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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Oct 04. 2019

좋은 결정을 내리기란 어렵다

오늘 뭐 먹을지 정하기도 어려운데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류 역사는 온갖 망한 결정으로 가득 차있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 결정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역사 속 나쁜 결정은 결정 시점에서는 꽤나 '합리적'으로 보인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에 의한 진주만 공습!


<좋은 결정> 이전에 <나쁜 결정>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결정도 결국 인간이 하는 것인데, 인간 역사는 온갖 망한 결정들로 가득차있다. 


역사를 보다 보면, 왜 저런 (멍청한) 결정을 내린 거야 싶은 때가 많다. 결정을 내린 이들은 당시 그 국가 최고 엘리트들 아니었는가. 하지만 가장 똑똑한 사람들의 결정도 언제든 자기 파괴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정말 그 위험을 몰랐을까? 물론 이 생각은 전후 관계를 이미 알고 있는 후대의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생각일지 모르겠다. 비교적 가까운 역사에서의 망한 결정을 함께 톺아보도록 하자.


1941년 12월 겨울. 사실상 선전포고 없이 일본은 미 태평양 함대 기지가 있는 진주만을 기습한다. 왜 일본은 미국을 공격했을까? 그때까지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하여, 아시아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허구의) 기치 아래 침략전쟁을 진행중이었다. 중국과는 10년 가까이 전쟁중이었고, 동남 아시아에도 침략을 감행해서 자신들의 야욕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을 견제할 목적으로 석유와 철강 수출을 아주 강력하게 제한(이른바 "ABCD 포위망")했다. 해당 자원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던 일본에게는 치명적인 조치였다.


당시 일본은 육군의 수장인 도조 히데키가 수상(+상공, 육군, 내무, 외무, 문부 대신을 겸했다)인 군부 독재기구 <대본영>이 이끌고 있었다.(텐노, 그러니까 일왕이 얼마나 역할을 했는지는 일단은 논외로 한다.) 대본영은 '대동아공영권' 구축을 위한 전쟁 수행을 위해 존재했다. 하지만 석유와 철강 없이 전쟁을 계속 할 수는 없다. 당시 미국은 일본에 대한 제재 해제 조건으로 1) 중국 대륙 내 일본 철수, 2) 나치스 독일- 파시스트당 이탈리아와 맺은 삼국 동맹 파기 등을 제시했다. 일본은 미국과 협상은 이어는 갔지만, 미국이 내건 조건은 일본 입장에서 <대동아공영권>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기 때문에 협상이 잘될 리가 없었다.


이제 일본은 선택해야했다. 


결정 A : 미국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중국, 동남아에서의 전쟁을 포기한다 
vs
결정 B :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아시아 내 전쟁을 이어간다

A안은 <대동아공영권>의 사실상 포기를 의미했고, B안은 장기화될 수 없었다. 석유와 철강없이는 전쟁도, 산업의 생존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본의 대본영은 자신들의 존립 기반인 '대동아 공영권'을 포기할 수는 없었고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일본이 비록 미국과 전면전을 벌인 적은 없었으나 국력차가 너무나 커서 일본이 미국을 이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일본도 그것을 알았다.(적어도 대본영 내 해군 파벌들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본영의 독재자 도조 히데키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육군 파벌의 좌장이었다.)


"가진 것을 잃을 바에는 물어버리겠어!"

상대와의 유리한 협상을 위해 강력하게 공격을 한다? 

하지만 미국은 생각보다 너무 강력했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을 너무 몰랐다.


놀랍게도 일본 대본영의 창의적 선택은 결정 A도, B도 아닌 <미국과의 유리한 협상을 위한 미국 공격™>이었다.(예?) 단기에 아주 큰 피해를 주면, 전쟁을 두려워하는 미국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엄청난 판단(?)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히틀러와 나치스 독일이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과 한창 전쟁중이었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어느 전쟁에도 파병하지 않았으며 정중동하며 상황을 주시할 따름이었다. 훗날 2차 세계 대전이라 불리는 전쟁은 미국 입장에서는 많이 우려스러운 '남의 전쟁'일 따름이었다. 당시 미국은 직접 다른 국가와의 전면전을 벌이려 하지 않았다. 미국이 참전한 1차 대전으로부터 20년 남짓 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을 공습한다. 이 기습으로 미 해군은 창설된 이래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군인 2,334명 사망, 1,143명 부상 민간인 103명 사상, 전함과 시설에 타격) 과연 일본의 예상대로 미국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협상 개시가 아니라 전면전의 선포였다. 미국은 12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며칠 뒤에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미국은 2차 대전에 '공식 참전'했다. 이제 전쟁은 '남의 전쟁'이 아닌 '우리의 전쟁'이 된 것이었다.


결과는? 일본 제국의 패망이었다. 이 결정은 그들을 유리한 협상은 커녕, 패망으로 이끌었다. 도대체 왜 이런 망한 결정을 한 것일까? 진주만 공습은 국가전략 차원에서 보면 철저히 망한 결정이지만 그 결정 배경을 아는 것은 사회 속 개인, 조직 내 개인인 우리에게 꽤나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만 알았지 사상, 정신적 이해가 모자랐다.


일본 대본영은 민주주의 체제의 미국을 너무 몰랐다. 대본영은 전제적 군주 텐노(일왕) 아래 엘리트 군인들이 나라를 운영한다. 그들이 결정하면 국민이 아닌 신민이 '결정을 받든다'. 의심은 허용되지 않고, 황국신민은 열과 성을 다해 목숨을 다해 따라야 한다. 대본영은 미국이 전쟁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들의 정신이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미국 내 반전 여론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전쟁의 공포를 자극하는 것은 일본 입장에서 협상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회심의 카드라고 생각했다.


일본제국과 다르게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였다. 대통령을 국민이 뽑고, 그마저도 국민이 선출한 의회가 견제한다.선거 시스템 하에서 정치인들은 국민의 눈치를 보고 마음대로 하지도 못한다.(어디까지나 대본영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게다가 임기는 어찌나 짧은지 천황은 만세일계로 영원한데, 대통령은 허구헌날 바뀐다. 대본영 입장에서는 이렇게 비효율적일 수가 없다. 천황의 권위를 내세워서 엘리트들이 최적의 결정을 내리면 되는 것 아닌가?(물론 계속 망한 결정이었음)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는 대체로 전체주의 국가보다 전쟁 시작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를 지키는 전쟁'에서는 강력한 통합을 발휘한다. 일방적 복종이 아닌 구성원의 자발적 지지와 동의에 기반한 통합은 일방적 동원 체제보다 견고하고 강력하다. 진주만 공습은 전쟁에 냉소적이던 국민들을 자신들이 이룩한 터전을 지키기위해 싸우는 자발적 수호자로 만들었다. 상하원은 선전포고를 결의했다.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들었다.' 전국에서 자원입대가 줄을 이었다.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청년이 상심하여 자살하는 사건이 있을 정도였다.


대본영이 진정 이해하지 못한 것은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국민의 정신이었다. 일본 제국은 민주주의 체제가 총력전에서 얼마나 탁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 체제는 지키는 전쟁에서 가장 강력해진다. 일본은 그것을 몰랐다.


(비슷한 경우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선조를 잡으면 전쟁이 끝나리라 생각했지만, 선조가 탈주빤쓰런하고도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조선은 쇼군과 다이묘가 항복하면 끝나는 전국시대 일본이 아니었다.)


책임지지 않고 협력도 하지 않는 대본영의 독단적 의사 결정 체제


어떻게 진주만을 공격까지는 했고 성공을 했다 치자. 그러면 그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후를 논의할 국가적 차원의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기구 같은 것이 있기는 했다. 바로 그것은 대.본.영.이었다. 대본영은 본래 전쟁준비를 위해 특별히 설치된 기구였다가 일본의 중국 침공 이후에는 일본 제국이 망할 때까지 상설 기구가 됐다. 그런데 대본영은 어쩐지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히로히토 일왕과 대본영 각료들. 참 참신한 의사결정이 이뤄졌을듯.(^^)


가장 큰 문제는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 것이었다. 수상인 도조 히데키를 정점으로한 육군 파벌은 자기들을 서로 감쌌다. 잘못된 결정에도 주요 파벌의 고위 장성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무타쿠치 렌야라는 사람이 있다. "보급은 필요없다",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풀을 먹으며 진격하자" 이런 미친 소리를 남긴 사람이다.(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에게) 문제는 이 사람이 그냥 동네 아저씨가 아니라 동남아 주요 전선을 책임지는 육군 장성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의 신묘한 기책은 자신의 휘하에 있던 제 15군 80%를 전투 불능(8만명 중 5만명 이상이 '질병', '아사' 등으로 죽었다.)으로 만들었다. 그때 분위기라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했겠지만,(죽는다든가..죽인다든가..) 이 사람은 전쟁 중 일본으로 돌아와 육사 교장이 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대본영의 주축인 육군 파벌의 구성원이었다. 


파벌 문제가 심각하니 유기적인 협력이 이루어질리 만무했다. 대본영의 다른 축이었던 해군은 육군과 '손발'이 맞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복했다. 대본영 안에서도 그들은 합리적인 견제를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따로 존재했다. '대장'을 부르는 호칭도 달랐고 주요 군사 용어도 미묘하게 달랐다. 육군은 중일 전쟁과 내륙 전쟁에 집중했고, 해군은 미국과의 태평양 전선에 집중했다. 그들은 전략의 우선순위도 달랐고, 협력은 커녕 제한된 자원을 놓고 계속 대립했다. 실질적 파워는 도조를 중심으로 한 육군 파벌들이 더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해군이 제대로 협력했을리 만무했다.(허위 보고를 한다던가..) 뿐만 아니라 육해군내에서도 각기 독자적 파벌들이 따로 있었다.


육군 폭격기를 항공모함에서 출격시키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희대의 계획을 실행한 둘리틀 특공대


진주만에 기습 타격을 받은 직후, 미국에게는 떨어진 국민과 장병들의 사기를 반전, 고조, 단결시킬 획기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목표는 일본 본토에 대한 직접 공습이었다. 많은 피해를 주는 것보다도 '미국은 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아직 일본의 해군력은 건재했다. 또한 당시 항공모함의 해군 함재기로는 비행가능 거리가 짧아 일본 본토를 타격하려면, 일본 본토까지 아주 가깝게 접근해야했고 이는 대단히 위험했다. 때문에 일본은 본토에 대한 타격이 조기에 가능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방법이 있긴했다. '함재기가 돌아오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면 훗날 일본처럼 카미카제라도 해야하나? 아니다.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나라 아닌가. 항속 거리가 긴 육군 폭격기를 개조해서, 항공모함에서 발진시키면 된다. 단 착륙은 폭격후 중국 내 우호지역에 한다. 이 말도 안되는 계획은 정말로 실행됐다. 육군 내 최고 비행 전문가 둘리틀 중령을 중심으로 '둘리틀 특공대'가 비밀리에 결성되어 해군 항공모함에서의 이륙을 연습했다. 


둘리틀 특공대는 일본 본토 가까이로 비밀리에 항해하던 중, 일본 함정에 항공모함이 사전 발각되어 조기 출격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당초 목표보다도 일본 주요 도시에 훨씬 큰 타격을 주었고, 80명 중 69명이 생환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 계획의 최초 제안자는 해군 내 잠수전 전문가였다. 대본영의 의사결정 구조였다면 도무지 생각도, 입안도, 실행도 불가능한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대본영에 둘리틀 특공대가 보여준 창의적이고 유기적 협력 따위는 없다. 왜 식량이 없으면 풀을 먹으라잖아.



일본 제국은 스스로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것은 자기 부정이었다. 


일관된 극단적 신념/명분이 가지는 문제는 그 생각에 반하는 선택을 하기 대단히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자기 정체성 형성, 인식과도 관련된 문제다. 보통은 자신의 존재 이유라 여겨지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다. 때문에 정체성과 관련한 영역에서는 양보나 타협의 가능성이 낮아진다. 잘못되었으며, 극단적인 정체성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나치가 그러했고, 대본영이 그러했다.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아시아를 일본을 중심으로 통합한다는 구상은 아시아 각국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착취와 침략이 주된 실행 수단이었기 때문에 강제 점령한 각지의 거센 저항을 맞이할 수 밖에는 없었다. 당시 그들에게는 아시아 각국을 통합할 문화적 역량도, 이 구상에 반대하는 미국을 복속시킬 군사력, 경제력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 제국은 그 허상같은 명분을 진심으로 믿었고, 실현하려 했다. 대동아공영권 건설은 어떤 의미에서 일본 제국의 존재 이유와도 같았다. 또한 '대동아 전쟁'은 '천황 아래 황국 신민'들에게 동원 체제를 합리화하는 강력한 명분이었다. 그런데 '대동아 전쟁'이 끝난다면?


일본 제국의 정체성은 철저히 망상인 '원대한 계획'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전쟁 포기는 자기 부정이었다. 때문에 미국의 제안은 이들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에는 대동아 전쟁에 미국이 동의하게 만들 목적으로 미국을 공격한다는 이상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본영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다.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선에서 결정을 해야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합리성 아래에는 '잘못된 신념'이 있다. 독단적이고 하나의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위험성도 덩달아 높아진다. 당신이 속한 조직에도 아주 많을 것이다.




본의아니게 덕질(좋아하는 대상에 심취하는 행위로 이해.)을 해버렸다. 역사를 보는 것은 현대에 어떤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참 멋지고 즐거운 일이다. 진주만 공습의 배경, 대본영의 의사결정 구조를 다시 톺아보는 것은 '망한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해하는데 꽤나 도움이 된다.


1) 결정과 관련된 상대가 존재할 때 상대에 대한 몰이해, 2) 무책임하고 독단적인 의사결정 구조, 3) 잘못되고 고정된 신념 체계는 '망한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교훈이었다. 아무튼 사회 속 개인인 우리가 홀로 독야청청하기란 어려우니 1)~3)을 잘 바꾸든, 아니면 그런 조직을 잘 피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매일 무엇을 먹고 입을지 고민한다.

일상 속 무수히 많은 결정에서 우리는 좀처럼 하던 선택을 벗어나지 못한다.

영원한 미제.

역사나 대단한 국제 정치 차원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 각 개인은 매일 결정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가장 빈번하고 보편적인 걱정은 '무엇을 먹을지와 무엇을 입을지'다. 매일 매일 이게 고민이기는 한데, 학생 때와 군대 시절을 회고해보면 적어도 나에게는 결정할 자유, 그러니까 선택의 자유가 선택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훨씬 가치있었다. 그렇다고 이 선택의 스트레스라는 것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옷을 입을 때는 '검증된 조합'을 매우 잘 참고해서 특정 신발이나 바지는 비슷한 것을 하나 더 사두기도 하고, 점심 저녁은 고민을 하다 결국엔 늘 가던 곳으로 간다. 메뉴판을 보고는 고민한다. 그리고 주문한다. 늘 먹던 걸로 


어쩌다 하는 '옆길로 새는' 시도들이 괜찮으면 선택의 가짓수가 조금은 더 늘어난다. 언젠가 약속에 늦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급하게 '본능적으로' 옷을 챙겨입고 나간 적이 있었는데, 이게 의외로 제법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옵션 추가 +1) 홍대 골목을 탐험하다 우연히 만난 이츠모 라멘, 두레 찻집은 여전히 최애('최고로 좋아하는') 미식 장소다.


하지만 좀처럼 안하던 선택을 하다 '망하면', 유사한 선택 상황에 대해서는 공포가 생긴다. 우연히 찾아 들어간 백반집에서는 정말 최악을 경험했다. 맛도 없었고, 비위생적이었다. 웬만해서는 그런 일이 없는데 다 먹지도 못하고 나가고 싶었다. 카드 결제를 하려고 하자 평상에 누워있던 주인으로 추정되는 할아버지가 화를 냈다. 내 돈을 주고 불행을 사는 느낌이었다.  이 경험 이후에는 잘 모르는 '허름한 곳'에서의 식사가 두려워졌다. 


일상 속에서 무수히 많은 선택을 마주한다. 

무엇을 먹고 입을지와 같은 사소한 선택들과 사람에 대한 선택.

실패하지 않기 위해 익숙한 선택이 반복된다. 어찌보면 인간은 선택에 갇히는 존재다.


대체로 사람들은 먹는 것 입는 것의 선택이 누적되다보면 하던 것만 주로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결정은 그 사람이 관계하는 사람들, 그가 사는 지역, 그의 생활 반경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벗어나는 선택지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여간 피로한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편한 '안심 선택존' 밖을 탐색하고 무려 탐험까지 해야 가능한 선택지이지 않은가. 유사한 선택이 반복되다보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익숙한 선택은 편안해진다. 선택이 반복되면 선택의 기준이 생기고, 그 기준에 주관이 많이 더해지면 '취향'이 된다. 새로움을 애써 마다하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선택을 하기는 늘 두렵다. 어떠한 실패가 있을지 어떻게 아는가? 나는 잘 모르는 허름한 백반집에서 밥먹기가 여전히 두렵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다. 확실한 보증이 없다면.


짬짜면..당신은 대체...


일상 속 가장 빈번한 선택은 <무엇을 먹고 입느냐>이고, 그 다음으로는 아마도 <누구와 관계하느냐>가 아닐까 한다. 신조어 <믿거>라는 말이 있다. '믿고 거른다'를 줄인 말이다. 주로 자신에게 '불쾌한 특정 행동, 언행 패턴을 보이는 사람'을 관계에서 배제할 때 많이 쓰인다. 하지만 각 개인마다 <믿거>에 활용되는 기준은 다르다. 어떤 기준은 거의 편견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학력/학벌이 그렇고, 지역이 그렇고, 성별이 그렇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아는 이 중 학력과 학벌이 가장 출중한 A가 있다. A는 나와 친하게 잘 지냈고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언제는 그가 업무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는데, 그때 A가 다음과 같이 말해서 좀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반쯤 진심 섞인 '유-우머'였다. 


A "어휴 제가 이래서 고졸들이랑 뭘 하는 거 싫어해요" 

나 "어라 저도 고졸인데요?" (나는 당시 제적 상태였다.) 

A "에이. 희철 씨는 다르죠"

나 "아 왜요 저 고졸이에요" (나는 당시 제적 상태였다2) 


물론 그와 나는 사이가 좋다. 그렇기에 그는 신뢰를 가지고 차별적인 발언이 분명한(!) 하소연성 유-우머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별 어려움 없이 받았고. 아무튼 그와 나는 제법 <지성있는™> 대화를 많이 한 덕인지, 그래도 내가 대학 입학은 했었기 때문인지 그는 나를 그가 말하는 '고졸' 카테고리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가 일상에서 딱히 차별주의자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A가 '고졸 학력'을 가진 사람들을 일상에서 멸시하거나 얕잡아보지는 않았고 언행에서도 그런 티를 낸 적도 없다. 다만 그는 <업무에서 나쁜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고졸일 것>이라는 자신만의 '편견에 가까운' 기준을 가지고 있었고, 잘 말하기 어려운 속내를 나에게는 말했다. 나는 그가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경험은 그가 애써 다른 선택하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그는 앞으로도 애써 '고졸'과 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이들 중에는 훨씬 노골적으로 사람에 대한 <믿거>의 기준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 각 개인에게 선택에서 <믿거>의 기준을 따르는 것은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각 개인의 휴리스틱(각 개인의 기준에 따른 어림 짐작 사고회로랄까)을 형성한 경험 탓일 것이다. 사소하지만 모든 허름한 백반집이 실패한 경험을 주지도 않을 것을 안다. 고졸인 사람 대다수가 무능하지도 않을 것이고, 박사 학위를 가진 모든 이가 업무에서 유능하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는 학력, 학벌보다는 개별 인간의 역량이 미치는 영향(특히 부정적인 영역에서는)이 더 클 것이다. 그의 기준은 분명한 편견이다. 다만 개인은 모험이 두렵고 자신이 잘 하지 않았던 선택은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찌보면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갇히는 존재다.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고, 선택의 경향성이 있다는 것은 배제의 경향성도 함께 있다는 것이다. 선택이 우리의 자유의지인 것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사실은 두려움 탓에 일상의 선택, 일생의 선택에서 모험을 하지 않는다.


큰 결정보다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사소한 '선택'들에 집중한 이야기였다.


내가 하는 선택/결정은 정말 내가 하는 것일까?

자유의지에 의한 것처럼 보이는 많은 선택에서 사실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아 집가고 싶다

결정과 선택은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모두 '무언가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정한다'는 느낌의 단어지만, 분명히 다르기에 그 의미와 두 단어 사이의 거리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먼저 결정에 대해 국어 사전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결정

명사

1. 행동이나 태도를 분명하게 정함. 또는 그렇게 정해진 내용.
2. 법률) 법원이 행하는 판결ㆍ명령 이외의 재판.


결정의 대상은 왠지 중요함을 넘어 중대함에 가까워 보인다. 이 단어를 씀은 특정한 상황에서의 '선택지'를 정할 때보다는 세워나가고 유지해야할 원칙을 정할 때 적절하다. 결정에 따른 결과는 지속적으로 강하게 영향을 주고 구속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는 다른 대안이 있는 선택이라기 보다는 행동과 태도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며, 결정에 가깝다. 쉽게 말해 결정의 본질은 행동과 마음의 태도를 정하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는 의사'결정'을 한다고 하지 의사'선택'을 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선택은 어떠할까?


선택

명사

1.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음
2. 심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수단을 의식하고, 그 가운데서 어느 것을 골라내는 작용


사전의 정의대로라면 선택의 대상은 대체로 인지 가능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또 선택하는 이가 인지한 대안들 중 하나를 정해야할 때 선택을 쓰기에 적합하다. 사소하게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더 중요하게는 취업을 할까. 창업을 할까. 결혼을 할까 비혼을 할까. 앞선 문장들처럼 다양한 선택지들이 확고하게 인지될 때 선택은 적절하다.


우리는 삶에서 선택해야할 무수히 많은 대상이 있고, 누적된 선택의 과정과 결과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누적된 선택은 어떤 기준을 만든다.(앞서 말한 '편견'일 수도 있다.) 종합하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지만 결정이 '전략적'이라면, 선택은 '전술적'이다. 전략적 결정과 전술적 선택이랄까. 부연하자면 전략은 지속적이고 본질적인 것, 전술은 단기적이고 부수적인 것이다. <나대로 살기>가 전략이면, <하기 싫은 것 거절하기>는 전술이다.


또 결정의 가치는 결정 시점에서는 그 가치를 가늠하기가 쉽지않고, 대체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판단이 가능하다. 선택은 비교적 그 가치의 판단이 쉽다. 선택은 기준도 뚜렷한 편이고, 그에 대해 존중하기도 비난하기도 하기도 쉽다. 탕수육 부먹과 찍먹의 예송논쟁은 참 좋은 예다. 다만 어떤 선택은 '결정'에 비견될 정도로 중요하고 그쯤되면 결정과 선택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선택이든 결정이든 삶을 구성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우리가 선택에서든, 결정에서든 무엇을 정하는 일에서 '주인이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다음은 선택/결정에서 참고할만한 질문들이다. 나는 정말 나의 선택/결정의 주인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 참고하면 좋겠다.




선택에 따른 상쇄 효과(trade-off)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가?



무엇을 선택하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한다. 이것은 상식이다.


얼마전 실비보험을 계약한 보험설계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의 발언 요지는 1) 지금 당신이 가진 타 회사의 질병 보험은 갱신 시기가 잦아서 갱신 때마다 보험료가 오를 것이고, 2) 만기때 돌려받는 돈도 크지가 않다. 3) 이 보험보다는 우리 회사의 비갱신형으로 '평생 보장'받는 보험이 어떠냐? 였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특정 보험 상품이 저부담 조건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으면 위기시 받을 보장 내역이 약할 수 밖에는 없다. 그들도 돈을 벌어야하니까. 


내가 가진 타 회사 보험은 암이나 희귀병같은 큰 질병에 걸릴 경우, 입원비와 치료비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는 보험이다. 설계사의 말대로 이 보험은 내가 노년일 때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나를 책임지지도 못하고, 갱신 때마다 부담이 오른다. 대신 보장 기간 중 내가 병에 걸리면 확실한 보장을 해준다. 말하자면 내가 젊어서 예기치 않게 몸이 아프면 목돈으로 보상해주는 보험이다. 나는 먼 미래를 대비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여력안에서 찾아올지 모를 뜻 밖의 불행에 대비했다. 작은 부상이나 자잘한 치료에 대한 대비는 젋어서 싸게 가입가능한 '실비 보험'으로 대비했다. 


나는 지금 매달 지출 가능한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했다. 

<변하지 않는 조건으로 얇고 길게 보장> vs <같은 조건으로 보장하는 기간은 짧지만 큰 피해에 대해 목돈으로 보상> 

솔직히 나는 내가 젋어서 큰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아주 낮겠지만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다. 나는 <뜻 밖의 불행>에 대비하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했다. 먼 미래 나의 소득이나 자산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운을 선택/결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2012년에 비트코인을 사는 것은 가능한 선택지에 있는가? 만약 정말 당시 그 존재를 제대로 알고 의도를 가지고 따져볼 수 있었다면 이것은 유효한 선택지 안에 있다. 그것이 아니면 비트코인 열풍에 대비하는 것은 단지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이고, 합리적 선택지 안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인간은 이러한 우연을 기대하지만 재현할 수는 없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술을 믿고 있다. 주술의 영역과 판단의 영역을 혼동하면 안된다. 주술은 인간 능력 밖에 일이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려하면 일상은 불행해진다.


왜 도박으로 돈 딴 사람들, 로또 당첨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여생이 불행했다는 이야기가 많지 않은가. 그들은 다시 한 번 <뜻 밖의 행운>을 기대하고 있지만, 그런 일은 한 개인의 삶에서 연속으로 일어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뜻 밖의 행운은 여간해서는 재현될 수 없는 사건이다. 다만 다가온 행운을 현명하게 경영하는 것은 또 별개 문제라 할 수 있겠다.  내 할아버지가 1960년대 강남에서 농사를 짓지 않았는지 원망해봐야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라고는 하지만 그러셨으면 어땠을까..)


나는 나를 믿을 수 있는가? 편견과 잘못된 정보, 욕망에 사로잡혀있는 것은 아닐까?


독단적이고 하나의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위험성은 대본영과 도조 히데키 무리들이 너무나 잘 증명해냈다. 그들은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불가능한 목표를 실현가능하다 믿었다. 스티브 잡스가 가졌었다는 '현실 왜곡장'도 될만한 상황에거나 가능하지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므로 보급은 필요없다' 같은 수준이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나의 신념 체계가 정보를 왜곡한 것은 아닌지, 나에게 어떠한 생각을 형성하게 만든 정보가 정말 믿을만한 것인지 계속 의심해봐야 한다. 나는 반박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나와 다른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알기전에 먼저 입장을 가지는 사람인가. 언제나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나의 선택/결정은 '자기다움'을 이어가는가?


선택의 누적은 나를 형성한다. 의도한 좋은 선택이 누적되면 '자기다움'이 생긴다. 화가의 작품 가격은 그 작가가 만든 사조에 충실할 수록 대체로 높다. 사조를 벗어난 '의외작'은 잠시의 파격은 될 수 있어도 웬만해서는 사조를 이어간 작품의 가치를 넘어서지 못한다. 미술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당연하지"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가 좀처럼 이해가 안됐다. 자기 사조를 만들고 그것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지 않게 되는 것. 나를 보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예측 가능성이자 안정성이다.


피카소는 피카소식의 추상화를 그릴 때 가장 피카소답고 그래야 작품의 가치가 높다. 루벤스의 작품을 보면 루벤스(혹은 그의 조수들이)가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은 구분할 수 있는 독창성(오리지날리티)가 있다. 다른 분야 아티스트들도 그렇다. 오아시스는 오아시스다워야하고, 들국화는 들국화다워야 한다. 무슨 유교의 정명론('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같기도 하지만 좋은 선택이 이어지고 그것이 일관적일때 선택 주체의 가치는 극대화된다. 물론 큰 성취를 거둔 이들은 끊임없이 모험을 했다. 하지만 그 모험은 이전 세계를 단순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결정과 선택으로 형성한 자기 세계를 '넓히는' 과정에 가까웠다.


당신의 결정과 선택이 자기만의 오리지날리티를 만들 수 있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무언가에서 좋은 시작을 했다면, 이어지는 선택에서 그 성취를 딛고 이어서 밀고 나가야한다. 창작에서도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하나'로는 부족하다. 운좋은 한방은 결정과 선택 밖의 것이다. 결정과 선택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이어지는 선이어야 하고, 그 선은 '자기다움'을 짙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어찌보면 인간은 자기가 만든 세계에 갇힌다는 점에서, 자기 세계를 넘어서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삶은 짧고, 가장 탁월하고 부지런하고 운좋은 개인만이 삶의 여러 분야와 길 모두에서 '최고'일 수 있다. (일단 저는 아닙니다.) 당연히 최고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도 <선택>이고 <결정>아닌가?


나의 선택/결정은 부족한 정보·시간·여유와 위계에 의한 강요로부터 자유로운가?


중2때 친구와 윤도현 밴드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공연을 보고 나오니 시간이 매우 늦었고 인천 사는 중2에게 서울 지리는 정말~ 복잡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나는 서울을 잘 몰랐기 때문에 공연장 근처에서 김밥 행상을 하던 아주머니들에게 길을 물었다. 아주머니들은 남은 김밥을 싼값에 팔건데, 이것을 2개씩 사주면 대답해주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11시면 지하철이 끊기는 줄 알았기 때문에 아주머니들의 협상력은 극에 달했고, 나는 김밥 2개를 강매당했다. 김밥은 싼 값이었지만 집에 와서보니 여름 날씨 탓에 김밥은 다 쉬어있었다. 대단히 불쾌한 경험이었다.


이어서 중3때 일이었다. 게임을 매우 좋아했던 나는 컴퓨터를 그럭저럭 잘 만졌고 컴퓨터 포맷은 일도 아니었다다. 단지 그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릴 따름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독서실 PC실 컴퓨터는 정말 자주 맛이 갔는데, 그때 마다 PC 기사가 왔다. 중3인 내가 보기에 어려운 일도 아니어서 한 번은 그냥 고친 적이 있었다. 이것을 본 독서실 아저씨는 틈만 나면 '순댓국을 사줄테니 컴퓨터를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중3인 나는 어른 말은 잘들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몇 번 컴퓨터를 그냥 고쳐준 적이 있다. 시험 기간이 아닐 때도 시도 때도 없이전화가 와서 결국에는 엄마가 '정리'를 해줬다. 


쫓기는 상황을 표현하고자..

중2, 중3 나는 멍청했을까? 뭐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라면 절대 응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우리 앞에는 어떤 선택지가 놓이게 될까? 잘 모르는 업계에 처음 발을 내딛게 된다면 우리는 정말 '합리적'일 수 있을까? 여기에 위계에 의한 강요가 극대화 되면 '합리'는 더 멀어진다. 배고프면 풀을 뜯어 먹으라던 무타쿠치 렌야 아래 장교들이, 침몰한 타이타닉의 조타수가, 추락한 대한항공기 8509편 부기장이 바보여서 나쁜 선택에 동조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똑똑한 사람도 정보, 시간, 여유가 부족할 때 위계 상황에 있을 때 바보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의 이성과 양심에 비춰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는 선택/결정을 <유보>하거나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극한의 일부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해도 웬만해서는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 섣부른 선택은 당신에게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안길 것이다.


그 밖에도 어떠한 선택/결정이 시간 및 보유한 자원의 소모가 큰 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에 따른 것인지 따져보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선택은 누군가에게 대리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




결국 점을 찍기보다는 밀도높은 선을 긋는 일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해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가 아닌 것을 할 때 조차도.

점을 찍다 이어서 선을 그어봤다. 그은 선을 돌이킬 수는 없겠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과 결정을 하나의 '순간'으로 생각한다. 그리고는 '순간'의 선택을, 결정을 후회한다.


<그때 그것을 했어야 했는데!> 혹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문장들은 단일한 선택이나 결정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 <하지 말았어야했는데!>에 대해서는 꽤나 맞는 말이다.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쁜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쁜 결정은 인생 전체에 궤멸적인 타격을 줄 수 있고, 우리는 그 결정 이전 시점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감당할 수도 없는 빚을 지거나 범죄를 저지르면 앞으로의 삶은 그 나쁜 영향에 강하게 종속될 것이다. 때문에 '나쁜 선택', '나쁜 결정'은 가능하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떠밀리듯 나쁜 것에 밀려가서는 안된다. 물론 나쁜 결정 후에도 만회할 기회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일한 나쁜 결정의 피해는 하나의 좋은 결정의 영향보다 지속적이다. 


만약 당신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에 이를 정도의 나쁜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선택이나 결정은 아마도 나쁜 결정이 아닐 것이다. 그 결정에 대한 가치 판단은 남은 당신의 시간에서 당신이 하는 것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고, 지난 결정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사후적, 주관적이다. 때문에 지난 시간에 대해 긍정해도 좋겠다. 아직 당신과 나에게는 제법 시간이 있다.


선택과 결정의 영향은 '점'보다는 '선'에 가깝다. 

현저하게 나쁜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면 지나는 시간에서 최선을 다할 것. 

'시간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때로는 좋은 결정의 과정이 된다.


삶의 여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순간'의 선택이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선'을 긋는 여정에서의 당신의 태도와 시간의 밀도다. 앞서 <결정이 지속적이고 본질적이며, 행동이나 태도를 정하는 것>이라 해둔 바 있다. 이 의미대로라면 결정은 분명히 '점'이 아니라 '선'에 가깝다.


우리가 정말 현저하고 명백하게 나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면, 그 선택에 대해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한다. 제일교포2세이자 지금은 대성한 음악가인 양방언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이 하고 싶었다. 의사인 아버지는 그가 '딴따라'가 되기보다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음악은 취미로도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확실히 양방언이 난사람은 난사람이었다. 양방언은 의대에 진학했고, 의사 면허도 취득했다. 그리고 그는 의사의 길을 포기했다.


그랬던 그가 그가 의사가 아닌 음악가로서 확고히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자신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그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알게됨으로써 진심으로 알았다. 


뭐. 잠시 내 얘기를 하자면 내가 쓰는 일을 하게 될 때도 그랬다. 스물 일곱에 들어간 훈련소에서도, 이어서는 의경으로 촛불 정국의 광장과 거리에 나서면서도 나는 뭔가를 적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양방언이 노력한 정도로  '쓰는 일'과 '쓰지 않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고, 지금도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삶이 두 번이 아닌 여정임을 아는 나는, 하고 싶은 일. 말하고 쓰는 일. 가능하다면 노래하는 일에서 무어든 해내고 싶다. 나는 그러기로 '결정'했다.


단 나에게 시간의 제약을 두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충분히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의 밀도를 높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이 오면 나는 포기할 용기를 낼 것이다. 

그마저도 더 나은 나를 만든 여정이었길 바란다.


나는 시간의 밀도를 높이고 있는가?

나는 내가 아니게 될 선택과 결정 앞에서

주저하는 것은 아닌지.


좋은 결정을 내리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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