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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Jun 25. 2022

피그

"나"라는 사람의 흔적

우리는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을 때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서둘러 덮어버리고 다음 걸음을 하기도 한다. 시간에 기대어 잊히길 바라며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피그"의 롭도 부인을 잃은 아픔이 너무나 힘들어서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숲에 들어가 살기로 결심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돼지 한 마리가 늘 함께했다.
돼지는 롭이 트러플 찾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의 곁에서 나름의 위로를 하며 어느새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족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특별해진 돼지를 누군가가 훔쳐 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드라이브 마이카"의 가후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후쿠는 부인의 외도를 알면서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행복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모르는척하다가 끝끝내 더 이상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미사키에게 자신은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롭이 떠난 지 꽤 오래 지났던지라  이미 그가 잊혔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라는 사람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만나는 건 롭이 아픈 과거와 마주하는  동시에 그 아픔을 공감하는 누군가에게 위로받기도 하는 여정이 되었다. 돼지를 찾아 나선 길이지만 롭은 제대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 장면들은 인생에 대해서도 돌이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한 사람이 떠나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 사람의 모습은 늘 그대로 있고 누군가는 그를 그리워한다. 살아가면서 또는 내가 더 이상 세상에 없어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인생은 유한하지만 열심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함께 추억을 공유하면 그 자체로 서로는 특별해진다.
이는 돼지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롭의 머릿속에 돼지는 가족이자 그리워하는 존재가 되었고 그 돼지는 돼지 이상으로 특별해졌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아미르와의 관계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이 영화는 단순히 돼지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또 상처를 마주 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 자체의 상황은 차갑지만 그 안의 감정들은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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