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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Jun 23. 2022

(스포) 레이디 버드

나의 빛바랜 일기장을 보는 듯

내가 세상의 중심일 때가 있었다.

세상이 나를 기준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하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 시절 우리는 모두 그 흑역사를 지나왔다.

"레이디 버드"는 그런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지나온 그 과정에서 느꼈던 상처와 성장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마치 나의 지난날 빛바랜 일기장을 보는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크리스틴은 부모님이 주신 이름 대신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지어주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레이디 버드로 불리길 원했다.

그와 더불어 빨간색으로 물들인 단발머리는 특별해지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잘 나타내 주었다.

가난한 집이 싫었고  본인이 살고 있는 작은 새크라멘토도 싫었다.

그 모든 일상은 지겨웠고 시시한 것들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막는 것처럼 느껴지는 엄마에게서도 떠나고 싶었다.

"레이디 버드"는 이전에 우리가 사랑하던 착하고 바른 소녀는 분명 아니다.

자신의 집을 "철로변의 구린 곳"으로 말하거나 실직한 아빠를 부끄럽게 생각해 학교에 가기 한두 블록 전에 차에서 내려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불같은 성질로 늘 트러블을 일으켜 그녀가 가족들과 있으면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게 일탈해버린 소녀도 아니었다. 소위 잘 나가는 두 번째 남자 친구의 무리에 꼈으나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어중간하게 있는 모습이 인물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내의 레이디버드는 못됐지만 착하고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졌다.

엄마에게 못되게 굴지만 사랑받고 싶어 했고 친구에게 상처 주었지만 다시 다가갔으며 큰 상처를 준 첫사랑도 이해하고 용서해 주었다.

이런 성격은 인물을 입체적으로 느껴지게 해 주었고

마치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아니 이거 나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중한 것은 늘 가까이 있을 땐 알지 못한다.

시시하고 지겹게만 느껴진 새크라멘토가 뉴욕으로 떠나자 그리워질 줄은 , 실패한 첫사랑과 두 번째 사랑이 떠오를 줄은, 지긋지긋하던 엄마가 그리워질 줄 레이디버드는 몰랐을 것이다.

정글 같은 학교에서 차별받고 삐뚤어지고 모두를 저주하고 그냥 얼른 어른이 되길 바라며 보냈던 나의 학창 시절 그리고 그 모든 게 싫어 이름까지 바꿔버린 나의 과거도 돌이켜보면 전부 싫었던 건 아니었다.

그중 몇몇 선생님과  친구들은 나를 이해해 보려 애써주었고 분명 웃으며 보낸 시간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다.

그 시절 느꼈던 상처,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싫었던 선생님들과 여러 일들이 있었으나 그 안에 따뜻했던 소소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 주고 통으로 날리고 싶을 정도로 최악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절은 인생에 단 한 번 뿐이기에 가치 있다는 것을.. 그래서 현재도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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