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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Sep 15. 2019

매력적이기란 어렵다

매력의 가위바위보 게임과 감정 앞에서 어려워지는 자기객관화/자기다움

나는 매력적인 사람일까?

매력은 정서적 끌림을 만드는 어떤 특성/느낌. 그것이 내게도 있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

어휴 너 왜 또 이러고 있냐? 납득이 says

꼭 10년 전이었다. 나는 이제 막 대학에 진학한 새내기였고, 늘 매일 교복을 입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매 순간 버거웠다. 스무 살 내 방에는 전신 거울이 하나 있었다. 여느 때처럼 학교를 가기 위해 이런저런 옷을 입어보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았다. 그 날 나는 생각했다.


나.. 진짜 매력 없구나

분명 스무 살 나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낮은 자존감'탓에 나는 스스로 매력이 없다고 느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모~든 문제의 원인, '낮은 자존감'만으로 당시 나의 생각에 대한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 낮은 자존감 이전에 그때 나는 외적으로는 어떻게 꾸며야 할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남에게 말하기는커녕 나 스스로도 도무지 몰랐다. 뚜렷한 취향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아직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능력도 모자랐다. 아직 내면에 자기 존재가 빈곤하니 나 스스로도 존중은 어려웠겠지만, '미성숙'과 '낮은 자존감'을 같은 선상의 문제로 보기는 무리가 있다. 아무튼 청소년기에는 연애를 하거나, 주체적으로 나를 만들어 본 적이 잘 없던 나는 이제 나를 만들어가야 할 책임을 요구받고 있었다. 당장은 도무지 무엇을 입어야 할지 모를 오늘 입을 옷부터. 나는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야만 했다.


매력은 무엇이며, 자신의 매력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낮은 자존감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은 아쉽다.

자존감 문제 이전에 우리는 매력이 무엇인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하지만 20대의 시간을 지나면서 제법 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면서도, 내 취향이 제법 형성되는 동안에도 스스로의 '매력'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그것은 단순히 매력이 있다/없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왜 누구에게 나는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반대로 누구에게 나는 그렇지 않은 존재인가 하는 것. 그 매력의 상대성에 대한 고민이었으며, 근본적으로 '매력'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또 나의 매력은 무엇인가 하는, 어쩌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하는 존재론적 고민이었다. 내가 있어야 나의 매력도 있을 터니까. 물론 대단한 고민을 떠나서 내가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이가 나를 매력적으로 느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제일 컸다.


얼마 전에도 매력에 대한 생각과 스스로의 매력에 대한 고민을 친구들과 나눈 바가 있다. 그들 중 한 명은 "너 자존감에 문제가 있는 거 아냐?"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했다. 1) 나는 이재용, 강동원, 차은우와 내 삶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고, 2) 내가 하는 일이 그럭저럭 즐겁고, 3) 통속에 든 쾌락에 빠진 뇌로 살 바에는 월 150만 원 버는 삶을 살 것이다. 4) 이러한 내가 자존감이 낮은 것인가? 나는 자존감이 그다지 부족하지 않은 사람도 계속 자신의 매력에 대해 고민한다고 생각한다.


자. 그래서 매력을 무엇이라 정의할까? 편의상 <정서적 끌림을 만드는 어떤 특성/느낌> 정도라고 해두자. 말하자면 매력은 왠지 모르게 끌리는 향기 같은 것이다. 이러한 매력에 대한 판단에는 객관적/주관적 속성이 모두 고려된다. 사회 속 개인으로서 돈이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외모가 배우만큼 뛰어난 이들은 매력의 '객관적 지표'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매력의 전부라고 말하긴 어렵다. 객관적 지표는 이효리 선생님이 왜 이상순 선생님과 결혼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미 국무부의 전설적 본좌였던 헨리 키신저는 "권력은 최고의 최음제"라는 말을 했다지만, 그 말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 매력은 훨씬 복잡 미묘하고, 객관적 지표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주관적 요소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주관적 요소는 분명히 매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매력은 정서적 끌림을 만드는 어떤 특성/느낌이며,

객관적/주관적 요소 모두로 구성된다.

소프트파워는 돈과 힘만으로 불가능한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현상을 설명한다.


국제 정치학에는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돈(금력)과 무력, 권력이 아닌 매력으로 얻을 수 있는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갑자기 국제정치학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주 극단적으로 쉽게 말해 마블의 히어로인 캡틴 아메리카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영화 어벤저스의 캡틴을 보며 진심으로 그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성조기 모양 쫄쫄이를 입고, 방패에는 별과 빨간색 흰색 가득한 이상한 코스튬을 입은 저 사람이! 무려 멋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복종해서가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는 멋있다는 인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왠지 캡틴 러시아나 캡틴 코리아, 캡틴 노르웨이는 어색할 것만 같다.


소프트파워의 관점에서 미국은 돈과 군사력 등에서만 힘이 센 것이 아니다. 강한 소프트파워는 단순한 강요가 아닌 은근한 문화의 매력으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 내면의 동의를 이끌어낸다. 그러기에 일찍이 김구 선생님은 백범 일지에서 우리나라가 문화의 힘이 강대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셨고, 결국 매력적인 나라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돈과 지위에서 나오는 힘은 누군가를 복종시킬 수는 있다. 그것도 매력의 구성 요소이며, 주관적 영역의 매력을 증폭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근본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잡아 끄는 매력이 되지는 못한다.


이상 친구 자취방에서 "젊은데 이게 뭐야"라며 수없이 차였던 기억을 나누던 나. 깡통을 참 많이도 찼던 나의 과거에 대한 변명이었다. 그래. 요즘. 어떻게 잘 지내니?


매력의 일반성과 상대성

매력은 상대에 대해 계속 알고 싶고, 계속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관계 속에서 매력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다. 어떤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꼭 상대에 대한 성적 긴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좋은 가르침을 준 선생님에게 스승으로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도 있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좋은 상대를 만나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이 경우 매력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끌림으로 스파크 튀는 긴장감을 주는 매력과는 다른 것이다.


반면 상대에 대한 성적 긴장을 만드는 매력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평상시보다 각성된 상태를 만드는 힘이 있다. 인간 그 자체로 느끼는 매력과, 성적 긴장을 유발하는 매력은 완전히 같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매력은 그것을 유발한 대상에 대해 지속적인 궁금함과 함께 하고 싶은 욕구를 이끌어낸다. 그러한 욕구는 구체적인 어떤 말과 행동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왠지 저 사람이 파는 물건을 사고 싶다. 왠지 저 사람과 계약하고 싶다. 왠지 같이 무엇인가를 해내고 싶다. 이렇게 스스로도 명확히 하려는 의지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고, 비일상적인 결정을 이끌어내는 힘이 매력이다. 결국 매력이란 '이성적 판단만으로는 하지 않았을 일을 자발적으로 하게 만드는 힘'이라 생각한다. 매력이 가진 일반적 속성이다.


매력에 끌릴 때 우리는 하지 않았던 것을 하게 된다.

그러한 매력의 함수에서 객관적 지표가 <상수>라면, 주관적 지표는 <변수>이고,

같은 상대여도 각 개인이 느끼는 매력 값은 너무나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 매력이 작용하는 방식은 참 신비하다. 매력의 정도는 일관적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상대적이다. 매력이라는 '힘'의 작용은 단순히 객관적 요소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동일한 상대에 대해서도 각 개인들이 느끼는 매력의 정도는 다르다. 물론 극단적으로 객관적 속성들이 뛰어나다면 누가 보아도 '일단 매력적'이라고는 느낄 것이다. 정우성, 강동원, 차은우는 제 각기 다 정말~ 잘생겼다. 하지만 분명히 그 안에서도 상대적 선호의 차이는 있다. 같은 상대여도 일상을 왜곡시키는 매력의 중력이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다. 하물며 우리 같은 머글(보통 인간)들은 객관적 지표가 극단적으로 뛰어난 경우가 잘 없으므로, 그 상대성은 더 크게 나타날 것 같다.


때로는 매력의 상대성은 돈, 외모 등 객관적 지표가 만드는 일반적 차이를 무시하고 상쇄해버릴 정도로 강렬한 차이로 나타난다. 극단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짐짝'인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균형을 깨어버리는 마성의 상대가 된다. 그리고 대체로 인간 일반에 대한 관계에서 보다는, 성적 긴장을 유발하는 관계에서 매력의 상대성은 더 극대화된다. 말하자면 매력의 상대성은 가위바위보 게임같다. 도대체 이러한 매력의 상대적 차이는 무엇으로부터 오는 걸까?


A라는 개인이 다른 개인 B, C, D에 대해 느끼는 매력의 정도는 각기 다르고, 매력의 함수는 그 크기를 나타낸다. <상수>와 <변수>가 더해져 <매력의 결과값>이 된다. 여기에서 <상수>는 객관적인 지표라고 가정하자. <변수>는 각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특성이 반영되고 사람, 상황, 타이밍에 따라 변하는 값이다.

(사진 찾다 덕통 사고당함)

소개팅을 예를 들면, 각 개인마다 뚜렷한 기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키나, 재력이나, 학벌 등이 그것인데, 일견 주관적인 기준으로 보이지만 남들에게 뚜렷하게 설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매력 값의 예상이 비교적 정확하다는 점에서 '객관적 지표'에 가까우며 매력의 <상수>라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대상을 마주하고, 대화를 해보고, 알아가다 보면 느끼는 매력의 정도는 생각보다 많이 널뛰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매력의 <변수>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떠한 경우에 매력을 느끼는지 잘 모르고 있다. 자신의 기준을 아는 방법은 직접 여러 상대를 마주해보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끌렸던 상대들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나는 그때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특징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면 일관되게도 다르게도 나온다.


매력 판단의 주관적 기준을 알기 위해

매력적이라 느꼈던 사람들, 그 상황의 공통점을 찾아보려 했다.

완전한 설명은 할 수 없었지만 나는 언제 매력을 느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회고해보면 (성적 긴장이 있는 매력의 관점에서) 내가 매력적이라 느꼈던 사람들은 1) 다른 사람들보다 주관이 강하고 주체적이며, 2) 외향적이고 3) 지성미가 있고, 4) 온화하면서도 냉정한 면이 있었다. 5) 말이 너무 많지는 않았지만 적지도 않았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외모에서는 6) 쌍꺼풀이 없었고 7) 키가 너무 크지는 않았다. 상황적으로는 그 당시 8) 나보다 상대적으로 자기 일에서 이룬 것이 많았다. 이상형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이라 한다. 과거 나의 이상형은 내가 생각하고 마주할 수 있던 범위 내에서 가장 <1~8>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적고 보니 내가 왜 김연아 선수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물론 한 개인으로서 김연아 선수를 나는 알지 못하기에 인격의 교류가 없는, 관계에서의 교류의 기억이 없는 '상상의 좋아함'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매력 판단의 주관적 속성은 사람에 대한 취향이다. 어떤 포인트는 누군가를 치명적으로 취향 저격한다. 각 개인이 느끼는 매력의 주관적 속성은 선택과 선호의 기준이며, 상대에 대한 일관된 행동과 말의 경향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절대 기준은 아니다. 앞서 적은 기준과 무관하게 좋아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게다가 언어로 단순화하기에는 관계에서의 매력은 훨씬 복잡하다. 관계에서의 매력 함수는 12차 함수는 되는 것 같다. 때문에 누군가가 주관적으로 <1~8>하다고 느끼는 상대를 내게 '인위적으로 소개'해준다 해도 나는 별로 매력을 못 느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떠밀리듯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는 주선자의 자기만족을 위한 자리에 가까웠다.)

불 포켓몬 파이리는 물 포켓몬 꼬부기에게 약하다


다른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상대도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에는 냄새가 있다. 매력을 느끼는 마음에는 냄새가 있고, 상대는 그것을 알 수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할 때 서로가 느끼는 매력 값은 달리질 수 있다. 매력의 상대성 정도는 1) 나 자신이 어떤 상대를 볼 때의 매력의 크기와 2) 타인이 나를 볼 때의 매력의 크기가 함께 작용한 값이다. (마음도 재화라면, 희소함은 그 가치를 과잉 평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흔하다면 반대다.)


나는 상대를 좋아하는데 상대는 나를 사소하게 여긴다면, 내 입장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가깝기 때문에 이 간극을 이겨내기는 어렵다. 또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일상의 항상성을 깨고 보다 '무리'하게 된다. 이렇게 애써서 좋아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멀쩡한 넓은 밭이 있는데, 바다를 메우고 간척사업을 해서 공연히 밭을 일궈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난무하는 기술적, 기법적 접근. 매력은 기술인가?

매력을 연기하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닌 것이 되려는 자기최면에 가까운 시도

어휴 그럴 땐 말이야 이러저러 이렇게 했어야지!

매력의 상대성이 극대화된, '기울어진 운동장 상황'에 빠진 개인은 생각한다. 무리를 해볼 것인가 단념할 것인가. 나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딪혀는 보자"다. 단 나와 상대 사이에서 '가능하고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만. 그리고 매우 높은 확률로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각도가 클수록, 거리가 멀수록 시도는 어렵고, 실패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면 시도하라. 어디까지나 상대와 나 사이에서 '가능하고 허용되는 범위'에서만!


매력의 상대성이 극대화된 '기울어진 운동장 상황'

이 운동장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매력을 발산하는 기술적 접근이 유효하다고 믿고 싶어진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그 기울어진 운동장을 누가 만든 것이냐는 것. 어쩌면 상대를 한 인간이 아닌 완전한 대상으로 바라 보고 있지는 않은가. 특히 상대를 이상형이라고 믿을 때 이러한 일이 잦다. 왜 이상형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이라지 않는가.


이 경우 자연적으로 기울어진 각도와 상대와의 거리는 변함이 없는데, 괜히 내가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상황이다.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서 우리는 상대를 한 사람의 상대로 보지 못하기에, 자꾸 이상화하고 자기 자신을 낮추어 본다. 자연스러운 상대의 매력을 알지 못하고, 상대도 당신의 매력을 보지 못한다. 가수 덕질(좋아하는 마음을 매우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행위)을 하는 팬클럽 같다고 할까.. 잘못된 판단에 계속 꽂혀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몰입의 상승효과'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란 정말 어렵다. 심리적으로 말리고 있어서 자기객관화를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어떤 기술적 접근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뒤집을 수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어떻게 메시지를 보내고, 어떻게 전화를 하고, 대화에서는 어떤 레파토리들을 사용해야하고. 어떤 해야할 것. 하지 말아야할 것들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행여나 술자리라도 있을라 하면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데 이래야한다 저래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주 빈번한 화제가 된다.


'픽업 아티스트'라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 이들을 '아주 대단히 많이 선해'해서 정의하자면 <남성이 여성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지를 기술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사람들> 정도라고 하겠다. 굳이 '남성'이라 지칭한 이유는 여성이 남성을 '픽업'한다는 경우를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밀당'한다 '어장'을 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주체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 없다.


아무튼 픽업 아티스트들은 '픽업'이 <인간 심리를 연구한 이론™>과 <이론을 시험한 실전 경험™>을 통해 경험 과학적 지위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이 원고를 쓰기 위해(솔직히 궁금함도 있었다.) 픽업계의 고전이라는 외국 논픽션 소설 <THE GAME>을 읽어보았는데, 빠른 요약을 하자면 쑥맥인 기자 닐 스트라우스가 픽업 커뮤니티를 취재하면서 자신이 픽업계의 본좌(절대 실력자)가 된다는 대서사시™다. 역설적이게도 책의 결론은 '쾌락'을 넘어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었다. 픽업 기술만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는 없으니 마음이 공명하는 진심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마지막 메시지였다. 역시 어떤 분야든 '고전'은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는 법이다.


매력의 기술적 방법에만 과몰입하면 관계의 화전민이 된다.

관계가 시작될 때의 긴장감과 성취감, 성적 쾌락에만 몰두하고

깊이있는 마음의 교류를 하는 법을 잊게 된다. 얕은 쾌락 탓에 행복하는 법을 잊게 된다.


하지만 고전의 가르침을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성적 긴장을 느끼는 대상에게 매력을 기술적으로 소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러니까 픽업 기술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많은 여성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의 의미를 대단히 강조한다. 시행착오들은 당신의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기술은 관계를 장기적으로 경영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목적은 아닌 것 같다. 이들의 접근은 대단히 수단적이다. 어떻게든 '매력적인 여성'과의 관계를 트고 종국에는 성적 쾌락을 취한다는 목적을 넘어서지 못한다. '성취' 이후에는 다음 목표가 있을 뿐이다.


관계를 '픽업'으로 볼 때 관계는 단편적 중독의 수단이 되기 쉽다. 이들이 픽업의 관계에서 얻을 것은 <관계가 시작될 때의 긴장>과 <얕은 성적 쾌락>을 넘어서지 못한다. 관계가 시작될 때의 긴장감, 관계가 의도대로 되었을 때의 성취감, 성적 쾌락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휘발할 수 밖에 없는 쾌락이 이들이 얻을 빈곤한 성과다. 상대와의 정서적 교감은 부차적인 과정에 불과하고, 어쩌면 피곤한 일이다.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접시물처럼 얇고 넓은 관계를 지향하고 상대와 정서적으로 진정 교감하지는 못한다. 안된다 싶으면 바로 '방생'하고 '단념'하라는 식의 접근이 요구되며, 매력적인 다른 사람도 많으니 어서 '손절'하고 다른 시도를 하자는 것이 기본적 태도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매력의 게임' 자체에 응하지 않는다. 매력의 기술에 심취한 이들은 <일부 유형의 사람>에 대해서만 <제한적인 매력>을 <기술적으로 연기>하고, <얕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종국에는 그 마저도 대부분 불태우고 떠나는 '관계의 화전민'들이다. 이러한 매력에 대한 기술적 접근은 과몰입하고 중독되었을 때, 진정으로 그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깊이있는 마음의 교류로 얻을 행복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쾌락의 궁극에 이르지 못하고, 쾌락에 대한 회의감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류를 하지 않으니 관계는 종국에는 좁아진다. 픽업에 심취한 이 주변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남아 있는지 묻고 싶다.


물론 '진심'만으로는 매력적일 수 없고, 그것은 관계를 여는 어려움을 보통은 해결하지 못한다. 서로 설레임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밀당의 기술'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를 대하는 것이 '미숙'해서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이 경우에는 방법적 교정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하지만 일단 관계가 시작되고 오랜 시간을 서로를 알아가야할 때는 기술보다는 나를 만들어가는 노력과 상호 존중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하기 위해 불안의 긴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관계라면, 오래 지속될 리가 없다. 매력을 관리하는 기술은 기술일 뿐 그 자체로 내가 아님은 자명하다.


나는 내가 아닌 것이 될 수 없다.

누군가의 카피가 되는 것으로 나다운 매력을 만들 수는 없다.

자신의 시간을 이겨낸 김연아 선수는 진정으로 아름답다


깊이와 넓이는 선택에 따른 상쇄(trade-off)가 있다. 깊은 우물은 있어도, 넓고 깊은 우물은 본 일이 없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한다. 모든 관계가 깊으면서 넓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의 시간과 여력은 유한하고, 청춘은 더욱 그러하다. 여생동안, 청춘의 시간동안 우리는 우리의 매력으로 진정으로 마음이 공명하는 사랑을 몇 번이나 해볼 수 있겠는가. 그러한 사랑을 꼭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가 지속적, 장기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을 일이다. 다만, 선택해야한다는 것이다. 관계하지 않든, 정말 많은 이를 만나보든, 깊이 있는 몇 번의 사랑을 하든. 무엇이든!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매력적이었면 좋겠다. 우리는 사회 속 인간으로 살아가고 필연적으로 타인과 관계한다. 관계 속에서 우리는 '매력'을 통해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멋진 기회들을 잡을 수 있다. 매력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이끌어내고,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을 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자신은 매력적이어야 한다.


문득 그 매력이 과연 나에게도 있는지, 나는 매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한다. 매력은 참 미묘한 함수값이라 타인의 매력을 섣불리 흉내기란 어렵다. 게다가 상대적이다. 어떤 매력은 누군가에게는 더 크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짐짝만큼도 못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약간의 '퇴폐미'가 좋다. 그러한 아우라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조금도 아닐 것이다.


사회 속에서 사람으로 살며 우리는 필연적으로 관계한다.

관계 속에서 매력은 뜻 밖의 기회들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카피보다는 나 자신의 오리진인 매력으로.


매력을 채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매력적인 사람들의 특징을 참고해보고 그것을 '자신의 방식대로' 적용해보는 것이다. 어떤 것은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할 수 없으며, 어떤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이 없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카피에 불과하고 진정 나와 잘 어울리기 어렵다. 우리는 다들 너무나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키도 성별도, 생김새도, 몸의 체형도, 어쩌면 생각하는 사고의 근간도 다르고, 하는 일도 '서는' 곳도 다르다. 잘 맞지 않는 것을 따라하면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타인의 눈에는 그것이 더 잘보인다. 될 수 없는 것이 되려할 때 인생은 괴로워진다. 경영학은 말한다.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최소화하라고. 작은 키는 작지 않게 보일 수는 있지만, 커질 수는 없다. 내가 얼굴천재 차은우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했다가는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 누군가의 카피보다는 나 자신의 오리진이 되어야 한다.

최선의 그냥을 하다보면 뭐가 되어도 된다.

마음 먹는 것 그 자체로 매력을 더해가는데 한계가 있다. 아주 구체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된다. 매력 쌓기는 독립적인 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지난한 여정이고, 나 자신에 몰두하는 과정이다. 나의 일과 나의 생각에서 확고함을 세워나가며 일상을 나 자신이 의도한대로 일하고 여가하는데 시간과 여력과 마음을 쓰는 과정이다. 매일 한 두장씩 종이를 쌓듯, 꾸준히 운동하고 책을 읽고 사유하고 음악을 듣고 <취향-하며>  빈곤한 내면을 단단히 풍성하게 부드럽게 채워야한다. 말하자면 '최선의 그냥'이랄까.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최선의 그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믿는다.


매력에 대한 당연하고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아마도 매우 높은 확률로 당신이 매력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결국 '그 사람'과 잘되고 싶다는 이야기니까. 마지막으로 그 이야기를 안할 수는 없겠다. 당신이 아래 지침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친구 자취방에서 "젊은데 이게 뭐야"하고 깡통을 차며 고민했던 썸 관계의 정수들이다.(그저 울었다)



<썸의 정수>


-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상대도 결국 같은 사람이다.

실제보다 상대를 이상화하여 스스로를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지 말자. 매력에 끌릴 때 자기객관화 능력을 상당부분 상실하므로, 상대를 높게 보고 자신은 낮게 보게 된다. 스스로의 매력에 대한 냉정한 자기 객관화를 시도하자. 상대의 매력을 '있는 그대로', 나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아주 조금 더 관대히 보자. 그래야 균형이 겨우 맞을까 말까 한다.


- 나와 내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매일 하던 일상에서 항상성을 잃지 말자. 일상의 항상성을 잃으면 당신은 불안해지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삶은 위태해진다. 매력은 절하된다. 내 일에 몰두하면 관심사에 몰두하면 시간과 여력은 많지 않게 된다. 그 소중한 시간과 여력을 상대를 위해 사용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상대에게 '소홀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엔 없고, 자연스레 '밀당'하게 된다. 매력의 중력 탓에 일상을 너무 놓지 말자. 더 나은 내가 되기를 포기 하지 말자.


- 매력의 상대성에 따른 나의 온도 편차 줄이기

무슨 말이냐면, 상대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때 당신의 말과 행동은 어딘가 모르게 긴장되고, 경직되고 애쓰게 된다. 반면 상대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지극히 자연스러워지고 때로는 무례해지기도 한다. 당신이 느끼는 매력의 상대성 차이 안에서도 이를 보정하여 균일하게 대하게 하는 힘이 필요하다. 매력의 중력에 저항하여 균일한 값으로 만드는 것은 당신의 내면의 힘이다.


-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자기 자신도 모른다. 풍부한 사례 수집을 통해 도출한 결론은 관계에서 "되는대로 하지 뭐"는 사실은 <저 사람이랑 잘됐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나 용기는 없으니까 나 자신도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이야™>인 경우가 많았다. '전략적 모호함'과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당신의 마음에 솔직해져라!


- 가끔은 과감한 시도를 위한 용기를 낼 것.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관계의 평행을 깨는 행위는 어떤 긴장과 부담을 수반한다. 연락이나 만남을 위한 계기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일 수록, '시도'는 당연히 어떤 불편함을 자아낼 수 밖엔 없다. 당연히 불편하고 당연히 긴장되고 당연히 부담이 된다. 어떤 시점에서는 적절한 방법으로 용기를 내야한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무리수'는 안된다는 것이다. 당신 마음의 지속적이고 일방적인 전시는 아예 판을 깨버릴 위험이 있다. '과감한 시도'는 서로의 상황과 적절한 명분이 가능한 범위의, '적은 기회'에서만 가능하다.




덧붙여 지침 아닌 지침인데,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상대가 화답하지 않는다면 포기할 용기를 내어야 한다. 하지만 이정도 생각이 들기 전까지 꽤 용기있게 시도해보는 것은 옳다. 좀처럼 일상에서 하지 않을 일을 하게 하는, 그런 매력적인 사람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기를 선택할 때,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나 멋진 나를 놓친 당신이 손해지 뭐." 언뜻 정신 승리처럼 보인다.(맞다) 아무튼 나는 나의 매력에 대해 과신도, 의심도 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매력을 더해갈 나를 믿어볼 따름이다. 나는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얼마전 결혼한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첫 번째 연애가 결혼까지 이어진 매우 진귀한 케이스다.(대학 입학도 졸업도, 취업도 한방이었다. 대단한 친구다.) 이 친구가 대단히 전략적인 선택을 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지 이 친구와 반려자는 어떤 타이밍, 어떤 상황이 놓였고 그때 서로가 있었다. 타이밍, 상황, 사람이 맞아서 서로를 잡아끈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충실했고, 서로에 대해 진심을 다해 마음이 공명했고, 오랜 후에도 함께할 방법으로 결혼을 선택했다. 때로는 각자, 때로는 함께 삶에서 충실한 그들은 서로에게 매력적이었다.



결국 매력이란 더나은 나, 더나은 삶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향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일 일상에서 충실하기란, 여러 관계 속에서 매력의 상대성을 알기란 또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겨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생각한다.

에휴 매력은 무슨

자기 일 할 때 사람은 가장 멋진 법이야!

글이나 써야지




매력적이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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