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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Sep 09. 2022

헌트

기대 그 이상으로 훌륭했던 이정재 감독님의 데뷔작


사실 헌트라는 영화는 관심 갖던 작품이 아니었다.
그동안 숱하게 나온 한국 상업 영화들이 큰 실망을 줬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정재라는 배우가 감독으로서 얼마나 잘 해낼지도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예상과는 다르게 헌트는 그즈음 개봉하는 상업 영화들 중 가장 좋은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고 뒤늦게 궁금해져 안 보겠다는 처음 다짐을 철회하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이 영화는 내부의 스파이 "동림"을 색출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안기부 국내팀 차장 김정도와  해외팀 차장 박평호가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면서도 미심쩍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누가 동림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영화 속에 삽시간 빨려 들게 된다.

김정도와 박평호는 서로 팽팽하게 맞선다. 그래서 그들이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가 같은 지점에 다다른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불꽃 작전과 베드로 사냥으로 표현되는 이 작전은 그 짧은 순간 안에 서로 다른 인물들이 서로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한 자리에 모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 긴장감이 상당했고
서로가 가지고 있던 이념도 꿍꿍이도 모두 잿더미로 덮인 채 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되어 버려 더 허무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박평호와 조유정의 관계도 주목할만했다. 마치 친구의 딸이라 보살펴 주는 듯 하지만 그들의 속내도 꽁꽁 감싸진 채 그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다가 중반 이후에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박평호는 조유정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유정의 아버지(진짜 아버지인지도 모르겠지만)가 죽기 전에 또 다른 박평호를 감시할 누군가가 올 거라 했으니까.
그런데도 박평호는 조유정을 보살펴주고 챙겨주었고  이 모습은 마치 키다리 아저씨를 연상시켜 정우성과 이정재의 브로맨스에 이어 또 다른 설렘 포인트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영화는 실제 1980년대의 사건들을  모티브로 하여 진행되고 있다.
1983년 북한의 이웅평 대위가 남한으로 귀순한 사건과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테러사건을 찾아보고 가면 좋다고 했던 여러 글들이 이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내용이 굉장히 촘촘히 진행되어 한 순간이라도 놓치면 느슨하기 붕 떠버릴 수 있으니  위 두 사건에 대해서는 찾아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인터뷰를 찾아보니  이정재 감독님께서 그들이 실패한 그 시대의 모든 염원은 박평호가 조유정에게 새 출발을 하라며 건넨 여권과 함께 조유정이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시작이 되었을 거라 하셨다.
영화를 볼 땐 허무했는데 그 인터뷰를 들으니 그래도 희망적인 결말이었다는 점에 그 허무함이 조금 걷혔다.

안 봤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던 영화이다. 언뜻 봐서는 웃음기가 빠진 영화라 지루할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을 쪼아대며 조금도 지루할 여유도 주지 않는다. 기대 없이 보러 갔지만 가장 큰 만족을 느끼고 돌아온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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