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는 내용 습득뿐만이 아니라 저자의 사고 회로를 파악하는 일이기도
책을 읽는 시대에서 책 ‘내용’을 듣는 시대로 바뀌는 모양이다. 나 역시도 대중교통이나 운전 중에 콘텐츠들을 듣고 있다. 다만 들으면서 온전히 그 내용에 집중하지는 못한다. 주변 풍경도 보고 다른 주의를 기울일 것도 많다. 그렇기에 오며가며 듣는 책은 낭독하는 ‘오디오북’이라기보다 ‘책 내용을 요약해서 15분 내외로 말하는’ 영상인 경우가 많은듯 하다. 이 현상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요약된 책 내용 소비>는 어려운 책의 내용을 일반에 널리 소개한다는 순기능이 있다.(뜻 밖의 발견을 돕는다. 그래서 사게되지!)
다만 얼마전 “핵심내용만 알면 충분하므로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견해를 보았을 때는 별로 수긍이 되지 않았다. 책읽기의 가장 큰 이점은 단순히 내용 습득 뿐만이 아니라 저자의 사고 회로를 관찰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완성된 글’을 보면 사고의 흐름도 함께 보인다. 사실 빙하는 흐르고 있는 것처럼, 자세히 글의 행간을 관찰해야 보이는 사고의 흐름도 있다. 하물며 책은 ‘정제된 글’들을 특정한 의도로 엮은 것이니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정제된 사고 흐름을 습득할 기회가 된다. 책을 보면서 특정 주제에서 내가 예상했던 사고 흐름과 저자의 그것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게다가 요약은 ‘객관적인’ 작업 같지만 결국 재구성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요약자의 주관이 어쩔 수 없이 상당부분 개입된다. 필연적 생략이 있는 탓이다. 아무리 탁월하게 잘된 요약이어도 미니어쳐 자동차가 본래 자동차와 ‘완전히 같을’ 리는 없다. (특히 요약된 소설은 맥락의 손실이 대단히 크다.)
마지막으로 정말 사소한 이유인데, 책 하나를 마쳐보니 남의 책을 읽는 게 참 재밌다.(남이 해준 요리가 가장 맛있다는 셰프들 말처럼..) 잘 쓴 양서를 보면 저자가 했을 고생과 과정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보통 내게는 그런 책이 더 재밌다.
아무튼 책 읽기의 의의는 내용을 얻는 것에 더해 글의 행간 속 저자의 사고구조를 습득하는 데 있으니 틈틈이 요약본을 듣다가도 진득히 책을 읽어봐도 좋겠다. 더 나아가 독서후 서평을 써보는 것도 정말 좋겠다. 글을 쓰기 전에는 자기 사고가 어떻게 뻗어가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맹점이 무엇인지 가시적으로 보기 어렵다. 읽은 것에 관해 쓰는 것은 정말로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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