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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Aug 10. 2022

(스포) 실종

지긋지긋한 돈. 그 민낯


사람을 쉽게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사람에겐 여러 가지 얼굴이 있고 우리는 상대방이 갖고 있는 고작 몇 개의 얼굴만 접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본인마저도 본인의 모든 면을 다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조금 어리숙하지만 착한 아빠 "사토시"와 그의 딸 "카에데"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고 엄마도 없는지라 서로 내색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채 힘든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토시는 카에데에게 수배 중인 연쇄살인마를 봤다며 그를 잡으면 현상금 300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꺼낸 후 사라져 버린다.

카에데는 갑자기 사라진 아빠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아빠의 이름으로 일용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자신과 아빠의 꿈이 담긴 장소인 탁구 학원에서 자고 있는 연쇄살인마를 발견했다. 그리고 아빠가 살인마를 잡으려다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하고 아빠를 찾아 나선다.

이 영화는 카에데의 시선, 연쇄살인마 "야마우치"의 시선, 사토시의 시선 순으로 진행된다. 시선이 옮겨지며 사건의 진상도 점점 선명해지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사람의 욕망, 모순이 드러나기도 한다.

영화는 "돈"에 의해 사람이 얼마나 망가져 버리는가에 대해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루게릭병에 걸린 부인을 헌신적으로 돌보던 사토시는 나빠지기만 하는 아내의 상태, 그리고 그로 인한 아내의 좌절, 더 어려워지는 가정 형편으로 지쳐버렸다.  자신의 전부인 아내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정말 아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라나고 이는 아내가 자살  시도를 할 때 얼른 가서 말릴 생각은 안 하고 멍하게 치켜보고 있던 장면에서 특히나 잘 드러난다.
또 그 모든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며 자신은 옳은 일을 한 것이라 끊임없이 합리화한다.  야마우치는  사토시의 곁에서 그런 인간의 욕심을 발화하는 역할을 한다.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야마우치에게 죽음을 의뢰했던 사람들 또한 돈으로 인한 삶의 고통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찌르레기의 전 재산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라는 게 참 무섭다.
돈을 얻기 위해 인생의 반 이상의 시간을 쏟아부으며 살아가지만 언제나 그 금액은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돈을 당겨서 사용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심지어 사람도 살릴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더욱 "돈"의 위대함 앞에 무릎을 꿇게 되나 보다.
오죽하면 "돈 귀신"이라는 말이 있나 싶다.

+마지막 장면은 사가츠가 아빠를 보내기 싫은 마음을 탁구를 치는 장면을 통해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실종의 원제 "さがす"는 찾았다!라는 뜻이라 한다.
드디어 아빠를 찾았다는 의미, 또한 아빠가 어떤 짓을 한 사람인지 찾았다는 의미로 영화를 잘 표현한 제목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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