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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Mar 13. 2019

사랑과 동경을 구분하기란 어렵다

나는 진정 몰랐다. 나를 잃었을 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사랑이 무엇인지 말하기란 정말 어렵다

이들은 사랑이 무엇이라 말할까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이유는

사랑을 해석하는 자아의 상태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는 연속적이다.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고 멈추지 않는다. 물은 순환하고 빈 곳은 채워지고 어떤 것은 흐른다. 자연 세계는 멈추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 우리는 태어났고, 태어난 죄값으로 살아지고 있다. 살아감이 본능인 유기체로 우리는 살아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살아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무엇을 보고 듣고 체험하며 또 무엇을 느낀다.> 느낀 것이 모여 어떤 변환을 거쳐 나의 자아를 구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각자의 자아는 세상을 마주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우리는 세상을 마주하며 또 다른 세계인 자아를 만들어낸다. 자아는 또 다른 세계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자아는 세상처럼 연속적이다.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고 멈추지 않는다. 감정은 순환하고 변동하고 어딘가로 흐른다. 자아 세계는 멈추지 않는다. <사랑>은 자아 세계의 감정에서도 가장 주요한 '상태'나 '흐름'인지 모른다. 사랑에는 분노도 있고, 증오도 있고, 연민도 있고, 배려도, 배시시 웃게 하는 설레임도, 봄날의 따스함도, 슬픔도 있다.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은 사랑이 아니라 말하기는 참 어렵다. 자아를 적절히 잘라내고 분절해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잘라낸 어떤 부분을 보고 <사랑은 무엇입니다>라고 말하기도 좀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것입니다!>라는 선언은 쉬우나 그 선언이 보편적 진실일 가능성은 지극히 적다. 무엇보다도 각자가 마주하는 세상은 같지 않고, 세상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도 다르고, 그런 이유로 각자의 사랑은 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모습의 사랑이 있으며,

각 사랑이 공유하는 어떤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만은 알고 있다. 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체험이다.


인간은 숫자를 만들고 여러 공식들을 만들었지만,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완전히 표상해내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 실체에 가까워질 수는 있으나 절대적인 실체가 무엇인지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도 분명 존재한다.


앞선 논의들에 따르면 우리는 사랑을 어떤 말이나 단어로 모두 표현하기란 어렵다. 사랑에 대한 언어 표현은 많은 이들이 느낀 사랑의 여러 모습과 그 감상에 대한 단상들을 제공할 따름이다. 다만 그 느낌들로부터 우리는 사랑을 넌지시 알 법도 할 수 있다.


사랑은 때로는 도취적 상태 같기도 하다. 그러면 도취가 끝나면 사랑이 아닐까? 장범준의 노래 가사처럼 '설레임이 없는 사랑, 편안함만 남은 사랑'은 사랑이 아닐까? 둘 다 사랑이다. 분노, 증오, 연민, 배려, 설레임, 따스함도, 슬픔도, 차가움, 그리움도 사랑의 어떤 모습들이다. 피천득의 인연에서 말하는 세 번째는 아니 보았어도 좋을 인연과 느꼈던 마음도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저마다의 풍경과 해상도를 가진다. 다른 넓이와 깊이를 가진다.

나는 사랑을 모른다. 사랑의 체험에 대해 느끼고 상상하고 "이렇지 않을까요?"

그려볼 따름이다. 당신의 사랑은 어떠한 모습인가?


사랑의 상태를 표상하기란 극히 어렵고, 결국엔 각 개인이 체험에서 느끼는 바와 체험을 나눈 관계의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 가에 달린 것 같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설명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며, 상호 간 '어떻게 느끼는가' 로만 체감되는 현상이다. 때문에 사랑에 대한 나의 말은 철저히 내가 느끼고 상상한 감정을 말로 풀어내려는 노력을 넘어서기 어렵다. 다만 이 노력이 사랑의 실체를 조금은 상상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랄 따름이다.


나는 사랑을 모른다. 사랑을 체험한 적이 잘 없는 탓이다. 그래서  '나의 사랑은 이랬어요'라고도 쉽게 말하지 못하겠다. 사랑은 무엇일까? 당신에게 사랑은?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세계이며 또 다른 자연이다. 그중 사랑은 마음의 가장 주요한 감정 상태여서 이에 대한 논의들은 너무나 많지만 뭐가 정답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받는 사랑의 속성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사랑의 속성이라 볼 수 있겠다.



사랑을 상상한다.

단어들을 채우는 사랑의 경험을 떠올렸다.

사랑에는 내가 있다/있어야만 했다.


사랑에는 '그리움'이 있다.

내가 죽으면 내 부모는 나를 그리워할 것이다. 문돌이가 죽으면 나는 문돌이를 그리워할 것이다. 보고도 싶어 할 것이다. 내 부모는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나도 아마 문돌이를 사랑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모습에는 '그리움'이 내재하는 것 같다. 고 생각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사랑의 구성요소들을 상상해볼 수 있다.

사랑에는 '기대와 분노'가 있다. '책임'이 있다. '배려'가 있다. '상대'가 있다. '교감'이 있다. '좌절'이 있다. '끝'이 있다. '상실'이 있다. '아픔'이 있다


...


그리고

사랑에는 '내'가 있었다.

이 모든 것에는 사랑하는 내가 있다. 내가 없으면 사랑할 수 없다.

나에는 나의 몸이 있다. 나의 마음이 있다. 나의 의지가 있다.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모자라다면

사랑하기란 어렵다.

'내'가 없으면 사랑도 없었다.


내게는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매력은 정서적 끌림을 만드는 어떤 특성/느낌.

매력의 가위바위보에 이기지 못하고 무장해제된 나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스물 아홉 봄. 6년 전 전하지 못한 편치를 발견했다. 나는 편지를 전하고 싶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어떤 느낌일까? 내게는 매력이라 말하는 것에 순간 '압도'되는 경험이었다. '강하고 순간적인 매료'도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매력은 묘하다. 딱 집어 무엇이라 말하기 어렵다. 마치 향수의 향기 같다. 좋은 것들의 미묘한 조합인데, 무엇들으로부터 왔는지 넌지시 알 법도 하지만 그 원천을, 그 비율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매력을 굳이 정의 내리자면 <정서적 '끌림'을 만드는 어떤 특성/느낌>이라 해두자.


매력의 상대성은 가위바위보 같다. 나에게는 매력적인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고, 남에게는 매력적인 무언가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기도 한다. 나는 내가 끌려가지 않을 수 없던 큰 인력을 기억한다.


M을 처음 본 것은 스물 셋이었다.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본 그녀에게는 또래가 가지지 못한 기품이 있었다. 지적으로 보였고, 구김살도 없어 보였다. 그녀에게는 아우라에 가까운 분위기가 있었다. 그녀는 특별한 부족함 없이 자란 듯 보였다. 스물 셋 나와는 모든 면에서 반대였다. 그녀에게도 나름의 고민이나 나름의 힘듦이 있을 터였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했고, 그 해 여름 딱 2번을 보았다.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는 어떤 우수가 있었다. 기품 있는 말씨의 틈에는 공백이 있었다. 그 행간에는 나의 상상이 채워졌다. 나는 이내 무장해제되어버리고 말았다.


마음에는 냄새가 있다.

좋아하는 마음에도 냄새가 있다.

마음의 냄새에도 좋은 타이밍이 있다.


편지를 썼다. M에 대한 마음을 썼다. 에둘러 일상들을 쓰다가 한 장 두장 넘기다가 마지막 장에는 좋아한다고 썼다. 마지막 줄에는 아마 <나를 좋아해 줘.>라 적었던 것 같다. 편지를 쓰고는 풀을 붙여 봉했다. 편지를 전하고 싶었다.


스물 셋, 그 편지를 주지는 못했다. 만나지 못했던 탓이다. 또 애써 만나려고는 하지 않았던 탓이다.

마음에는 냄새가 있다. 좋아하는 마음에도 냄새가 있다.

M은 내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그 마음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신기하게도 그 사이에도 매년 한 번씩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신기하게도 M과 나는 만나지는 않았다.

스물 일곱 입대 전, M은 내게 소개받을 생각이 있냐 물었다. 괜찮다 말했다.

그 사이 내게도 몇몇 사랑이 오고 지났지만 전하지 못한 편지가 있음을 알았다.

스물 아홉. 집에는 6년간 전하지 못한 편지가 여전히 있었다. 이 편지를 전하고 싶었다.

20대가 가기 전 편지에 담은 마음에서 졸업하고 싶었다. 홀가분하고 완전히 어떤 아쉬움도 남기지 않은 채로 새로운 앞자리를 맞이하고 싶었다. 그렇게 20대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스물 아홉 봄. 부대에 있던 공중전화로 M에게 전화했다. M이 전화를 받았다.

가벼운 안부를 주고 받았다.

만나기로 했다. 애써 서두르지는 않았다.

그는 내게 다시 소개받을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이번에도 괜찮다 말했다.


몇 달이 지나 갑작스레 M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침 시간이 맞아 우린 보았다. 6년 만이었다.

나와 그녀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마지막에 나는 6년 전 써둔 편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음에 볼 때 그 편지를 주기로 했다.


다음에 보았다. 편지를 주었다. M은 집으로 돌아가 편지를 읽었다.

우리는 연인이 되어보기로 했다.

나는 스물 셋 그 마음으로부터 졸업을 바랐다. 바라지 않았던 결과였다.

그러면서도 바랐던 결과였다. 6년 전 써둔 편지. 그 마음은 나에게도, M에게도 뜻 밖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매력의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기지 못했다.



사랑과 동경. 구분하기 어려운 그 경계


사랑은 무엇이고 동경은 무엇인가

무엇은 사랑이면서 동경이고, 동경이면서 사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서부터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가 동경일까


그 마음으로부터의 졸업장을 부치다.


스물 셋의 나와 스물 아홉 내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나'의 중요함을 알고는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있어야만 '너'가 있을 수 있다. 그래야만 끝내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머리로는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을 몰랐다. 지금도 모르지만 그때는 좀 더 몰랐다.

스물셋의 나는 그를 동경한 것이 분명했다. 스물 아홉 나에게도 여전히 그는 동경에 가까웠다. M의 행간에는 여전히 말하지 않는 여백이 많았다. 그 사이에는 매료하는 매력이 있었다.

사전은 사랑을 이렇게 말한다.


사랑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5.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동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동경

1.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함.
2. 마음이 스스로 들떠서 안정되지 아니함.


어디서부터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가 동경인지 알기는 어렵다. 사랑이면서 동경이기도, 동경이면서 사랑이기도 할 것이다. 이 점에서는 접점이고, 어느 때는 접면이고, 어느 지점 어느 때에는 경계의 그라데이션에서 구분이 없어져버린다. 사랑이 동경이고 동경이 사랑이 되어버린다. 어디에서는 남해이고 동해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처럼. 여기에서는 무엇은 무엇이고 무엇은 무엇이 아닌지 말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말로는 마음을 충분히 표상해내지 못하는 탓이다.


스물 아홉 늦여름, 그녀를 만나며 내가 그녀에게 끌리고 그리워하면서도 아주 초조했음을 기억한다. 6년 사이 그는 많은 것을 이뤄냈다. 그가 보낸 시간은 밀도가 있었다. 하나의 길로 쌓인 그의 시간은 성취를 쌓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반면 나의 시간은 이룬 것은 상실하고, 2년을 동결된 채로 지내다 그제서야 막 해금된 참이었다. 나는 늦은 새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시작되기를 바란 적이 없었으나 시작되자 끝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녀에게 그렇게 말한 적도, 내색을 한 적도 없었으나 마음에는 냄새가 있다.
그것은 사랑이 동경에만 멈춰있는 마음이었다.   

사랑이 아닌 동경에서 우리는 매력의 가위바위보 에 지고야 만다.

나는 내보일 내가 아직 자신이 없었다. 나를 잃어버리고, 나도 모르게 나의 자아를 상대에게 위탁한다.

그리고는 상대의 처분을 기다린다.

나를 잃은 나는 매력을 잃는다. 끝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켜보는 때 동경에는 힘이 있다. 하지만 마주해야 하는 관계에서 동경은 균형을 잃게 한다.


계절이 바뀌기 전 그녀와 나는 끝이 났다. 사실 이어질 수 없음을 알았다. 그것이 그녀와 나를 위한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이후 나는 다시 나를 보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틈틈이 책을 봤다. 그러기도 힘들 땐 거리를 달렸다. 의경시절 늘 서있기만 하고 달릴 수 없던 그 거리를 달렸다. 매주 글을 쓰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나는 다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시간이 지나 계절이 바뀌었을 때, M에게 닿을 수 있는 곳에 편지를 부쳤다.

그가 내게 남긴 것들을 정리하고 그의 행복을 바라는 편지였다.

한편으로는 스물 셋. 그 마음으로부터의 정말. 완전한 졸업장이었다.


이젠 동경하는 나로부터의 안녕이어야 했다.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랑.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애써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오늘도 사랑을 꿈꾼다.


사랑은 저마다의 풍경과 해상도를 가진다. 다른 넓이와 깊이를 가진다.

사랑의 여정 역시 그러할 것이다. 사랑은 때로는 지난하고 아플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을 꿈꾼다.




스물 아홉 편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전부가 될 의미를 찾는 여정이라면, 그 여정은 어쩌면 이다지도 고된 걸까.

사랑은 어찌나 지난하고, 어쩌면 이렇게나 아픈 걸까. 우리는 얼마쯤 오고야 만 걸까.

굽이 굽이 돌고 돌아 난 길의 끝에. 소중하고 전부인 사랑을 나는, 너는

끝내 이루어낼 수 있을까."


사랑에는 저마다의 풍경이 있다. 사랑에는 '기대와 분노'가 있다. '책임'이 있다. '배려'가 있다. '상대'가 있다. '교감'이 있다. '좌절'이 있다. '끝'이 있다. '상실'이 있다. '아픔'이 있다. '성장'이 있다. 당연히 사랑에는 '동경'도 있다.


지금 동경으로부터 졸업했는지는 모르겠다.

사고처럼 오는 사랑에 쉽게 빠져버릴 지도

인력에 궤도를 잃은 위성처럼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에 뛰어들 수 있는 그런 내가

그런 사람이, 그런 때가 올 것을 믿는다.


기다려서는 안된다.

언제든 용기 내어 뛰어들 수 있도록.

그저 나의 길을 내 볼 따름이다.


다시 봄이 왔다.

오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사랑을 한다.

나 부러운 건가..





사랑과 동경을 구분하기란

어려웠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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