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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Oct 12. 2019

좋은 친구를 만나기란 어렵다

내가 사랑한 나의 20대를 함께한, 보고싶은 나의 친구들에게

비오는 가을날, 문득 떠오른 오래전 나와 친구들의 기억

그들과 함께한 내가 사랑한 나의 20대, 어느덧 각자의 길에 서있는 우리.

입대 일주일 전 다함께 떠난 제주

비오는 10월의 가을 날. 오늘은 나의 첫 예비군 날이었다. 스물아홉 전역, 서른살 첫 예비군이라니. 전역자라고는 해도 예비군 훈련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예비군이 거의 끝나가는 친구들에게 이래저래 많이 물어봤다. 녀석들은 나를 놀리면서도 꼭 필요한 말들은 해줬다. 역시 함께 20대를 보낸 내 친구들이다.


정말 오랜만에 군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나는 의경 출신이라 군복은 훈련소 이후 처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군복을 입으면 한없이 풀어진다는데, 나는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아마 예비군 1년차이기 때문이겠지. 집 근처에 있는 훈련장인데, 들어오면 바깥 세상과는 다른 공기가 흐른다. 흙탕물 가득한 연병장과 산에 걸린 안개가 보였다. 여실 없는 그 날의 것이었다. 그때도 10월이었다. 더운듯하다가도 해가 지면 그렇게 추웠다. 평상 위와 장구류에는 먼지가 가득했고, 바깥 세상과 통하는 연락수단은 편지와 거의 허락되지 않는 전화가 전부였다. 마지막 행군을 하던 날은 오늘처럼 하루종일 비가 왔었고, 그때 나는 내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도무지 몰랐다. 이렇게 책을 쓰고 있을지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 행군하다 먹은 컵라면과 주먹밥은 정말 맛있었다.


논산으로 가던 스물 일곱 10월 6일, 친구들이 따라와줬다. 연병장을 한 바퀴 돌고, 우리는 정말 '안녕'했다. 그 날 나는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논산 훈련소에서의 첫 밤은 잊을 수 없다. 낯설고 너무 낯설었다. 잠에 들어야하는 밤. 내 옆 자리에는 스물여섯 초등학교 선생님이 누워있었다. 잠에 들기 전 그가 내게 사회에서 무엇을 하셨느냐고 물었다. "저는 교육을 했어요. 늘 제가 더 많이 배웠지만요..." 내가 말했다. 


스물 일곱 10월, 잠시 떠나온 나는 남겨둔 것과 함께한 이들을 참 많이도 생각했다. 창업을 하면서는 쉽지 않았지만 나는 정말 좋은 사람들과 잊을 수 없는 시간을 함께 했다. 나는 지나온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을, 바깥 세상을 그리워했다.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내 사랑하는 이들은 잘 지내고 있는 것일까. 시간이 허락하는 틈틈이 일기와 편지를 썼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면 가끔은 친구들이 쓴 편지가 와있었다. 백령도에서 해병 병장 녀석에게 받은 편지는 꿈엔들 잊힐까.


자유의 가치를 깨닫게 된 나. 일기를 적었다. 나는 써야하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어떤 편지 속 문장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너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음울함에 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지나온 시간 나는 그랬던가? 아무쪼록 나는 마주할 것이 무엇이든 음울함에 지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한편 편지들이 전하는 시국은 대단히 불안정했다. 광화문에서는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어느덧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의경인 내가 이어 맞이한 겨울의 광장과 거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그 모습이다.


그 때로부터 3년이 지났다. 편지를 읽으며 입고 있던 군복을 나는 오늘 다시 입었다. 그 사이 나도 세상도 제법 많이 변했다. 하루 동안의 지루한 교육과 훈련을 뒤로하고 다시 훈련장 밖으로 나섰다. 나는 보고 싶은 사람들을 그렸던 그 날과 이제는 볼 수 있는데 좀처럼 잘 만나지는 못하는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토록 그리던 세상과 친구들.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지 않는 나와 함께한 멋진 친구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친구들. 그 친구들을 떠올린다.



나를 만든 것은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같은 뜻을 두고 마음으로 공명한 나와 친구들. 이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우리

사전은 친구를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 말한다는데, 나와 20대를 함께 고군분투한 이들을 부르기엔 단어의 의미가 조금 모자라다. '목적이나 뜻이 같음. 또는 그런 사람.' 사전은 동지를 이렇게 정의한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나의 동지였다. 스무 살 우리는 같은 뜻을 도모했기에 동지였고, 오래 함께 했기에 친구였다. 같은 뜻을 도모했던 오래 함께한 사람들. 보잘 것없는 나와 함께한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가깝게 오래 사귄 이를 '친구'라 부르고 

목적이나 뜻이 같은 이를 '동지' 부른다. 

나를 만든 것은 함께한 친구이자 동지인 이들, '우리'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을까. 갑자기 턱 끝까지 불안이 밀려온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나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내야 할지 도무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고, 꿈이라 말할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공부를 제법 하는 많은 친구들은 '크고 멋진 것'을 꿈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꿈은 '직업으로서의 꿈'을 의미했던 것 같다. 나는 뒤쳐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마음이 진심으로 설득되지는 않지만 어느새부터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직업'을 꿈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고3 때 영어 선생님은 수업 시간 중 내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다. "사회과학을 전공하여 정론직필 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나는 말했던 것 같다. 그것도 제법 당당하고 확신의 찬 어조로. 선생님은 흐뭇하게 웃어주시며 내게 멋진 꿈이라 말씀해주셨다. 반 친구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그때의 나도 지금처럼 말하기도 글쓰기도 좋아했다. 다만 그렇게 미치도록 좋아해 본 적은 없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아무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가슴 한쪽이 시큼거렸다.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아서인가...!" 실없는 소년만화 같은 생각도 했었다.


내가 동지인 친구들을 만난 때는 이맘 때였다. 처음 우리가 만난 열 아홉 때 우리는 각자 다른 지역에 살았고, 저마다 입시로 바빴지만 우연히 만난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나아갈 길'에 대해 정말로 진지하고 아프게 고민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른 이들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왠지 모르게 마음으로 공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물 한 살 어린 날에는 함께 뜻을 모아 무모한 시도를 했다. 당시엔 지금 학생부 종합전형의 조상 격인 '입학사정관 전형'이 막 생겨났던 때였고, 대중교육을 지향하며 적정한 대가를 받으면 괜찮은 비전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입시와 진로에서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우리 후배들은 겪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는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스물 한 살, 2010년 여름부터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일을 시작했다. 아직 어린 어른이었던 우리는 더 어린 친구들을 만났다.


첫 2년간은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 고무된 우리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로 했다. 사무실을 열고 교재와 서비스를 만들었고, 열심히 강의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우리에게는 실력과 자본이 늘 부족했고, 부족한 만큼은 긍지로 버텼다. 매년 겨울은 참 추웠다. 힘겨울 때는 임대료와 각종 고정비가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도 '사업자적 필요'와 '교육자적 양심' 사이에서 우리는 거의 늘 후자를 선택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면 우리는 필요 이상 간절하고 절박했다. 청춘을 '덜 걸어도' 충분히 괜찮았다. 나는 군대를 계속 미뤘고, 대학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우리는 청년 사업가가 되기를 바랐으나 창업에 '뛰어들지' 못했고 창업에 '빠져'있었다.


7년동안 길게 보기에는 8년동안 나와 친구들은 고군분투했다. 친구들은 나보다 먼저 군대를 다녀왔고 내가 입대한 후에도 친구들은 제법 오래 분투했다. 어느덧 우리도 20대 후반이었다. 이제는 마침표를 찍을 용기를 내야만 했다.


우리는 함께 끝을 내기로 했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우리를 거쳐간 모든 이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이 글이 공표되는 시점부터, 청년교육벤처 비유는 브랜드 ‘꿈소서’ 활용을 포함한 모든 사업적 활동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비유는 영리 사업체로서의 기능을 해체하고, 졸업생 네트워크만을 남깁니다. 본 결정의 이유는 8년간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유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비유 구성원들의 새로운 꿈을 위한 길을 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결정은 이사회가 다시 소집되어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한 무기한 유효합니다.


비유는 2010년 7월 창업자 3인(문희철, 이건호, 고재형)의 도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1살 어린 청년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이 되고자 업을 시작하였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저 우리 앞에는 기회가 있었고, 우리는 기꺼이 우리를 던져보기로 마음먹었었지요.


지난 8년간 우리 스스로도 우리의 행보가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에게 결코 작지않은 무언가를 남겼었다는 것, 그리고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가치있는 여정이었다는 것은 확신합니다.  


몇 해 전 작고한 가수 신해철은 오래전 자신이 몸담은 밴드 넥스트의 해체와 은퇴를 선언하는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불멸에 관하여’라는 곡을 노래했습니다. 그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습니다.


“사라져가야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기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위해 과감히 멈추는 선택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 모습을 최고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오늘 우리는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남기 위해, 더 나은 모습으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오늘 우리는 멈추려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끝이 정말 끝은 아니겠지요.
한 번 단 한번뿐인 20대를 여러분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여러분께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 각자는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내려 합니다. 우리의 새로운 시작에 행운을 빌어 주세요. 이따금씩 함께 만납시다.


언제 어디서라도 스트러글입니다!
우리와 함께해주셨던 모든 이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2018년 3월 1일.

새로운 시작을 앞둔 청년교육벤처 비유 창업자 일동 올림. 



청년 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청년 자영업자. 우리는 성공하지 못했다. 미숙했고, 어쩌면 우리는 성공을 두려워 했다. 너무 빠르게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비록 우리는 큰 돈을 벌지 못했지만 돈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일이었다면 우리는 꽤나 잘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동안 나와 동지들은 참 고생이 많았다. 특히 내가 떠나있는 동안 끔찍이도 고생한 친구들에게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 꼭 말하고 싶었다.  광장과 거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틈틈이 편지를 써놓고도 차마 부치지 못했다.


그저 우연처럼 만났고, 필연처럼 가까워졌던 우리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서는 자리도 생각도 달라진 우리

오늘도 우리는 치열하게 시간의 밀도를 높여 살아내고 있다.

 

같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던 우리들은 이제는 서로가 서있는 곳도 생각하는 것도 꽤나 달라졌음을 느낀다. 다시 사회로 돌아왔을때, 각자의 길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았다. 다들 참 잘하고 있다.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게 잘하고 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는 느리지만 나의 새로운 자리에서 길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다른 곳에 서있는 우리 각자는 높아진 시간의 밀도 탓에 정말 애써야 서로를 만날 수 있다.


우리 다같이 여행을 떠난 때가 3년전이 마지막이구나.

 

친구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다.

다른 것이 많아도 마음으로 공명할 수 있는 친구, 그러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벗을 만나기란 어렵다.

친구는 만드는 것일까 만나는 것일까. 친구는 찾는 것일까 자연스레 찾아오는 것일까. 나에게는 만드는 것보다는 만나는 것에, 찾는 것보다는 찾아오는 것에 가까웠다. 친구 사이도 많은 관계들이 그렇듯 가까웠다가도 멀어지기도 한다. 다만 연인 사이 이별과는 다르게 친구가 멀어져 감은 대체로 점점 옅어지는 그라데이션이다. 고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동창들을 어느새 잘 보지 않게 되었다. 애써 보지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서는 곳, 하는 일, 생각하는 바가 달라지며 큰 경조사가 아니면 만날 일이 없어지는 탓이다.


나에게 친구는 만드는 것보다는 만나는 것에

찾는 것보다는 자연스레 찾아오는 것에 가까웠다. 

단지 오래 알고있는 이가 아닌, 마음으로 생각으로 공명하는 이들이 친구라면.


아직 교복을 입던 때였다. 그 날은 햇빛이 좋은 봄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반 친구들과 교정을 천천히 걸었다. 직장인들처럼 커피를 들고 걷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그저 천천히 걸었다. 교복입은 우리들은 생기가 넘쳤다. 나는 문득 이 순간을 그리워하겠구나 생각했다. 다시는 이 순간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같은 교복을 입은 우리의 생기 넘치는 어린 날도, 나와 함께 걷는 친구들의 철없는 마음도, 시간이 훌쩍 지나면 모두 추억이라는 현상액 속에서만 회색빛으로 빛날 것이었다.


관계가 변함이 꼭 나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함께 시간을 지났던 우리는 단절되지 않고 단지 희미해졌을 뿐이다. 심지어 여러 이유들로 관계가 끊어졌더라도 함께 시간을 지낸 우리가 더 나아가고 더 성장해나갔다면, 우리는 친구여서 참 좋았다. 우리가 친구여서 참 다행이었다. 좋은 친구들은 나를 더욱 나답게 했다. 


돌이켜보면 나와 친구였던 이들은 나와 꼭 같았기 때문에 친구는 아니었다.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오히려 알아갈수록 다른 점이 많아 친구가 되기에 좋았다.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함께 지내며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넓혀나갔다. 무엇보다도 친구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였다. 많은 관계에서 태도는 본질을 규정한다. 같은 것이 많아도 존중없는 태도에서 서로는 친구다운 친구일 수 없었다. 그런 관계는 잘 지내봐야 '같이 노는 것이 재미있는 정도'를 넘지 못했고, 그마저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 이들은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애써 감내할 것과 참을 것이 적어야 관계는 오래 지속됐다. 그리고 어떤 관계가 원활하고 별 탈이 없다면, 사실은 서로가 대단히 서로를 존중하려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과 마음이 통한 이들은 '동지'인 친구가 되었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정말 즐거웠다. 


좋은 친구를 노력으로 찾을 수 있을까? 또 만들 수 있을까? 부분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존재를 모른다면 친해질 수조차 없으니까. 나 역시 친구를 찾는 노력, 만드는 수고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한 때는 '네트워킹'이라는 명목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가본 적도 있었다. 그 곳에서 알게된 어떤 이들과는 그럭저럭 즐겁게 대화를 했고, 지금도 좋은 관계로 잘 지내고도 있다. 하지만 마음으로 공명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함이 즐거웠던 이들, 나의 동지인 친구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애써 만나려고 만난 것이 아니었다. 생활하고 살아가는 일상의 순간에서 나와 친구들은 우연히 필연히 서로 만났고, 지내는 시간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함께 이겨내며 서로의 청춘을 구성하는 조각이 되었다. 


내가 좋은 친구를 만나고 함께 오랫동안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다음 세 가지 정도일 것이다. 내게는 그랬다.


<좋은 나의 존재가 발견>되도록 관계를 회피하지 않는 것.

<함께 지내는 사람들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지키는 것.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않는 것. 


이렇듯, 좋은 친구를 만나는 법은 단순하고 어렵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다. 결국 사람은 같은 사람을 잡아 끈다.

더 나은 인간은 더 나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하게 된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은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된다.



내가 사랑한 나의 20대를 함께한, 고마운 나의 친구들에게

제 어디에서라도 더 나은 미래를 그릴 것을 믿는 우리 모두.

무모했던 우리가 함께했던 공간. 그리고 내 자리.
많은 말을 하려하는 편지에서는 아무 의미도 전하지 못하기에

훈련소에서 받은 편지 속 문장을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해야할 말은 꼭 적어야겠다. 한 번은 꼭 말해야 할 것 같다.


나와 함께한 고마운 나의 동지. 나의 친구들아!

우리는 오랜 시간 서로를 참 오래도 지켜봤지.

돌이켜보면 우리가 함께한 지난 20대는 참 쉽지 않았었어.

밤 바다를 보며 "젊은데 이게 뭐야" 라고 한탄하고 깡통을 차던 날들이 그래. 지난 우리 청춘이었는지 모르겠어.

돈은 못 벌었고, 참 고되었어. 추웠고 참 많이도 아팠지.


함께 일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끝내 우리의 업이 될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지.

그레도 먼훗날 우리는 그 날의 우리를 그리워할 것만 같더라.

함께 일하고 함께 놀 때 나는 그 순간들이 모두 즐겁고 행복했어.

그만큼 나는 우리와 우리가 보내는 시간들이 참 좋았어


지난 날 우리는 사랑을 할 때 각자가 누구를 만났는지 또 그 마음이 어땠는지를 참 잘 알았지.

그리고 우리중 하나가 사랑이 끝나 아파할 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했던 기억이 나.

내가 그랬을 때 너희들도 그랬겠지? 그대들 덕에 나는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어.

나를 더나은 사람이 되게 한 고마운 나의 친구들.

어떤 사람을 알려면 그 친구를 보면 된다고 하는데, 그대들 덕에 나는 좋은 사람이다.


20대가 끝나던 날. 

졸업도, 사랑도, 창업도 어느 것 하나 잘해낸 것 없던 나였지만 후회는 안되더라.

나에게는 과분할정도로 멋진 사람들. 나의 20대는 그런 너희와 함께였으니까 말이야

지난 20대는 외롭기도 괴롭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대들 덕에 즐겁고 낭만적이었던 것 같아


어느덧 달라지는 서로의 가치관과 삶의 궤적들을 체감한다.

각자의 치열히 시간을 보내는 탓에 예전만큼 쉽게 보지 못하지만,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을 믿는다.


우리내 청춘은 끔찍이도 짧고, 시간은 정말 빠른듯해.

그 사이 먼저 떠난 이도 있었지. 우리의 청춘도 삶도 영원하지는 않을 거야.

남는 우리들은 남은 청춘이 지나서도 삶이 남는 한 

한 번은 꼭 모여, 어린듯 젊었던 때 용감하고 무모했던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별볼일 없는 나지만 지난 날

세상에 나가는 나의 첫 창작에

나보다 더 멋지고 세상을 위해 많은 일을 한 친구들에게

나 그대들을 만나 정말 행복했노라고 함께해서 정말 고마웠다고 꼭 말하고 싶었어

이름을 모두 부르고 싶지만 행여나 실례일까 쓰지는 않으려해.



보고싶다

고맙고 미안한 친구들아




그대들보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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