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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Dec 31. 2018

안녕. 내가 사랑한 나의 20대

스무살 나에게, 기대만큼 멋지지 못한 20대 마지막 날 내가

두렵고 걱정이 많은

스무살 나에게 쓰는 편지

 

안녕 스무살 나

내일은 나이 앞 자리가 바뀌어서 생경하고 이상하다 말한지 꼭 10년째 되는 날이야.

맞아 오늘은 20대 마지막 날이야.

오늘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쓸거야.


또 다시 생경하고 이상할 내일이 오기 전에

이제는 너무나 편해져버린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전에 같은 앞 자리의 나에게 나는 쓸거야

우리가 하나라도 더 같은 오늘에 말이야.


내가 사랑한 20대 나에게

마지막 20대인 오늘

21살 나. 많이도 찾아간 저 공간 이제는 없는 곳이야


신념과 세상에 대한 믿음.


얼마전 네가 궁금해서 일기장과 싸이월드를 열어봤어.

스무 살 나는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아. 그때 내 눈에 신념을 가진 영웅들은 참 멋진 사람들이었어. 의사가 되지 않고 무장 게릴라가 된 체 게바라의 이야기와, 반란군에 맞서 최후에도 자리를 지킨 대통령 아옌데의 삶을 동경했어. 그들은 믿는 것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어찌나 감명받았는지 고등학교 졸업식 축사에는 이렇게 적었더라


 "아옌데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 우리에게는 많은 삶의 시련이 있을 것입니다. 때때로, 시련은 우리의 정의로운 신념을 흔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갑시다."

옳은 뜻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용기. 나는 그래서 그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 하지만 무언가를 위해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야. 도무지 무어가 맞는지 알기 어려운 세상이니까. 이제 용사가 베어야할 마왕은 없는 것 같은데, 유령은 있는 것 같아. 이제 확실한 악보다는 구체적인 생활이 더 신념을 가지기를, 지키기를 어렵게 하는듯해.


미안해. 아직도 뭐가 옳은지 잘 모르겠어. 확실한 것은 지금은 세상을 냉소하지는 않는다는 거야. 시간이 훌쩍지나 스물 일곱-여덟, 촛불을 든 광장에서 너는 제복을 입고 서있게 돼.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너인데, 추운 겨울 거리와 광장에서 무표정으로 서있게 돼. 그 곳에서 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지켜보게 되고 말이야. 저마다의 삶과 저마다의 풍경들. 그들이 가진 힘. 나는 진심으로 놀라게 돼. 내가 바라보지 않았던 삶들에 대해.


사소한 친절과 배려의 소중함도 느끼게 돼. 오늘만큼이나 추운 날 초코에몽을 손에 쥐어준 아주머니와 아이를 잊을 수가 없네.(그리고 초코에몽을 선임에게 주게 되지) 잘은 모르겠지만, 세상을 더 믿어도 좋을 일이야. 어쩌다 잠시 뒤로 가는듯 해도 세상은 끝내 앞으로 나아갈 거야. 봄은 반드시 오고 더 나은 미래도 느리지만 오고야 말아.


그때 네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전히 나는 갖고 있어. 세상에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꿈과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떤 기대감. 여전히 철이 안든 나야. 결국 나는 나일 수밖에 없는 건가 싶어.



미안해 뭐 하나 잘 풀리지는 않을 거야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대단한 거악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활이었어. 1년 후 너와 엄마의 자랑이던 사랑하는 가게는 문을 닫게 돼. 비록 엄마가 직접 닫은 거지만 시간이 지났어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아. 맞아 집이 어려워져. 힘드니까 아빠랑 엄마는 자주 싸워. 사랑하는데도 자꾸 싸워. 그 모습이 싫어서 자꾸 밖을 나돌아. 나는 구체적인 생활을 직면하기 보다 외면해.


나는 방황해.

애써 들어간 대학에서는 의미를 못찾겠다며 백지 시험지를 내고 자꾸 다른 길을 궁금해해. 그 죄 값으로 스물 아홉 나는 다시 학교에 돌아와서 학교를 마쳐야해. (그러니까 백지는 내지 않아도 좋았을 거야)

 나의 모든 것이 싫어지고, 끝내는 나마저도 싫어져버려. 그때 너는 물에 젖은 솜처럼, 무기력해 나는.


미안해. 스무살로부터 나는 계속 뭐가 잘 안돼

20대 마지막 날인 오늘도 나는 번듯하지는 못해.

궁핍하지는 않겠지만 돈 큰 집 빠른 차 어느 것 하나 가지지 못해.

그러면서도 알량한 꿈은 버리지 못해.


스물 아홉에도 졸업은 못하고. 사랑도 매번 잘 안돼. 늦게 의경에 붙었다고 좋아했는데 촛불정국을 만나고, 오랜 시간을 던졌던 창업도 성공하지 못해. 툭툭 던지듯 썼지만, 사실 하나 하나가 몇 년짜리 고생들이야! 어떤 것은 지났고, 어떤 것은 지나고 있는데 그 시간들 모두 쉽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다행이다도 싶어.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도 언제나 잘해내지도 못했지만, 진정 그보다 잘해냈을까 하는 순간도 있을 거야.


그래. 앞으로 쉽지 않을 거야. 가끔은 열등감에 괴로울 날도 많을 거야. 세상 많은 행운은 좀처럼 내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좌절하지 않지만 자조하게 돼. 나를 찾기보다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낼 순간들이 훨씬 많을 거고 말이야.


사무실 한 켠에 붙여놓았던 '스트러글' 삶은 아름다운 고군분투.


우린 가끔 삶을 자조해. 그러면서도 멋있으면 좋으니까

상어같은 삶이라고 생각(잘 포장)하고는 해.

원시 어류인 상어는 부레가 없어서 헤엄치지 않으면 떠있지 못하고 가라앉아버려

헤엄치지 않는 상어는 숨을 쉴 수 없고, 먹이를 먹지 못하니까. 상어는 움직여야만해.

하지만 상어는 유연하고 날렵해.


우리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내야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살지 못하니까

대신에 자유를 얻었다고 믿자. 기왕이면 크고 멋진상어가 될 수 있다고 믿어보자.

네가 잃을 것이라고는 가족과 청춘 밖에는 없어.


그런 우리에게 문제는 신념이 아니라 실력인지도 모르겠어. 도태는 신념이 아닌 실력탓인 경우가 훨씬 많을 거야.

물론 실력은 있으나 신념은 없는 야차들이 많기도 하지.

그렇지만 개인에게 너무 많은 선을 기대해서는 안돼. 체 게바라와 아옌데가 필요한 시대가 다시 와서는 안돼.

우린 반칙은 하지 말자. 그래도 변칙은 해야해.


따뜻한 저녁과 웃음 소리를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해져야해.

시간의 밀도를 높이고, 더 공부하고 더 운동하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느껴야만해.

다른 길을 간다는 생각이 결코 더 적게 노력해도 된다거나 대충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

해야할 미룬 것은 반드시 대가를 치뤄야하고, 미루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해.

우리에게는 진심만큼이나 과정의 진정성도 필요해.


하지만 너무 염려하지마 너는 끝내 너를 잃지 않아.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니었어.

과분하게도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알게되고, 궁핍하지 않을 정도의 항산은 늘 해내.

미래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20대엔 꿈을 결코 잃지 않아. 끝내 음울에 빠지지 않고, 무어든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지 않을거야

다시 일어서고 다시 길 위에 설거야.


우리는 낭만과 향기를


20대 나는 무엇이었을까.

한 문장으로는 이도저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

3글자로는 '애매함'이네


오랫동안 스트러글한 창업은 잘 안됐고, 나의 아빠나 형처럼 이 나이에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졸업은 여전히 못했고 좋은 직장에 있는 것도 아니니까. 노래나 하고 글이나 쓰는 인생이라기엔 정말 프로만큼 잘하지도, 그 길로 가지도 못했어. 그런데도 입대하는 날에는 사람들보라고 이렇게 적었더라.


가끔은 가지 않은 다른 길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시간을 되돌려도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룬 성취가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지키는 법을, 낭만과 향기를 곁에 두는 태도를, 노래에 마음을 담는 울림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맞아. 나는 낭만과 향기를 곁에 두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스물 한 살 처음 번 돈으로 너는 엄마의 기타를 사게 돼. 코드 하나 잡는 법을 몰랐는데, 그래도 이리저리 치다보니 나중엔 어떻게 노래는 치면서 부를 수 있게 돼.


20대 가장 행복했던 순간 2번은 모두 노래를 할 때였어. 무거운 버스킹 장비를 지고 부산에도 가고, 제주도에도 가서 노래하기도 해. 글을 잘 쓰는지는 모르겠는데, 20대 내내 바보였던 나를 진정으로 위로하기에는 좋았던 것 같아. 노래하지 않았더라면, 쓰지 않았더라면 나의 20대는 훨씬 더 힘겹고 괴로웠을 거야.



불침번을 서다 그리던 이들을 생각하고 또 적었다


누군가에게 감탄을 주기에는 실력이, 감동을 주기에는 우린 삶의 이야기가 모자라. 그래도 우리의 노래와 글은 공감만큼은 해낼 수 있을 지 몰라. 그렇지 않을까? 계속 부르고 쓰다보면 우린 끝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더 행복한 사람은 될 수 있을지 몰라. 낭만과 향기를, 일상을 지키는 법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마침표를 찍을 용기.


어떤 사람들은 네가 가는 길을 용감하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것은 사실 대단한 용기 때문은 아니야.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것은 부족한 용기 덕분이야.(혹은 때문이야) 내게는 정말 포기할 용기가 없었어. 잘못된 것이 있거나 언젠가 끝나게 될 것들을 알아도 나는 '차마' 끝내지 못했어. 그렇기에 얻은 것도 있지. 하지만 너무 돌아가기도 했어.  


어떤 것은 끝나게 돼. 차이는 내가 끝내느냐 끝이 나지냐는 거야. 일기장에 적은 말이야.

끝나지 않으려 버티다, 스러지듯 천천히 죽어가기도 한다는 것.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것과 마침표를 찍어야하는 때도 있다는 것. 그리고 마침표를 찍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나는 20대 전부를 던지고나서야 용기를 낼 수 있게 됐을까. 내게는 여전히 어렵다. 앞으로도   


참 어렵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의 맛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스물 아홉 내가 느낀 것을 전하기란.


어쩌면 나보다 너의 길에서 뜻 밖에 더 잘해낼지 모르니까. 괜히 아는 척 하지는 않을래.

내일이면 30대가 될 내게도 여전히 마침표를 찍을 용기는 어려워. 언제 무엇을 위해, 포기하는 용기를 내야할지는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다만 무언가를 계속 해나가기 위해 너를 지나치게 잃어간다면,

네가 사랑이라 믿었던 대상이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면,

특히나 누군가가 자신의 상처를 무기로 사용하고, 거짓만을 말한다면


그 때는 용기를 내야할 때가 맞는 것 같아.

내게도 여전히 어려운

마침표를 찍을 용기를.



다시 길 위에서


우물쭈물하다가 20대가 끝나버렸어.

이제 1시간도 안남았어.


내게는 병방 초등학교 1학년 6반 남산형 선생님의 첫 마디를 들은 때도,

대학강의실 첫 수업의 긴장했던 순간도 오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나는 돌아갈 수 없는 문의 저편을 지나버렸어.

유년의 끝을, 이제 막 네가 지난 청소년의 끝보다도 더 빠르게

20대의 끝은 와버리고야 말았어.


인생은 짧다는데

청춘은 정말 끔찍하게 짧은 것 같아


스무살 나야

언젠가 차라리 삶이 멈춰버렸으면 싶을 순간이 찾아올 거야

산을 겨우 하나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눈 앞에 100개는 더 큰 산이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을 거야.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아줘. 스물 아홉 나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어.


그리고

나는 다시 새로운 길 위에 서있어.

이루지 못할 지도 몰라.

시시한 삶을 살지도 모르고,

끝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내 청춘은 끝이 날지 몰라.


언젠가 내게도 더 타협해야하는 순간이

비겁해야 하는 날이 올지 모를거야.

그때 나는 네가 일기장에 적은 말을 잊지 않으려해.


먼훗날 언젠가, 불의에 타협해야하는 순간에도 꿈을 신념을 용기를 잃지 않길.

우린 때때로 쓰고는 했지.

생각해보면 나는 참 쓰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

기쁜 날보다는 뭔가 잘 풀리지 않을때, 나는 종이를 꺼내고, 노트북을 꺼냈어

등록금을 못내 제적당할 뻔하던 날에도,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끝나던 날에도, 회사 문을 닫은 날에도.


20대 나야.

포기 하지 않고 계속 써주어서

별 볼일 없는 나를 믿어주어서 고마워.

스물아홉 내가 너무 가르치기만 한 것 같은데

사실 이 말이 너무나 하고 싶었어.


내일이 밝아도, 또 다음 해의 내일이 밝아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널 믿는 날 믿고

다시 묵묵히 나아갈 거야.


이제 20대 마지막 글의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야.

안녕이라는 말은 떠남에도 다시 마주함에도 모두 쓸 수 있다고

스물 일곱 내가 썼더라.


그럼


안녕

안녕. 나의 스무 살.

안녕 내가 사랑한 나의 20대.



삶은 아름다운 스트러글


다시 길 위에서

나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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