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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Nov 25. 2018

미루지 않기란 너무 어렵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또 미뤘다. 내일의 나야 부탁해

미루지 않기란 어렵다. 그리고 미룬 것은 결국 해야만 한다.


나는 20대에 해야할 일을 미루고 미룬 죄값(?)이 있다. 내가 정말 크게 미룬 중요한 것은 1) 국방부 퀘스트(군대가기), 2) 척척학사되기(대학졸업)였다. 한국 사회에서는 1번이든 2번이든 그 의미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1번을 하지 않으면 범죄자거나 아픈 사람, 2번을 하지 않으면 발전하지않거나 주류와는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 된다.(4년제 졸업을 '필요이상' 요구 하는 사회 분위기는 참 이상하다.) 아무튼 나는 이 중요한 일을 미뤘다. 중요한 것을 미루는 것에는 납득할 이유가 필요하다. 그때 나의 명분은 '창업'이었다. 결과적으로 창업은 재미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으나 납득할만한 성공은 남기지 못했다. 


오랜 창업의 끝에 가까워졌을때, 나는 스물일곱 가을 군대에 갔다. 미루기의 무서운 점은 결국 언젠가는 그것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스물아홉 나이에 마저 대학을 다니고 있다. 최근 나는 경영학과의 작지만 작지않은 산 중 하나인 생산경영(이른바 오퍼레이션 매니지먼트)이라는 과목을 배우고 있다. 이 과목에서는 큰 중요한 결정인 '전략적인 결정'이라는 것을 하고, 결정에 맞는 연, 월, 주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시점에 맞게 실행하는 방법들을 다룬다. 


요런 거를 배운다 ^.^ (아주 어렵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막 쉽지도 않음)

아무튼 나는 이 과목을 배우면서, 20대 동안 내가 무엇을 미루고, 왜 미뤘던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리고 미룬 것이 잘한 것이었나 먼저 했으면 어떤 점이 좋았을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또 지금 미루고 있는 것들에 관해서도 생각해봤다. 스물아홉 12월, 마지막 20대 한 달을 앞두고 해볼만한 생각이 아닐까. 


내가 미룬 것들과 그 결과, 그리고 미룬 이유


- 군대

20대가 끝나기전 군대를 가야한다는 것을 알았고, 스물일곱 뒤늦게 입대했다. 의경을 갔는데, 하필이면 촛불정국이 시작되어서 처음에는 정말 말그대로 '개고생'을 했다. 다행히 내 또래친구 때 군대보다는 많은 것이 좋아져서, 또 사회에서 해온 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서 말년에는 편하게 지냈다. 장단이 있었다. 그러나 삶의 시계를 많이 늦춘 것은 사실이다.


- 대학

나는 09학번이다. 일과 휴학을 반복하다 스물다섯때 일과 학업, 고통받는 연애의 병행에서 큰 스트레스를 느꼈다. 번아웃이 왔다. 1년 장학까지 받아놓고 2학기 때 출석을 안해서 학사경고를 받았다. '던졌다'는 표현이 맞겠다.(나 왜 그랬지..?) 이후 입대 전까지 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지금 남은 학기를 다시 다니고 있다. 나이를 먹고 배우니 좋은 점은 '학부생'치고는 실무경험이 있는 편이어서 같은 것을 배워도 더 빨리 더 깊이 배운다. 역시나 문제는 군대와 같게 나와 같은 나이 친구들보다는 늦게 출발하게 되어버렸다.


미래의 나야 어떻게든 부탁해!

- 그 밖에 일상의 많은 작은 것들.

제때 치과가기, 제때 잠을 자는 것, 제때 공부하기, 제때 ~하기 등 

그럼 '제때'는 언제지? 일이 미칠 결과가 긍정적인, 일을 하기 가장 적절한 때일 것이다. 우리는 보통은 마감이 올 때까지 휘파람을 불고 있다가 하루 이틀을 앞두고 어떻게든 해낸다. 내가 그렇다. 그런 이유로 고등학교 때도 시험에서 80-90점은 맞을 수 있어도 100점은 좀처럼 어려웠다. 더 좋아지려면 조금만 더 미리 해뒀으면 됐을텐데..


- 주저하느라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

일에 대한 것은 아닌데, 표현해야할 때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특히 사랑이 그랬다. 사랑을 느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 그때 말할 걸! 이라고 뒤늦게 후회한 적이 많다. 사실 지금도 가족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은 못할 때가 많다.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연인으로 만난 이에게도 그렇다면, 가족들에게도 그럴텐데 참 쉽지가 않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엔 이미 그 감정은 상대에게, 나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나는 그때 너를 사랑했어'라는 말만큼 무력한 말이 있을까.


나는 왜 미뤄왔을까? 


첫째로는, 낙관주의 때문이다. '어떻게든 해낼 것이고, 그것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정말 어떻게든 됐다(..) 두 번째로는, 스트레스를 피하려 해서다. 지속적인 할 일의 상기가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지금은 회피'하러한다. 그러나 미룬 것을 아예 하지 않아서 생기는 영향은 스트레스를 넘어 궤멸적이므로, 결국엔 하게 된다. 결국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고, 나는 75~80점, 운좋으면 90점 짜리는 해내지만 100점 가까운 것은 못하는 사람이 된다. 


20대에 미룬 것들은 현재 삶까지 저마다 크고 작게 영향을 주고 있다. 아무래도 30대 초반까지는 그 영향이 강하게 미칠 것 같다. 


미루지 않는 유일한 방법, 양보의 마지노선 만들기


나는 지금 과거를 복구(치)며, 남는 시간 미래를 준비한다. 혹은 미래를 준비하며, 남은 시간 과거를 복구한다. 미루는 선택이 모든 면에서 나쁘지는 않았다. 군대를 늦게가서, 대학을 여전히 다니고 있어서 내가 깨달은 것도 분명히 있다. 다만 그것은 '깨달은 것'이지 명백히 얻은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격차'를 만든다는 점에서, 어떤 일을 할 '최적의 시기'는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미루기는 분명 리스크가 있다. 일과 콘텐츠에만 집중했더라면, 지금 하는 일에 더 속도가 났을 것이다.

이번주 원고 마감 시간이 오고 있다..


- 미루지 않기는 양보의 마지노선 만들기부터

아마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과업 관리법은 아마도 선금과 마감이 아닐까 한다. 이 장치는 책임을 부여하고, 미리 보상을 주고, 하지 않으면 더 궤멸적인 타격(특히 평판에)을 준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참 게으른 나조차 마감을 앞두고는 어떻게든 반드시 해낸다. 


내가 뭔가 열심히 잘해냈던 일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았다.


- 내 일의 결과가 타인에게도 영향을 주는 일이었다. 심한 경우 내가 못해내면 같이 망했다.

- '최소 이만큼은 해내야해'라는 나의 기대치가 있었다

- 그 기대치를 타인에게도 주었다("저 이거 언제까지 이만큼 할 수 있어요")

- 마감은 빠르게, 중간 체크 포인트는 빈번하게


이 원칙은 글에 대해서도 가지고 있다. 브런치 소개에는 '한 주 한 편씩' 이라는 원칙을 프로필에 써두었다. 나는 '85명의 구독자'에게 '일정 이상 퀄리티'를 써내야 한다는 나의 약속을 공유했다. 이렇게 써둔 이상 나는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구독자가 늘면 늘수록 그 약속은 강해질 것이다. 8월 20일 이후로 매주 나는 1편 이상의 여러 글들을 무조건 써내고 있다. (운동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매일 런지 20개, 푸시업 30개, 플랭크 2개를 못하면 나는 탈모와 더불어 고자가 될 것이라는 저주를 스스로에 걸었다. 이젠 공표까지 했군 ^.^)


일요일 저녁 8시인 지금. 한 주가 끝나간다. 마감이 다가왔다.

나는 구독자와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다음은 없다

20대 마감이 오고 있다.

과거 내가 미뤄온 것들은,

결국엔 지금 내가 하게 될 일들이었다.




아.

미루지 않기란

정말 너무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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