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제때, 깊게 자기 어려운 잠. 매일 아침이 너무 두려워!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종 거의 모두는 잠을 잔다. 일부 종에서는 예외가 있다고는 하는데 지극히 일부라고 한다. 사실상 척추동물은 전부 잠을 잔다고 봐도 무방한 것 같다. 당연히 인간도 잠을 잔다. 잠은 무엇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은 '눈이 감긴 채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라 정의한다. 물론 기린처럼 서서 자는 동물도 있고, 돌고래처럼 헤엄치며 자는 동물도 있지만, 일반적인 인간의 잠은 눈을 감고 인지 및 사고를 하는 의식이 없는 상태니까 인간에게는 제법 과학적인 정의 같다.
인간은 기린, 돌고래 같은 훌륭한 수면 기술을 가지지는 못해서 잘 때는 보통 누워있다. 깨어있을 때도 누워서는 일이나 공부 같은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인간의 잠은 기린, 돌고래처럼 뇌가 반씩 번갈아가며 잠을 자는 것이 아니기에 그냥 <자는 것> 외에 다른 활동을 같이 수행할 수 없다. 몽유병으로 인한 이상 행동들은 생산적인 활동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수면 중 생산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루 8시간을 잔다면 잠은 하루 1/3을 차지한다. 이를 아주 단순히 계산하면 인생의 33%는 잠이다.(물론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에게는 각각 권장 수면 시간이 다르다.)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생산적인 시간이 이렇게나 길다니 정말이지 인간 존재는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다.
인생은 한정되어있고, 젊음은 특히나 짧다. (낭비)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잠을 안 잘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은 이말년의 만화에서처럼 여유 있을 때 잠을 쌓아두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은 모두 불가능하다. 잠 안 자기 기네스 기록은 1964년 11일 동안 안 잔 것이 공인된 마지막 기록인데, 잠 안 자기는 너무 위험해서 기네스 협회는 해당 기록의 경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야 하는 유기체가 잠을 못 자면 죽는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물을 못 마시거나 음식을 못 먹는 것만큼이나 못 자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이런 잠은 돈이 아니라 쌓이지도 않는다. 일정 이상 자봐야 머리, 허리만 아프다.
잠이 무슨 기능을 하느냐에 대해서는 휴식/회복/에너지 절약 등 여러 견해가 있지만, 나는 일종의 <복구 및 정리 작용>을 한다는 견해를 가장 좋아한다. 기름칠하고 조이는 유지보수의 느낌이랄까. 이렇게 보면 왠지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24시간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도 일정한 유지보수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다못해 온라인 게임에서도 우리는 서버 점검 시간을 싫어하지만 그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기계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기관들도 언제나 '풀가동'될 수는 없다. 특히 뇌는 휴식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잠자는 동안 뇌는, 깨어있는 동안 받아들인 정보를 처리하고 분류하고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 같단다. 마치 운영시간이 아닐 때 선로를 점검하고 수리하는 지하철 같다. 이를 낭비라거나 비생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게임 유저들은 공지를 미리 했어도 점검으로 끊기면 욕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해~ 오늘은 어떤 사건이 날 부를까~"는 명탐정 코난에나 있는 말이고,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침에 일어나기가 매우 싫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나라면 정말 피곤하다. 일찍 일어나면 분명 기분이 좋긴 한데 그것도 어쩌다 한 두 번이지 늘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은 너무나 큰 고역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다닌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가 10분 이내 거리였다는 것이다. 특히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서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옆 건물이었다. 실로 하늘이 내린 결과였다. 물론 집이 가깝다고 학교를 일찍 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보통 종 치기 5분 정도를 남기고 도착했다. 이러던 나에게 고교 배정은 재앙이었다. 등교 시간이 40분~1시간 정도 걸리는 신설 고교로 배정받게 된 것이었다. 하늘이 버린 결과였다. 예비 소집 때 집에서 학교를 처음으로 나섰다. 가는 길은 극히 낯설었다. 버스는 잘 오지 않았고, 지하철도 다니지 않았다. 앞으로 보낼 3년을 생각하니 강력한 현타가 왔다.(*현자 타임 - 마음이 차분해지고 뭔가 허탈하면서도 공허해지는 시간) 애들도 낯설고, 학교도 낯설고, 가는 길도 낯설었다. 그러나 진짜 지옥은 따로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갈 때 즈음부터 0교시는 없어졌지만, 기본적으로 고등학교는 등교 시간이 최소 30분은 더 빨랐다. 나는 매일 6시에 일어나는 고군분투 일정을 시작했다. 일찍 일어나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가는 과정이 너무 고됐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을 다녀오면 11시 반에서 12시쯤에 집에 왔다. 잠깐 게임 한 판을 하거나 잠시 딴짓을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서 실질적으로는 누워서 자는 시간이 5시간쯤 됐던 것 같다. 바로 자면 좋겠지만 이상하게 그건 또 싫었다.(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하루 중 잠깐이라도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었으면 하는 그 마음.)
으아 그 삶은 정말 지옥이었다. 낯선 동네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공부도 하다 보니 약간은 알 법도 한데 잠을 못 자는 것은 지옥이었다. 4당 5 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헬조선식 격언)이고 나발이고 나는 잠이 더 좋았다. 아침마다 나는 거의 반쯤 기절한 상태로 "엄마 나 학교 안 가면 안 될까..?"를 진심을 듬뿍 담아 말했었고, 언제나 등짝 스매시 후 나는 학교에 가짐을 당했다. 학교에서는 기절하지 않기 위해 갖은 노-오력을 하고는 했지만 의사와 무관하게 거의 반쯤 기절한 적이 많았다. 고2 때 10시 수업에 들어오는 어떤 선생님은 내가 죽을병에 걸린 학생인 줄 알았다고 한다. 나중에는 효율적으로 자기 위해 쉬는 시간마다 사물함 위에서 잤다. 엎드려 잘 때보다 효율이 2.5배쯤 좋았다. (단연 최고는 양호실이다.)
1년에 3번 정도 7시 반에 눈이 떠질 때면, 나는 이내 허튼 노력은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는 11시까지 꿀잠을 잔 후 병원에 들러 진단서를 끊고(인간은 아프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정말 아파진다.) 여유 있게 학교로 향했다. 개근은 못했지만 공부를 못한 편은 아니었고, 일반계 고교 인문 기준 6두품 정도 되는 대학을 가긴 했다.(졸업을 서른에도 못해서 그렇지..) 솔직히 잠을 더 자고, 혼자 공부하는 법을 익혔어도 소위 말하는 '더 좋은 결과'가 불가능했을 것 같지는 않다. 더 자고 '깨어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잠 부족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나는 그것이 아주 괴로웠다. 지금은 잠을 비교적 자유롭게 잘 수 있어서 나는 고교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실제로 잠을 충분히 잔 스무 살 이후에는 대학 수업 시간에 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한국에는 이상한 믿음이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잠을 줄여라. 개인적으로는 전자에는 제법 동의할 수 있으나 후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편하다. 잠에 드는 시간은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지만 잠을 자는 시간은 그렇지 않다. 나는 수면 총량 7~8시간이 꼭 지켜져야 하는 사람이다. 하다못해 군대에서도 나는 그랬다. 근무나 여타 사정으로 조금이라도 덜 자면 반드시 부족한 만큼 잠을 채워줘야 했다. 일상적으로 적게 자면 노오력이 부족한 탓인지 일상을 견디기가 정말 지옥 같았다. 하지만 고교 3년, 창업 6년, 군대 2년 정도의 실험이면 충분한 것 아닐까? 이제 나는 확실히 알겠다.
보통 잠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 문제 중 한 가지 이상을 경험한다.
1) 수면량의 절대량이 모자란 경우.
2) 잠의 규칙성이 무너지는 경우. 잠에 드는 시간이 자주 바뀜.
3) 깊게 잠에 못 듦. 소리, 빛 변화 등 작은 자극에도 금방 깨어남.
고교 시절 나는 1번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건설회사 회장 출신 어떤 전직 대통령은 하루 4시간 자고도 평생을 잘 살아왔다는데 나는 그렇게 살았다간 하루 종일 갤갤댈 것이 뻔하다. 2번도 제법 괜찮다. 나는 일관적으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잠에 드는 시간이 좀 더 빠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늦게 자는 게 습관이 된 탓이다. 3번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 일/관계/자아실현에 대한 불안함이 클 때는 잠에 잘 들지 못하고 쉽게 깬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삶은 복원력이 강해서 이내 잘 자는 나로 돌아오고는 했다. 이처럼 내가 자는 시간의 총량, 잠 드는 시간, 잠의 질은 대체로 균일하다. 왜 그런가 하면 나는 그래도 괜찮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에 가까운 나도 가끔 많은 업무량이나 어떤 필요에 따라 잠을 줄여야 할 때가 있긴 하다. 그때 몸 상태는 마치 결전을 위한 <비상 전력>이 가동되는 느낌이다. 일시적으로 정신은 각성되고 왠지 집중이 더 잘 되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다 너무 피곤하면 잠시 엎드려서 잔다. 배터리 7%가 남은 상태에서 잠시 충전하는 것처럼 '급속 충전'을 한다. 얼마나 잤는지 체감이 안된다. 깨어서 얼마나 잤느냐고 물어보면 30분쯤 잤단다. (이상하다. 10초 같은데..)
곧 다시 깨어 일을 한다. 마감에 맞춰 결과물을 낸다. 일을 마치고 씻는다. 눕는다. 정신이 아득하게 꺼져간다. '스르르'가 아니다. 배터리가 다한 로봇이 꺼지듯 '싀이이으으우우..ㅇ..뚜----' 이랄까. 잠에 든 시점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전원 정지다.
나는 일반적인 직장인처럼 출퇴근이 정기적이지도 않고, 프리랜서처럼 산다. 대체로 나의 업무 총량과 일정 설계는 내 권한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나의 피곤함을 대체로 설계할 수 있다.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날지, 얼마나 잘 지>를 너무 피로하지 않을 정도로 설계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만약 잠으로 인해 일상적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내 책임이 더 크다.
문제는 이 권한이 개인에게 있지 못할 때다. 현대인의 일상은 일을 기준으로 편성된다. 일하는 시간이 배치되고, 기초 생존활동을 위한 시간이 놓이고, 마지막에 여가가 끼어드는 구조랄까. 일이 개인에게 주는 영향은 지대하다. 조직에 속해 일을 하는 개인은 당연히 조직이 일상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말할 수 있다. 단적으로 경찰, 군인, 소방관, 스튜어디스, 제조업 노동자 등 일정이 불규칙한 교대 근무자나 야근이 잦은 직장인들이 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잠으로 고생하는 그들에게 "잠의 어려움은 <자기 관리™>로 극복하세요!(^^)"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일반적 영리 조직(aka 회사)에 적용되는 경영학의 관심은 어떻게 불확실성을 줄이고, 최소 자원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냐는 것이다. 때문에 '딱 최소한 만큼만 고용'을 유지하고 그 고용 규모로 업무량 변동의 불확실성을 감당하려고 한다. 비용관리 차원에서 이는 꽤나 상식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나는 이 자체가 '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감당 가능한 수준의 추가 업무는 보상만 확실하다면 개인에게도 그럭저럭 반길 일이다. (다만 충분한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
문제는 조직의 업무량 변동폭에 대한 예측 능력, 효율적 대응 능력이 떨어지니 그로 인한 비용을 개인의 '상시적 무리'로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용과 과부하는 회장 님 몫이 아니다. 온전히 조직 구성원(사축) 개인에게 전가된다. 회사는 일단 집에 못 가게 잡아 놓고, 업무가 생기면 할당하는 방식이랄까. 일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으니 시간당 몰입은 감소하고 노동 생산의 효율은 낮아진다. 열심히 해봐야 집에 못 가는데 빨리해서 뭐하겠는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어디라고 안 그러냐! 는 식에. 하지만 한국은 해도 너무 한다. OECD 국가 중 한국인은 거의 가장 많이 일한다.(2015, 2위로 연간 2113시간) 덤으로 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2014, 평균 출퇴근 시간 58분) 그리고 가장 적게 잔다..(2012, 7시간 49분) 조직에 속한 개인은 조직이 정하는 업무 기준을 거부하기 어렵다. 승진과 고과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받는다. '눈치'는 덤이다. 세계적 반도체 기업 모 사에서 일하는 내 친구는 주중에는 집에서 정말 잠만 자고 회사로 '기어 나온다.'
매주 52시간을 일한다면 주 5일 기준 하루 10.4시간을 일한다.(야근이 생기면 추가 시간은 덤이다.) 하루 중 오가는 시간을 자비롭게(^^) 총 1시간을 잡자.(인천러인 나는 최소 2시간이다.) 점심/저녁 시간은 업무 시간이 아니므로 2시간 빼주자. 당신의 하루는 10.6시간이 남는다. 잠을 7시간 잔다 치면 3.6시간이 남는다. 뭐야 생각보다 많이 남네?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각 시간 전에는 '준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어나자마자 지하철을 타러 나갈 수는 없다. 1시간 더 빼자. 2.6시간이 남는다. 가장 낙관적으로 가정해도 이 정도 시간 밖에는 안 남는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거의 주 60시간을 일한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비효율이 있다. 하루 중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쓰는 시간은 더 적다. 고교 시절 나는 바로 자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간단하다. 조금이라도 '나를 위해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기 전 스마트폰을 보는 당신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이러한 보상심리는 '밤새 노는 문화'에도 이어져 불금/불토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오우~ 한국 밤에도 너무나 즐거워요!'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잠 이야기하다가 왜 고상한 지표를 말하냐고? 이 글을 읽을 당신도 한국에서 살고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당신이 혹시라도 1) 잠이 모자라서, 2) 잠 때가 불규칙해서, 3) 잠에 깊게 못 드는 상황에서 자기 탓만 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당신의 수면 문제는 온전히 당신 탓이 아니다.
한국은 어느덧 국민 소득 3만 달러에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나라가 됐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7개 국가밖에 없다. 많은 한국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제 한국은 주요 지표상으로 그냥 '선진국'이다. 한국은 이제 추격할 나라가 별로 없다. 고로 스스로의 길을 가야 한다.
한편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제 양보하고 싶지 않다.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일과 생활의 균형)과 퇴사 열풍(?)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앞으로 개인은 영원히 잠! 과 여가시간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서. 그러니까 결론은 당신의 잠은 국가적 문제다~라는 것이다. 이 말이야.
이겨내야 할 것은 잠보다도 잠을 못 자게 만드는 사회가 아닐까도 싶지만.. 사회가 어떻든, 개인은 뭐라도 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더 나은 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잠으로 유독 고생을 많이 했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성>의 회복이었다. 좋은 항상성을 지키고 나쁜 것은 가능한 멀리하려 했다. 누군가는 사회적, 환경적 요인으로 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가능성은 작게나마 열린다.
다음은 내가 했던 작은 노력들이다. 대체로 내 삶의 규칙성이 잡힌 27살 10월 입대 이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것들이다.
1. 일과 일상을 분리하려 노력한다
아주 단적으로는 자꾸 일이 내 일상에 들어올 때 의식적으로 '꺼놓는 시간'을 꼭 지키려 했다. 군대에서 행정을 할 때도, 나는 업무적으로 긴급하지 않다면 일과 중 내 침상에 오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부탁했다. 부탁의 전제는 업무를 할 때만큼은 내가 빠르고 정확하게 필요한 업무를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비상 상황에는 할 수 없다.)
프리랜서들은 일과 일상의 분리가 특히 어렵다. '의식적'으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일은 계속해서 당신의 일상에 침투한다. 이때 간헐적 <파업 타임>은 참 좋다. 나는 이때 때려죽여도 일을 안 한다. 나는 이 시간에는 기타를 치거나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한다.
2.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입대 이후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는 것들인데, 나는 일관되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이렇게 해야함을 뼈저리게 느낀 것은 입대 직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27살 5월에 입대 날짜를 받아놓고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극심했다. 우물쭈물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자연스레 자주 '무리'했다. 해설서 원고를 쓰느라 24시간 연속으로 깨어있던 적도 있고, 그리고는 15시간을 내리 기절했다. 깨어날 때는 지옥 같았다. 잠 때는 불규칙했고, 몸은 무거웠고, 얼굴이 자꾸 부었다. 심지어는 알 수 없는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났다. 피부과에 갔더니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며칠 쉬니 귀신같이 나았고, 일을 하니 다시 생겼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못했달까. 이후부터는 의식적으로 정해진 때에 잔다. 신기하게도 딱 정해진 시간에 자도 일은 정해진 때 끝나 있었다. 일의 배분과 집중력의 문제였다.
3. 꾸준히 잘 움직인다.
꾸준한 '운동'이 아니라. 분명히 꾸준히 '움직이라'라고 말하고 있다. 예전 창업한 회사 사무실 앞인 성동구 구립 헬스장에는 재야 고수 트레이너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이래저래 '횐 님'들에게 관심을 갖고 많은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 아저씨의 철학은 매우 극단적이었다.
극도로 피곤해 보이는 27살 6월의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횐 님 너무 피곤해 보인다. 건강하고 싶으면 운동하지 말고, 1) 잘 자고 2) 잘 먹고 3) 잘 움직여라.
만약 1) 잘 못 자고 2) 잘 못 먹는데 운동하려면 하지 마라. 해봐야 횐 님은 더 피곤하고 더 힘들 것이다.
차라리 스트레칭 위주로 몸을 풀어라.
잘 잔 다음에 잘 먹고, 그다음에 잘 운동하면 너는 건강을 넘어 강건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정말 탁견이다. 요즘 직장인들을 보면 잠을 줄이고, 제때 먹지 못하는 것을 '운동'으로 해소하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못 자고 못 먹는 이가 하는 운동은 애써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일일 것이다. 또 잘 시간을 임박해서도 너무 격하게 운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4. 먹고 마시는 갓의 양과 질, 그리고 때에 신경 쓴다.
잠을 못 자면 '자극적으로 많이 먹고 마시는 것'으로 보상심리가 발동되는 것 같다. 이때 자제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일상적으로는 너무 맵고 짜게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배고프지 않아도 정해진 때 먹으려 노력한다. 특히 음주는 한 주에 한 번을 넘지 않으려 한다. 아주 더울 때 말고는 찬 물을 마시지 않는다. 체중도 2kg 정도 오차를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기왕이면 가벼운 상태가 좋았다. 신기하게도 몸무게가 2kg 차이인데도 아침에 일어나는 느낌이 달랐다. 더 쉽게 일어난달까.
5.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한다.
나는 헬스장에 갈 때는 스마트폰을 캐비넷이 넣어두거나 아예 가져가지 않는다. 그럼 긴급한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 임마. 라고 말할 수 있다. 다행히도 나는 대통령이 아니다. 세상은 내가 2시간쯤 없어도 별 일이 생기지 않았다. 조직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너트 같은 부속이지, 엔진이나 CPU가 아니다. 일에 따른 특이성은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평소에는 연결 과다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의식적인 노력이 아주 중요하다.
요즘은 자기 전 스마트폰을 안 보려고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한다. 아직은 잘 안되는데 운동할 때처럼 곧 습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외에도 나는 꾸준히 일기를 쓰고, 명상을 하고, 침구와 조명을 신경 쓰는 등 의식적 노력들을 하고 있다. 방점은 <좋은 규칙성>과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내게 잠은 필생의 과제다. 그래도 잠 줄일래 성공할래? 라면 나는 잠 안 줄이고 그냥 평범하게 살겠다.
나는 자기 관리의 화신도 아니고 적당히 성기고 적당히 벌집같이 허술하게 살고 있다. 다만 나 스스로는 불행하지 않고, 심신의 건강을 잘 지키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맡은 일에서도 큰 구멍 없이 해내고 있다.
분명 나는 운이 좋았다. 또 나는 적당히 포기했다. 나의 일상을 디자인하는 것이 빠르고 큰 성공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잠에 대해서는 특히나.
삶과 일상을 보는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르고
잠에 대한 생각도 그럴 수 밖에는 없다.
하지만 당신이 잠을 적게 자고, 제때 자지 못하고, 깊게 자지 못한다면
그것이 당신만의 책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당신이 잠을 줄여 무엇을 해내려 한다면,
깨어있는 시간의 밀도를 높이고
그래도 안된다면 선택하는 마지막 대안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깨어있을 때 몰입하기도, 자기 전 생각을 줄이기도, 아침에 일어나기는 너무 어려우니까..
아
잠을 이기기는 어렵다
진짜. 너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