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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Jul 21. 2019

청춘을 낭비하지 않기란 어렵다

끔찍이도 짧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청춘을 위하여.

"할 수 있을 때가 가장 좋은 때다"

존함을 모를 어르신의 메신저 대화명. 무언가 하기에 좋은 때를 지나고 있다. 지금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잘생긴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정말 정말 잘생겨서 연예인이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예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티브이 광고에 나오는 사람이 되었다. 보통 유명인들은 카톡 메신저 등 프로필 사진에서 자신을 알아볼 수 없게 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세를 치르지 않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원하지 않는 카톡을 계속 받으면 여간 귀찮은 일은 아닐 것 같다.


이내 이 친구는 아예 번호를 바꿔버렸다. 바뀐 존잘 친구의 번호는 적어도 일흔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인수한 듯 보였다. 저장된 이름은 이미 알고 지냈던 잘생긴 청년인데, 새로 바뀐 사진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어르신의 카톡 사진은 조금 과하게 클로즈업된 무표정의 얼굴, 모자를 쓴 선글라스 사진, 꽃과 절경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르신의 카톡 대화명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할 수 있을 때가 가장 좋은 때다

어르신은 이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때인 걸까. 그때부터 카톡을 켜면 이따금씩 잘생긴 지인의 이름을 검색했다. 잘생긴 지인과 존함도 사는 곳도 모르는 어르신이 함께 나왔다. 어르신의 대화명과 프로필 사진은 거의 바뀌지 않다가 어쩌다 한 번씩 바뀌고는 했다. 가장 최근에 확인한 사진은 어르신이 일본으로 추정되는 거리에서 일자로 서있는 모습이다. 부디 재미있게 사셨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시면서. 


이따금씩 어르신의 카톡사진을 찾아보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때인지 생각한다. 당연히 할 수 있는 때다. 나는 청춘을 보내고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 청춘. 나는 지금 건강하다. 흰 머리도 없다. 아직 아무 것도 아닌 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 청춘을 보내고 있으니까 

지금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청춘들

흔할 수 있으나 사소하지 않았던, 저마다 고민들. 우리 모두는 청춘을 지나고 있다.


홀로 떠난 지난 제주 여행 3일차. 이 날은 성산 일출봉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사장님은 두 분이다. 털보사장님은 가수 이문세를 닮은 인싸(인사이더- 외향성이 아주 높다는 의미)이고, 다른 사장님은 게스트하우스 한 층을 노래를 듣고 부르기 위한 펍으로 만든, 말하자면 뮤지션이다. 성산일출봉을 등반하고 돌아와 쉬고 있다가 털보 사장님의 제안으로 투숙하는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시끌벅적한 파티는 아니란다.


서로 낯선 이들이 펍에 둘러 앉았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난 이들이다. 서로를 전혀 모른다. 자뭇 어색할 법도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도 싶지만, 이 곳은 여행지다. 게다가 우리는 펍에 있다. 잔잔히 음악이 흘렀다. 우리는 제주 어디를 보고 왔는지 남은 여행은 어디를 가려는지 이야기했다. 서로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묻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가 청춘이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서로를 모르기에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에게보다 어째 더 솔직해진다. 모두 청춘인 우리는 저마다 살아온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털보 사장님이 대화를 재미있게 이끌었다면, 뮤지션 사장님은 선곡을 참 기가 막히게 했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술잔도 기울이고 노래도 했다. 


제주 여행 3일차. 낯선 이들이 펍에 둘러앉았다.

서로를 전혀 모르는 우리지만, 우리 모두는 청춘이었다.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는, 무엇이 되고 싶은 우리들.


우리는 모두 청춘이지만, 사는 모습들은 모두 달랐다. 대부분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다. 말하자면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방황이 멋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책임의 무게를 알기 시작하는 시기랄까. 나 역시 이 시간을 지나고 있다.


우리의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서로를 잘 모르던 우리는 어느덧 각자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함께 여행하는 형제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 떠나지 않으면 떠나지 못할 것 같아 여행을 왔다. 길게 연차를 낸 형제는 해안 도로 한 바퀴 전부를 돌 생각이라고 한다. 
15일 째 올레길을 걷고 있는 여행자가 있다. 그는 퇴사를 했다. 살면서 떠난 가장 긴 여행이라고 한다.
인기 종목의 국가대표 목전까지 간 운동선수가 있다. 그는 부상 탓에 직업으로서의 운동을 할 수 없게 됐다. 곧 입대를 앞두고 있단다. 
같은 직장 동료를 2년 넘게 짝사랑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 서른 한 살인 그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고 있다.
목소리가 대단히 또렷한 여성이 있다. 우리는 이 여성이 말과 목소리에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성우 지망생이다. 그녀의 고민은 시험장에만 들어서면 거의 멎어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마냥 대학생인 것도 전업 작가도 아닌, 그러면서 프리랜서 기획자인 애매한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청춘들은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는 무엇이 되려했으나 끝내 그것이 될 수는 없게 되었다. 누구는 무엇이 되려하지만 그때마다 벽을 만났다. 우리 모두는 끝내 무엇이 될지 알지 못했다. 자신의 길을 알고 싶어하는 우리는. 우리는 방황하고 있다. 


인생의 다른 시기는 각기 다른 계절같다. 

각 시기 마다 그때가 아니면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끔찍이도 짧은 우리내 청춘. 미래 나는, 지금 나만 느끼는 무엇을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인생에서 언제까지가 청춘인지는 잘 모르겠다. 몸과 마음의 청춘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청춘이 영원할 수는 없다. 인생이 그러하듯, 청춘도 유한하다. 어쩌면 청춘은 참 짧디 짧다. 그 날 우리 청춘들은 이토록 짧은 청춘에 대해 말했다. 사실 이 글은 그 잔상에 대한 단상이다. 


게스트하우스 '그 날' 펍의 벽 한 켠.


털보 사장님도 모처럼 지난 이야기를 했다. 

이제 그는 막 마흔이 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공부가 잘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대학을 가지 않았다. 일찍이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그런대로 잘 되어서 30대 초반에는 수억을 모았다. 그러나 서른 넷 즈음 사업은 크게 기울었고, 그는 가졌던 돈 만큼의 빚을 지게 되었다. 세상이 싫어진 그는 기숙사가 딸린 산 속 공장에 들어갔다. 공장에서의 일과는 밤낮과는 무관하게 작업 일정에 따라 돌아갔다. 작업에 몰두하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린 기억을 잊기에는 참 좋은 일이었다. 작업 중 가장 큰 즐거움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날은 20대 초반, 그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가 나왔다. 그때 그는 불같은 사랑을 하고 있었다. 지나온 시간 그는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했고, 도전할 수 있을 때 도전했다. 그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멈출 수 없었다. "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나 아직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 그는 지나가고 있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청춘을 생각했다. 


20대 초반에만 느낄 수 있던 어떤 마음이 있다. 서른 다섯의 그는 스무 살 그와 온전히 같은 것을 느낄 수 없다. 서른 다섯의 그는 아직 무엇인가 할 수 있었다. 이대로 멈추고 싶지 않았다. 공장을 나와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했다. 밑바닥이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그에게는 그를 믿는 '동지'가 있었다. 때로는 함께 일하고 때로는 함께 여행을 떠났다. 마흔이 되었다. 동지와 가진 모든 것을 처분해서 이 게스트하우스를 인수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맞은 손님이 우리였다.


우리는 바다로 갔다. 파도 소리를 듣고 무어라 외쳤다. 그 날 새벽 밝은 달도, 보일듯말듯한 성산일출봉도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달라져버린 무엇을 우리는 마주한다. 

지난 나는 이제는 알 수 없고 할 수 없다. 

그런 것이 분명히 있다.


그 날, 우리의 대화를 곱씹어본다.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그 날이기도 하다.) 가장 청춘을 멀리 보낸 사장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인생에는 시기가 있고, 청춘은 영원하지 않다. 어떤 것은 그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달라져버린 무엇을 우리는 마주한다. 지난 나는 이제는 알 수 없고 할 수 없다. 그런 것이 분명히 있다.


10대때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10대 때 사랑을 하던 내 친구들은 지금와서 보면 별 것 아닌 것에 행복해했던 것 같다. 그때 그들은 카페에도 잘 가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공식적'으로는 그랬다.) 학원 앞에서 좋아하는 이를 기다렸고, 함께 떡볶이를 먹었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시간이 허락하는 가장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좋아하면. 좋아하면 충분했다.


어떤 친구는 고3 모의고사 날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그 날 여자친구와 한강으로 놀러갔단다. 자전거를 탔고 저녁에는 한강변에서 캔맥주를 마셨다고 했다. 그 친구에게는 가장 컸던, 사랑의 일탈이었다. 지금 우리는 아마도 할 수 없을. 느낄 수 없을.


21살 처음 기타를 잡던 날을 기억한다. 처음 F코드를 잡을 수 있던 날 나는 정말 행복했다. 23살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던 날은 솔직히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다. 이제 나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다만 그 기억으로 나는 오늘을 더 행복하게 산다. 나는 그때 그것을 했기 때문에.


지난 기억 속에 우리는 추억을 남긴다.

하지만 추억은 과거라는 현상액 속에서만 회색 빛으로 빛난다. 

지금 나는 그때와 같을 수 없다. 내가 지나는 시간이 다른 탓이다. 



청춘은 아름다운 스트러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끔찍이도 짦은 우리의 청춘을 위하여

21살 처음으로 간 합주실

나는 '스트러글하자'는 말을 자주한다. 스트러글이 고등학교때 쓴 일기에도 나오니 쓴 지는 꼭 10년은 더 되었다. 나에게 이 말은 십대 때부터 좋아했던 가수 신해철에게서 왔다. 사실 신해철 노래 중엔 '스트러글'이라는 노래도 없고, 그런 가사도 없다. 그는 이 말을 동사형으로 쓰지도 않았다. 


영단어로는 본래 이런 의미다.


struggle

동사

1. 투쟁[고투]하다, 몸부림치다, 허우적[버둥]거리다
2. 힘겹게 나아가다[하다]
3. (나쁜 상황결과를 막기 위해) 싸우다
 4. (~와) 싸우다; (~에게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다[발버둥을 치다]
5. (~을 차지하기 위해) (~와) 겨루다[다투다]


'스트러글'은 그가 데뷔 15년 차에 발매한 베스트 음반 제목(2002, The Best of Shin Hae-Chul Struggling)에 딱 한 번 나온다. 보통 이런 음반은 데뷔 20주년 이상이 되거나 아티스트 사후에나 나온다. 그런데 이 앨범이 나올 때 그는 고작 만 34살이었다. 참 호방한 30대 청년이었다. 나는 30대 중반인 그가 지나온 자신의 시간에 꽤나 자신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지나온 자신의 청춘을 존경했다고 생각한다.(30대 중반도 여전히 청춘이지만)


과연 신해철의 20대는 치열했다. 일찍이 그는 밴드가 하고 싶었다. 밴드 <무한궤도>의 보컬 신해철은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하며 벼락같이 데뷔했다. 이후 <무한궤도> 해체로 (아마도)자의반 타의반으로 솔로로 음악을 하면서도 끝내 밴드를 하려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저냥 솔로 시절의 인기로 남은 여생을 좀 편하게 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냈다. 솔로이기를 거부하고, 끝내 밴드 <넥스트>를 만든다. 20대에 이미 90년대 한국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로 올라선다. 그리고는 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때, 넥스트를 해체하고 배움을 위해 영국으로 떠난다. 


어쩌면 제법 많은 청년들에게 신해철의 청춘 시기는 꽤 부러울지 모르겠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작에 알았으니까. 그래서 그는 '스트러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20대 초반 그가 쓴 곡  <길 위에서>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난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 자랑할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나의 길 /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주오  
<길 위에서, Myself (1991)>


그는 꿈이 있었다. 그는 음악을 해야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확고한 꿈을 꾸는 이조차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어린듯 젊었던 신해철도 자신이 서야할 길은 알았으나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는 매순간 도무지 알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길 위에서>를 쓰면서도, 그 이후에도, 그가 보낸 시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해야하는 순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다시 자리에 앉을 용기를 냈다. 


나의 불안 나의 청춘

시시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서 

우리는 언제나 스트러글.


스트러글의 방점을 둘 것은 '갈 길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자리에 앉을 용기를 내는 것'이 아닐까. '스트러글한다'는 타인이 아닌 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시간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라 생각한다. 꿈이 있고 대단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스트러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태어났고, 살아가기 때문에 스트러글해야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이렇게 선언할 따름이다. 



우리 스트러글합시다!


여전히 나는 무엇이 되려는지 모르겠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끝내 무엇이 되려 하는지. 

청춘을 지나고 있는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하나 결정되지 않았기에, 무엇이 될지 알 수 없기에 

끔찍이도 짧기에 청춘은 아름답다.


가끔은 멈추어 그저 내면의 소리를 들어볼 따름이다.

50년 후 청춘을 지난 나는, 지금 나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는 하고 싶은 것이 있었잖아. 근데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



나에게 묻는다. 나의 청춘에 다시 묻는다.

다른 길을 간다는 이유로, 자랑할 것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나의 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는가?

시시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탓에 제법 많은 순간 비겁했던 것은 아닌가?

다시 내 자리에 앉을 용기를 내고, 시간의 밀도를 높여왔는가?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나는 정말 '스트러글'했는가?


지나는 나의 청춘에 고한다.

언젠가 청춘이 지난 나에게 지난 날이 부끄럽지 않도록.

끝내 시시한 삶을 살게 되더라도

나는 언제든 다시 일어나 스트러글할 것이다. 

청춘은 아름다운 스트러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청춘이

가고 있다.





청춘을 낭비하지 않기란

어렵다.




p.s 

언젠가 세상에 나가는 첫 창작의 한 켠에 나의 영웅을 위한 작은 헌정사를 남기고 싶었다.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지 않은 나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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