책 속에서 단 하나의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저자의 주장대로 이 문장을 고르고 싶다. 흔히들 글을 잘 쓰는 것의 의미를 '문장을 예쁘게 쓰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듯 글쓰기에서 '생각의 소통'이 중요하다면, 수사(글을 꾸미는 것, 간단히 말해 '비유')는 논리를 갖춘 뒤에 생각해야할 것이다.
그 밖에도 글쓰기 실력은 재능보다 부단히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는 견해는 (다른 분야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도 말한다. 음악이라든가 수학이라든가..) 쓰기를 잘하고 싶은 이들에게 큰 희망이 된다. 저자도 학창 시절에 백일장에서 상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고종석이 누구인가. '한때' 당대의 문장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기자이자 언어학자이자 소설가이자 수필가다. 그가 그렇게 말하니 글쓰기에서 늦은 때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단 시는 아닐 수 있단다.)
사실 이 책은 작가가 '쓴 책'은 아니다. 12년에 '절필 선언'을 하고 진행한 글쓰기 강좌에서 그가 한 말을 '적도 재구성'한 것을 출간한 책이다. 그덕에 책은 모두 구어체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두깨(1귄의 경우 p.431)에 비해 읽기가 대단히 수월하다.
책은 '글'에 대한 내용만 다루지 않는다. 언어학 지식과 조지 오웰처럼 세기의 작가들의 삶, 일반 교양적인 내용도 옆길로 새듯 다룬다.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작법을 기대한다면, 그 부분은 책의 전체 분량에서 1/5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 것 같다. 왜 그런가? 작가는 말한다.
글쓰기는 분명히 말을 다루는 재주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교양과 지식입니다
나는 이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 글은 생각을 문장으로 쓰고 연결하는 과정의 연속인데, 모르는 것에 대해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많이 알고 적절하게 생각하는 노력은 필요하겠다. 그럼에도 실전 연습에서 제법 괜찮은 쓰기 조언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단, 글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유효하하다. 쓰지 않은 상태로 읽으면 '덜 도움'될 듯하다.
얼마전 황현산 선생의 책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으로 책의 내용과 이에 대한 내 견해를 덧붙인 적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 이 책의 목차를 보니 '좌파적 책'이 아니냐 그 점이 우려된다는 말을 보낸 적이 있다. 이에 나는 "책은 책이죠"라고 대답했다. (보통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은 책이다. 나는 황현산 선생이 좋은 생각과 삶의 결을 유지하다 세상을 떠났고, 좋은 글을 쓰셨다고 생각한다. 친일을 한 서정주의 시집 <화사집>이 아름다운 것을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인 견해를 급격히 바꾼 김지하 선생이 좋은 글을 썼던 것도 사실이다. 진중권 선생이 <미학 오딧세이> 연작으로 미학 분야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점도 변하지 않는다. 그들의 책은 좋은 책이다.
쓸데없이 말이 길었는데, 이렇게 쓴 이유는 고종석 작가도 소위 말해 '헤까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를 쓰던 그가 이제는 옮기기 어려운 극언을 하기도 하고 그에 따라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변함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켜온 삶의 태도와 '결을 잃는 것'은 아쉽다. 나는 그것이 좋은 변화가 아니라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날 작가 고종석은 젊은 날의 그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책은 책이다. 작가 고종석은 좋은 글을 써왔던 사람이었고, 이 책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책은 글쓰기를 하고 있는 이에게 좋은 책이 확실하다. 책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