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흥미를 느껴 책을 구입한 후 이제야 다 보았다. 영화를 볼 땐 아무리 날개를 달고 새로 시작하고 싶어도 날 수 없는 남매의 비극과 다나카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을 비참하게 만들어 결국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나쓰하라 이야기 정도로 느꼈었는데 책은 상당히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다.
영화처럼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조여 오는 방식이지만 책 안에서 그들의 증언은 더 구체적이었고 읽을수록 여러 방면으로 다코씨와 나쓰하라씨의 과거를 떠올리는 그들의 증언은 모두가 피해가도 가해자도 아닌 그저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살해당한 부부와 진술하는 모두는 결국 더 나은 곳을 향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욕망은 좋은 남자를 잡기 위해서, 또는 좋은 취업자리를 잡기 위해서, 내부생에 들어가기 위해서 등 제각각이었는데 결국 한 가지로 모아졌다.
결국 그들은 현재 위치보다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삶을 보장받고 싶었던 것이다.
다나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쓰하라를 붙잡아 부잣집 남자를 끊임없이 소개받다가 쉬운 여자 낙인이 찍혀 추락해버린 것일 뿐 결코 나쓰하라에 의해 피해를 받은 게 아니었다.
이 책의 인물들은 서로의 계산하에 필요에 의해 관계 맺기를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나는 이들이 노골적이냐 잘 숨겼느냐에 차이만 있을 뿐 서로 목적이 있었다는 점에서는 누가 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입장으로 느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증언들이 이미 죽어버린 다코와 나쓰하라의 주변인들의 증언이라는 것이다. 죽은 이들은 말이 없고 주변인들의 증언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래서 이 사실들은 객관적 진실일 수가 없다. 분명 같은 이야기를 해도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진술도 있고 은연중 증언으로 자신이 더 나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모습도 읽어볼 수 있었다. (다코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서라 자신이 더 낫다고 계속 말하는 직장동료, 나쓰하라가 예쁘지만 성격은 좋지 않고 자신을 동경했다고 말하는 동창 등)
주변인의 증언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사람은 자신만의 생각에 가둬서 타인을 판단한다. 이에 관해 책의 뒤편에 번역가분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죽은 후 자신들이 이렇게 까발려지는 것도 모르는 부부도 어리석지만 진술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며 본인이 까발려지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진정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번역가분의 생각을 보고 나도 우행록이라는 이 책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엇을 가리킬까.. 에 대해 자신의 동생을 성폭행하던 아버지를 증오하던 오빠가 동생과의 아기를 낳게 된 어리석음, 부자 남자를 잡아서 인생을 펴보겠다며 노골적으로 돌진하다가 추락한 후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사람은 오빠뿐이었다며 오빠와의 아이를 낳은 후 학대한 엄마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죽여버린 어리석음(학대한 엄마는 다나카의 정신을 죽였다고 느꼈음), 동생의 아무 이유 없는 우발적 살인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취재라는 목적으로 행한 인터뷰에 놀아난 사람들의 어리석음으로 이 영화의 제목을 정리해본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인간관계를 하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그런 진술들로 채워진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결국 그 진술들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않았고 다 읽고 나서는 어떤 게 진실인지 헷갈리게 되는 내용이라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이러한 진술들로 미루어보아 사람은 어떤 관점에서 누구의 눈으로 보는가에 따라 여러 얼굴이 보인다는 사실이 읽히던 흥미로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