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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Jul 05. 2022

(스포) 고양이를 부탁해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위로

어른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어쩌면 어른이 되고 나서도 어른이 되기 힘들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아무리 싫은 학교여도 담임선생님이 있었고 우리의 행동 중 책임의 일부는 어른들에게 돌아갔으며 나를 먹여 살릴 책임은 어른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20살이 되고 어른의 길에 접어들면서 자유가 주어지는 대신 책임이 따르고 그와 동시에 나는 내가 먹여 살려야 한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 고민을 20살이 된 친구들의 이야기로 표현했다.

이들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이며 그 우정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각자의 성격과 지향하는 바는 다르다.

어린 시절 가장 친했던 혜주와 지영은 그래서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꿈이라도 꾸고 싶은 지영을 혜주는 현실적인 말로 꼬집었으며 이는 서로에게 모진 말로 돌아가며 깊은 상처를 입힌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눈으로 혜주를 바라보면 혜주는 나쁜 게 아니다. 얄밉기는 해도 자기 나름 친구들을 위하고 있었고 일하면서 생기는 차별과 어려움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뿐이다.


태희는 이런 친구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바쁘거나 힘들어서 연락을 못하는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서로가 주기적으로 만나게 해 준다. 친구들의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착한 마음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시 쓰는 것을 도와주는 봉사활동도 한다. 하지만 태희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다.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늘 답답함을 느꼈고 이는 자유를 위한 갈망으로 나타난다.

태희가 피는 담배 연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자유롭고 싶어 하는 태희의 마음이 더 잘 드러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지영과의 생각 차이로 드러나기도 한다.

지나가는 거지를 보며 태희는 "자유로워서 좋겠다."라고 한 반면 지영은 "저렇게 될까 봐 겁난다."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이런 너무 다른 친구들.

태희, 지영, 혜주, 비류, 온조를 차례대로 보여주며 누구에게나 힘든 인생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이 영화가 개봉하던 20년 전보다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으로 설자리가 더 사라진 지금 우리에게 더 큰 위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던져주는 정답은 없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있고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주었다. 특히 태희가 지영의 손을 잡아줄 때

실패한 인생은 없구나 인생에서 길이 끝났다고 믿어도 살 길이 있고 믿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인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영이가 혜주에게 선물한 고양이는 다시 지영이에게 갔고 태희를 거쳐 비류와 온조에게 갔다.

이는 일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일을 구하더라도 평생 정착할 수없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져 씁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반면에 그래도 계속 맡아줄 사람이 있는 고양이처럼 인생에서의 길은 계속 열린다는 생각이 들어 희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시절 배우들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기대 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큰 위로를 받게 된 영화라 더 기억에 남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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