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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Jun 21. 2022

(스포) 우연과 상상

평범한 일상에 가미된 선물 같은 상상


"드라이브 마이카"로 영화팬들을 설레게 했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의 새로운 영화가 개봉했다.
이번엔 독립영화 느낌이 물씬 나는 "우연과 상상"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총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편은 각기 다른 상황을 가지고 있고 장면 전환이 거의 없고 긴 호흡과 다소 많은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비록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야기 모두 다 우연하게 발생할 수 있는 관계들에 여러 상상을 더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영화의 소제목들은 아래와 같이 이루어져 있다.

1.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2. 문은 열어둔 채로
3. 다시 한번


1.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메이코와 츠구미는 절친이다.
함께 촬영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츠구미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앞으로 연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남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메이코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남자가 자신과 예전에 헤어진 전 남자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1회 차보다 2회 차가 더 흥미로웠다.
1회 차 때는 긴 새로운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지루했는데 2회 차 때는 츠구미가 말하는 남자가 메이코의 전 남자 친구라는 것을 염두해 두니 메이코의 미묘한 표정 변화와 감정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회 차 때는 마냥 이상해 보이기만 하던 메이코가 2회 차에서는 어쩐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메이코의 모습에서는 사랑에 서툰 어린아이가 보이기도 했다.
사실 누군가를 좋아하고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감정이 이성을 가린 상태에서는 누구나 바보가 되기 마련이다.

메이코는 이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을 상대방을 상처 주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그래도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현실에서도 착한 사람보다 이런 사람이 더 매력 있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런 부류가 더 많은 연애를 쉽게 시작하기도 한다. 그 끝은 지금 이 영화처럼 좋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메이코의 마지막 결정이 더 놀라웠다.
마치 그녀가 성장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앞으로 메이코도 더 이상 미성숙한 연애로 서로를 갉아먹는 관계 말고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조심스럽게 보내본다.


2. 문은 열어둔 채로
세 이야기 중 이 이야기가 가장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섹스 파트너, 누군가를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갈망 등 가장 낯 뜨거운 인간의 민낯을 다루고 있어 나 또한 때로는 당황스럽고 불쾌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점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나오와 사사키는 섹스 파트너다.
끊임없이 상처만 주고받는듯한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 서로에 대해 애정은 없고 파트너 역할만 하는 이상한 관계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으로 받은 불이익에 대한 복수로 사사키는 나오를  이용 하려 한다.

중반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세가와 교수님께서 쓰신 적나라한 묘사를 읽는 장면이 길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마치 고고하게만 보이던 세가와 교수님이  숨겨둔  욕망을 작품에 표현해 노출한 점  또한 섹스 파트너를 가지며 본능에만 충실한 나오와 사사키와 같은 게 아니냐고 비웃는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본인들의 욕망 때문에 끊임없이 서로를 끌어내릴듯한 결말 또한 인상적이었다.


3. 다시 한번
세 이야기 중 가장 호불호 갈리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이야기가 마지막에 배치된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어떠한 바이러스로 인해  인터넷을 비롯한 발전한 기술의 사용이 불가능해져 과거 아날로그 시대로 회귀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으로 출발한다.

우연히 에스컬레이터를 지나는 와중 두 동창이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아야는 나츠코를 집으로 초대했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 서로가 본인이 생각하던 동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혀 몰랐던 두 사람은 오해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관계로 인해 두 사람은 행복한지 아닌지도 모르고 지내던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얻게 되었고 또한 서로가 착각했던 상대를 연기해 보며 각자가 가진 그리움 또한 어루만져 주었다.
아마 이들은 매일 똑같이 흘려가서 지겹게 느껴지던 날들 대신 이 만남으로 인해 다시 기대되고 활기 넘치는 날들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의 우연한 만남을 보는 이들 또한 이들의 소소한 위로로 인해 분명 마음 깊은 공허함이 어루만져졌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보기 전까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 영화의 감독님이 "드라이브 마이카"의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안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고 나서는 안 봤으면 아주 후회할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저예산인듯하고 평범한 소재인데 생각보다 깊이 있고 재미까지 있었다.
여러  다양한 인물들을 엿보며 느꼈던 소중한 감정,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로 받았던 큰 위로.
잘 만들어진 영화로 인해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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