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아홉 내가 서른이 될 때, 열 두살이 된 강아지 문돌이
아주 아주 어릴 적 나는 록맨이라는 게임을 정말 정말 좋아했다. 서울 강북 초롱 유치원에서 인천 계양 대명미술학원으로 그리고 병방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나는 록맨에 심취해있었다. 후에 탈덕(좋아하기를 그만두었다는 의미)했으나 중학교 때 록맨 X시리즈에 심취하여 재입덕(다시 좋아하게 됐다는 의미)을 하게된다. ('~덕'이란 무언가에 대단히 심취하는 행위, 그러한 헹위를 하는 인간의 양태를 의미하는 서브컬쳐 용어라고 이해하면 적절하겠다.) 아무튼 세계 정복을 꿈꾸는 닥터 와일리에 맞서는 파란색 로봇인 록맨. 그의 여정은 언제나 반려견(?) 로봇 빨간 강아지 랏슈(RUSH를 일본식으로 읽었다.)와 함께 였다. 빨간 강아지 랏슈는 록맨이 하늘을 날수 있도록, 높은 곳으로 점프할 수있도록 도왔다. 랏슈와 함께라면 록맨은 절대 닥터 와일리에게 지지 않았다. 록맨과 랏슈는 몇 번이고 세계를 구했다. (10번도 넘게. 사실 와일리 박사가 더 대단한 것이 아닐까?)
어린 나는 랏슈같은 강아지가 '갖고' 싶었다. 엄마에게 강아지를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때마다 안된다고 말했던 것 같다. 어떤 친구들은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가 없었다. 말해도 말해도 안되고 안되어서 나는 언젠가부터 단념을 했다. 당연히 우리 집에 강아지는 있을 수 없었다. 털이 있는 동물이란 우리 집에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였다.
초등학교 2학년때 즈음이었을까.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학교 친구가 축 늘어진 강아지를 안고 왔다. 강아지는 어딘가 다친 데는 없어보였지만 전혀 숨을 쉬지 않았다. 혹시나 깊은 잠에 빠진지도 모르기에 우리는 강아지를 벤치에 올려두고 한참동안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강아지는 깨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 강아지를 살릴 수 없다. 방법이 없을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생각했다. 당시 록맨을 좋아하던 우리들은 "사실 록맨은 원래 소년이었고 로봇강아지 랏슈는 원래 소년의 반려 강아지였는데, 둘다 사고로 죽게 된 후 과학 기술로 되살린 것"이라 믿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록맨은 전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은 낯설디 낯설었다. 무언가 끝난다는 것을 우리는 쉽사리 인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과학이 발달된 미래가 오면 강아지는 다시 랏슈처럼 새로운 생명을 얻을지도 모른다. (영화 A.I에서도 남아있는 일부 DNA를 가지고도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인간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지금은 깨지않는 긴 잠을 자는 강아지를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온전히 그 자리에 있을 만한 곳을 찾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강아지를 묻어주기로 했다. 오래도록 양지바를 곳, 변하지 않을 땅을 찾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우리가 찾은 곳은 옛날 우리 가게와 우리에게 가끔 슬러시를 주시던 아저씨의 편의점 뒤편 공터였다. 공터에는 70평쯤 되는 흙땅이 있었다. 우리는 강아지를 그곳에 묻으며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랐다. 얼마전 강아지가 잠든 자리를 지났다. 신기하게도 20년은 지났는데 여전히 그 자리는 변함이 없다. (역시 좀처럼 개발되지 않는 동네인듯하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때 내 친구들도, 긴 잠을 자는 강아지도.
미취학 아동과 초글링(초등학생) 시절을 지나 나도 어느덧 교복을 입게 되었다. 중학생이 된 나는 학교에 적응하기도 바빴고, 나는 FPS와 RTS 게임에 심취해있었다. 유년시절 반려동물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어느덧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생각도 나지않았다. 이어서 진학한 고등학교는 통학만 50분이 넘게 걸리고 매일 강제인 야간자율학습(으 형용모순의 연속)에 시달리느라 반려동물이라는 개념 자체를 떠올리지 못했다. 나는 오직 잠과 자유만이 고팠을 뿐이다!
내게는 2살 많은 형과 11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내가 고3이 되었을 때, 형은 국방부 퀘스트를 하러가기 전이었고 11살 어린 8살(19-11=8) 동생은 막 초등학교 입학을 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야자와 학원이 끝나고 밤에 축쳐져서 집에 오니 웬 강아지가 집에 있었다. 우리 집에 온 이 강아지는 너무 작아서 내 발바닥보다도 작았다. 좀 큰 리모콘만한 녀석이 구석에서 꼬물대고 있는데, 경계심이 많아서 좀처럼 편안하게 잠을 자지 않고 조금만 인기척이 있어도 깼다. 어찌나 작은지 혹시라도 실수로 발에 차일까 집 안에서는 한동안 바닥을 보고 걸었다.
당시에는 동생 희지의 정서함양을 위해 키우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며칠 전 따로 엄마 님('어머니'라는 호칭은 아무래도 입에 붙지를 않는다)께 여쭤보니 아빠는 직장을 다니고, 엄마는 한창 가게를 하던 때라 어린이 희지가 혼자 남는 것이 마음에 걸려 강아지를 키우기로 결심하셨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강아지를 보러갔더니 자고 있는 다른 강아지들과는 다르게 엄마를 계속 보고 낑낑거리는 강아지가 있어 그 강아지를 데리고 오셨단다. 그 애가 지금 우리 집 개 시츄 문돌이다.
당연히 문돌이는 처음에는 이름이 없었다. 퍼피, 초롱이, 해피 등 뻔한 이름을 피하기 위해 다들 이름으로 고심했던 것 같다. 나는 좀처럼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리히텐슈타인, 슈나우저 3세 등 말도 안되는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형이 어느날 이 아이를 '문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가족들도 이 강아지를 문돌이라고 자연스레 문돌이라 불렀다. 사후적 의미로 해석을 덧붙이자면, 문씨 집안에 '남자 강아지'이기 때문에 문돌이가 된 것 같다. (물론 문돌이는 훗날 더이상 남자로 불리기 어렵게 되었다. 그 말인가?)
문돌이는 우리 가족과 지내다보니 금세 경계심도 풀어졌다. 사람처럼 벌러덩 누워서 잘 때가 많아졌다. 쑥쑥 크는 속도도 빨라서 내가 스무살이 될 때쯤엔 거의 지금 크기가 되었다. 한창 이가 날때는 간지러운지 비버처럼 나무로 된 가구들을 다갉아 먹었다. (예기치 못한 움직임을 할 때도 있었지만 뭐.. 그렇게 되었다.) 착하고 심성바른 문돌이는 걱정이 들만큼 잘 짖지도 않았고, 말썽도 피우지 않았다. 따로 알려준 적도 없는데 용변도 알아서 잘 가렸다. 약간 의뭉스럽게 머리도 좋아서 배변시트가 없으면, 운동 매트 위에라도 용변을 봤다. 잘 짖지 않는 문돌이였지만, 식구들 발소리가 들리면 문 쪽으로 나가 언제고 반갑게 짖었다. 언제부터인가 문돌이는 우리 가족이었다.
착한 강아지 문돌이는 참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문돌이를 키우며 알게된 사실이지만 강아지들은 각자의 성격이 있고 마음이 있다. 문돌이는 유독 고집과 정의감(?)이 있다. 말썽을 피우지 않기도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혼나면(?) 그르르 거리면서 불만을 표시한다. 유독 브로콜리와 오이, 당근 같은 채소를 좋아한다. 그러면 그릉 거리면서 또 좋아한다.
언젠가 유기견에 대한 영상을 보고 문돌이를 쓰다듬으며 예쁘다 예쁘다 말하다 함께 잠이 든 적이 있었다. 문돌이는 왠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츄는 원래 눈물이 많다지만 왠지 그 날은 정말 우는 것 같았다. 분명 문돌이에게는 마음이 있다.
문돌이와 함께한 11년동안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19살 교복을 입은 고3이었던 나는 어느덧 20대 10년을 훌쩍 지나 보내고 막 서른을 맞았다. 그 사이 집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내가 스물 두 살, 집이 너무 어려웠다.그 시기 파산을 했었고, 이제서야 그 여파에서 벗어나고 있다. 엄마는 가게를 정리한지 오래고, 아빠는 여전히 자동차 정비를 하고 계신다. 두 분의 시간은 이제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고 있다. 형은 군대를 다녀왔고, 대학을 졸업했고 결혼을 했고 하성이의 아빠가 됐다. 8살 희지는 19살 고3이 되었고, 문돌이가 처음 오던 날의 나의 나이가 되었다.
11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문돌이는 우리와 함께였다. 내가 창업이다 의경이다 20대 내내 바깥을 나도는 동안에도 오랜만에 돌아올 때마다 문돌이는 언제나 집에 있었다. 작은 강아지 문돌이는 나의 10대부터 20대 전부, 그리고 시작된 30대를 지켜보았다.
집 밖에서 오래 떠나있을 때면 가끔씩, 특히 늦은 나이 군대에서 불침번을 설 때면 떠나온 집이 생각나고는 했다. 엄마가 아빠가 희지가 형도 생각났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것들. 남겨두고 내가 떠나온 것들. 생각이 났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문돌이는 특히나 걱정되었다. 내게 가장 두려운 일은 문돌이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다. 다행히 몇 달만에 집에 돌아올 때마다 문돌이는 내 발걸음만 듣고도 내가 오는 것을 알고는 반갑게 짖었다. 계단을 오르며 그 소리에 나는 안도했다.
내가 집에 없는 동안. 밖을 떠도는 동안에도 문돌이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 너의 사랑은 언제나 직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너의 사랑은 외길이다. 내가 걷도는 동안에도 너의 사랑은. 11년 동안 변함없이 너는.
다시 집에 돌아왔다. 남들은 집을 떠날 시기에 나는 다시 돌아왔다. 녀석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역한 날 밤 문돌이에게 말했다.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내 부모의 늙어감과 동생이 자라는 것을 체감한다. 많은 것들이 너무나 빠르게 변함에 두려움을 느낀다. 지난 11년을 생각하니 그 시간이 참 끔찍이도 짧았다. 유년시절에서 청소년기를 지나는 시간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지났다. 하지만 나의 시간이 빠르게 걷는 동안 문돌이의 시간은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언제나 자리를 지키던 문돌이도 떠나갈 것을 나는 안다. 그 날이 올 것도 그 날 내 마음이 참 많이 아플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문돌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문돌이의 눈동자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맑은 물을 먹이고, 가끔 좋아하는 야채도 챙겨준다. 아삭 아삭 잘도 먹는 문돌이. 그래도 처음 집에 돌아왔을 때보다 건강해진 것 같아 다행이다. 얼마전에는 결혼한 형을 빼고 가족들 전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나는 집에 남았다. 밀린 일들 탓이기도 문돌이가 걱정되어서이기도 했다. 집에 혼자 남아있을 문돌이가 생각나서 매일 밖에서의 용무가 끝나자마자 급히 집으로 달려왔다. 하루 종일 혼자 있었을 문돌이를 위해 그 날 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문돌이는 매일 내 침대 아래서 잠에 들었다.
나의 시간이 가고 있다. 문돌이의 시간은 달리고 있다.
지나는 시간속 변하는 수많은 것들.
하지만 너는 언제나 변함없이 직진이다 외길이다.
나의 사랑이 바깥을 돌 때조차도 너는 그랬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도 오고야 말겠지.
내가 맞이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언젠가는 오고야 말겠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언젠가 세상을 떠나고야 말겠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너의 시간.
다른 시간을 사는 우리이기에
언젠가는 다가올 끝을 아는 우리이기에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너를 사랑하는 나는 너에게 책임이 있기에
사랑의 시작, 지나는 모습, 끝을 모두 보낼 우리
문돌이가 좋은 아이인 것처럼, 좋은 반려자가 되기는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오늘 밤엔 꼭 산책을 나가자.
아
반려동물을 키우기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