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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Dec 07. 2018

꾸준히 노력하기란 어렵다

불안한 세상에서도 다시 내 자리에 앉을 끈기와 용기를 내보는 것

오늘 꿈 이야기를 쓰려했는데 늦잠을 자버렸다

점심에 일어나고 자괴감에 스스로에게 방금 메시지를 보냄.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 지난 편에서는 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편에 이어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조금 옆길로 새보려 한다. 오늘 다룰 어려움은 노력이다. 결국 꿈을 이룬다는 것도 하루 하루의 보통 날들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니까. 꿈을 찾았다 해도 매일 매일 하루를 망친다면 꿈이 무슨 소용일까.


아무튼 무언가를 쌓으려면 노력해야한다. 그것이 꾸준해야한다. 그러면서도 보내는 시간의 밀도를 높여야한다. 그러니까 '꾸준히 집중'해야 뭔가가 쌓인다. 집중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꾸준하기는 더 어렵다. 이 문제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또 언제나 겪을 문제이기도 하다. 한 번도 쉬운 적은 없었다. 이 생각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이루려면 노력을 해야한다는데


네이버 사전은 노력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명사 -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


이 노력이라는 말의 적용단위는 보통 개인을 향하는 것 같다. '국가적 노력'보다는 "제 노력이 부족했어요", "(너) 노력하면 할 수 있어"를 훨씬 더 많이 들어 본 것 같다. 무한 경쟁 시대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아한다! 는 담론이 지배적인듯 하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노력을 '노오력'으로 자조하듯 말하며, 노오~력만으로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포항에서 천연가스전이 발견되었으나 아무런 쓸모는 없다고 한다. 공원으로 만든다던데..

사실 노오력하는 개인의 자조는 꽤나 설득력이 있다. 개인이 마주한 환경이 변했다. 경제적 고성장기는 끝났다.고성장이 감추어 온 사회의 여러 모순들은 이제 더 두드러지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은 노르웨이마냥 동해에서 유전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드라마틱한 고성장을 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이 말씀하셨나 보다. "통일은.. 대박!") 그런 와중에 격차는 더 심해져서 누군가는 풍족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기 개발을 하고 있다. 허탈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살다온' 영어를 '공부한' 영어가 이기기란 쉽지 않으니까. 물론 노력하면 다 된다.(고 한다.) 구조가 문제라면 당연히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뭔가를 해야한다. 요즘 프랑스처럼 죽창을 들든, 투표를 하든 무엇이든. 우린 촛불을 들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라떼는 말이야~ 라는 말까지 들으면 미쳐버린다. 뭐 임마 노력?(최민식 씨와는 무관합니다)

그럼에도 개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사회와 구조에 모순이 많고, 하루 하루가 쉽지 않아도 그 노력 마저안하면 원하는 생활을 할 수도, 작은 성취나마 이룰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 노력해야한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나름의 노력들을. 꿈을 이루기위해서든 생존을 위해서든. 노력해야한다.


나는 알고 있다. 오늘 내가 늦게 일어난 이유는 한국 경제 성장률이 3%가 안되어서가, 지니계수 격차가 벌어져서가 아니다. 걍 내가 늦게 일어난 것이다. (^^;;) 음. 노력이 부족했군.


걱정이 많아 노력이 어려울 때 힐링(?)이 될까


우리는 걱정이 참 많다. 뭔가를 해도 걱정이고, 뭔가를 하지 않아도 걱정이다. 알랭드 보통식으로 말하면 현재에 살기란 참 어렵다. 요즘도 내가 종종 겪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공부할 때 일 생각나고

일할 때 안한 공부 생각나고

운동 안하면 운동 생각나고 정작 운동할 때는 공부가 생각나고


쉽게 말해 '무언가를 할 때 그것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 걱정과 염려 탓이다. 이때 오늘처럼 계획한 스캐쥴이 밀려버리면 경미한 자괴감이 든다. 아으...나는 쓰레기야! 같은 큰 정도는 아니고 정신차려 너 곧 서른이야 임마. 같은 정도.(별로 안다른 것 같은데.) 이 약간의 자괴감이 경각심이 아니라 일상적인 불안이나 만성적인 걱정이 되어버리면 큰 문제다. '몰입과 집중'을 막기 때문이다.

아 글써야하는데 -> 공부 해야하는데 -> 아 운동 안했는데. 하고 늦게 자야지 -> 늦잠 -> 아 글써야하는데


2017년 기동대 시절 일기. 불침번을 서다가 쓴 것 같다.

나는 최근 나의 10년치 일기장을 열어보면서, '걱정과 노력' 문제가 상당히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음을 알게 되었다. 이상은 '걱정과 노력' 문제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다. 


1) 걱정이 너무 많으면 노력도 잘 안된다.


스물아홉 7월 5일까지 의경이었던 나는 올해 초 실제로 좀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잠시 쉬는 시간에 SNS를 켜보면, 다들 참 잘살고 있다. 누구는 큰 회사에서 활약하고 있고, 누구는 책을 냈고, 누구는 큰 프로젝트를 맡아 잘하고 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있다. 시간은 지나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내가 이룬 것은 작아 보인다. 이런 때 스스로를 믿고 나가기란 어렵다. 차마 다시 내 자리에 앉을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앉아도 좀처럼 책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때 나는 걱정이 많았다. 손발이 묶여있다는 생각에 개인적인 발전을 위한 일을 잘 해내기가 어려웠다. 그럴 땐 운동이지! 생각했는데 3월에는 다리 부상을 입고 2달동안 웨이트도 못하게 되었다. 2학기엔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전공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20대 많은 추억이 깃든 회사는 3월부로 아예 사라져 버렸다. 오래 지나야하는 터널에 갇힌 것 같았다. 지나야할 앞으로의 시간이 막막했다.


2) 불안할 거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명분을 만든다.


계속 지다보면, 이기는 기억을 잊는다. 절망하고 좌절한다. 이 문제를 겪는 이들에게 요즘 트렌드는 보통 다음 2가지를 제시한다. 


- (거의 만병통치약) 당신의 자존감을 '높이세요'! 

- 당신은 위로가 필요해요~ 자 힐링하세요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사고 흐름으로 안내할 위험이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자존감이 그렇게나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그게 정말 내 마음대로 높아질 수 있는 것일까?  자존감이나 힐링의 본래 의미가 단지 괜찮을 거야라고 최면을 거는 '주술'이나 '몰핀'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당 도서들도 진의가 그렇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하다못해 고통을 멎게하는 몰핀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 상태로 치료를 안하면 문제가 된다.

총에 맞으면 몰핀을 놓는다. 몰핀은 낫게 하는게 아니라, 아픔이 안느껴지게 한다. 치료를 안하면 결국 죽는다.

시중에 힐링서들이 많다. 사람이 하다가 안되니까 이제는 뭐 하다못해 펭귄도 하고 미키 마우스도 한다. 물론 이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정말 힘들 때는 위로의 말도 필요하고 좀 놓고 쉬어도 좋기 때문이다. 정말로 걱정이 많으면 노력도 잘 안되지 않는가. 문제는 이것이 만성화되어서 삶의 습관이나 태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실제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실재하는 원인들은 내가 보지 않을 뿐 계속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불안과 걱정은 잠시 경감될 뿐,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노력을 해야한단다.

꿈을 이루기위해서든 생존을 위해서든. 

그런데 걱정이 너무 많으면 노력도 잘 안된단다. 

힐링이나 '자존감 높이기'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단다.


남은 건 포기 뿐인가~~(예에~)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아직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스스로를 존경하기 위해

매일 한 그루의 사과나무 심기


그냥 노력하라는 말만큼 무력한 말도 없다. 

나는 노력이 지속되려면 다음과 같은 태도가 대단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스스로를 존경'하기

마음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니체의 격언을 내 식대로 바꿨다. 그런데 그냥 믿어보라는 것은 너무 어렵다. 

나 스스로가 설득될만한 '근거'는 필요하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기' 

행동에 대한 일상적인 태도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의미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것 같다.



사회복귀를 앞둔 3월부터 전역 후 한달 동안인 8월까지 나는 걱정이 참 많았다. 그 시기는 긴 터널같았다. 사실 그 터널을 지나면서도 가장 힘들 때도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적은 없었다. (그정도로 힘들다면 그것은 정말 환자가 맞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한 임상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냥 게임 캐릭터로 치면 디버프 먹은 것처럼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다. 일이 잘 손에 안잡혔다. 불안한 현대인들 대부분은 아마 그때의 나와 비슷할 것이다.


나는 내가 무어든 해야 상황이 바뀐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잘 안됐다. 공부는 손에 안잡혔다. 책을 펴면 보기가 싫었다. 마침 다리가 다쳐서 격한 운동을 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그냥 지금 내가 '공부나 운동'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마음이 불안하니 공부에 집중이 어렵고, 다친 다리로 운동은 얼마나 하겠는가. 꾸준히 하되, 그 정도를 정말 크게 줄였다.(책을 하루 1페이지만 본다든가, 운동은 15분만 한다든가) 아주 놓치는 않기로 했다.


이후에 나는 터널을 지나면서 때때로 빛을 봤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빛이 새어오는듯했다.

그 틈은 대단하지 않은, 작은 이기는 경험들이었다. 

3월부터 전역전까지 몇 달동안 나는 쓸모 없는 아주 구체적인 일들 했다.

하나씩 해나갈 수록 나는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1) '쓸데 없는 것'을 새로 배웠다


노래의 발성을 완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기동대에는 예체능 전공자들이 많았다. 무슨 미술, 무용, 체조, 음악이면 음악 없는 것이 없었다. 준 프로급 세션밴드 하나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어디 어려운 노래가 없나 싶어서 뮤지컬에서 가장 어려운 '겟세마네'라는 넘버를 커버하려했다. 마침 성악을 하는 타 부대 '아저씨'가 고교 동창의 대학 후배였다. 이 친구가 알려준 대로 하려는데 처음엔 잘 안됐다. 아무튼 계속 연습했다. 이유는 없었다.


스트레칭을 배웠다

중량 운동을 못하니 답답했다. 역시나 기동대는 예체능 천국이기 때문에, 무용을 '잠시' 했던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에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스트레칭들을 하나씩 배웠는데, 신기하게도 다리가 더 빨리 낫는 느낌이 들었다. 또 그것도 그것대로 힘들어서 나름 운동이 됐다.


2) 각각이 어렵고, 나 개인에게는 '별 의미없는 판'을 벌였다

서울청 의경부대 지휘관들을 대상하는 교육 - 촛불 때부터 말년 때까지 느낀 바를 모두 담았다.

아는 누나의 결혼식 축가를 불렀다

천주교 사순절(예수의 고난주간)미사 때 주교 님 앞에서 겟세마네를 불렀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의경부대 지휘관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지원했다

마지막 휴가 때 부산으로 혼자 버스킹 여행을 가기로 했다


3월부터 6월까지 위 일들을 하나씩 해냈다. 기본 근무와 위 퀘스트들을 같이 하려니 시간이 빨리 갔다. 각각의 것들을 잘하려면 준비를 잘해야했다. 구체적인 데드라인과 할 것이, 기대가 생기니 아무리 멍을 때려도 데드라인 며칠 전에는 집중을 하게 됐다. 


퀘스트들을 다해내고 나니 전역 날이 다가왔다. 퀘스트들은 사회에서의 쓸모나 유용성과는 거리가 참 먼 일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한 일들이었다. 불안하며 멍때릴 시간에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게 더 나았다. 하나씩 잘 해냈다. 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일기와 편지를 더 자주 썼다. '불안의 실체'를 마주하는데 도움이 됐다.

전역 직후 쓴 일기. 데이트할 사람은 이제 없다..

바쁘게 살다보면, 나를 잃을 때가 많다. 커리어와 관련된 일이나 공부에서도, 나의 불안을 위로할 활동에서도 그렇다. 특히나 나는 말년을 '상관없는 일'에 몰두했기 때문에 현실을 잊기 쉬웠다. 그래서 그냥 나는 자주 쓰기로 했다. 나 혼자에게 쓰고 싶을 때는 일기를, 도움이 필요할 땐 가능한 고민을 구체화해서 편지로 썼다. 


부단히 쓰면서 나는 내가 왜 불안했고, 무엇을 해야하고,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할지 알게 되었다. 미키마우스의 위로가 없이도, 자존감에 대한 강박 없이도 나는 천천히 터널 밖 빛을 보기 시작했다.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회색은 흰색으로 그라데이션처럼 조금씩 빛이 보였다. '구체적인 행동과 피드백'이 힐링의 의미이고, 자존감을 찾는 과정이라면 나는 힐링했고, 자존감을 높여나갔다. 


스스로를 존경은 아니어도, 존중할 수 있게 되었고,

가끔은 쉬어도 나무 심기를 포기하지는 않게 됐다.




시간이 지나 나는 다시 사회로 던져졌다.

그 사이 사랑이, 일이 항상 잘 풀리지는 않았다.

때로는 과정이 힘들기도 하고, 미래가 걱정도 됐다.


그래도 나는 부단히 무언가를 해내려 했다.

쓰고 고민하면서 뭔가를 조금씩 했다.

일기에 적은대로 잘 살지는 못했지만

전역 후 5개월동안 생각한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며

나는 분명히 더 나아졌다.


나는 지금 흰색로 가는 회색 위에 있는 것 같다.

이 상태를 지키려 계속 쓸 것이다.


기말고사

공부할 챕터가 30장이 넘는다

타임 리미트에 쫓기고 있다

오늘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이제 독서실에 갈 것이다.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앉을 끈기와 용기를 내보려 한다.






꾸준히 

노력하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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