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라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데 14주 연속 박스오피스 Top 10, 1억 달러의 수익을 냈다는 소문과 높은 로튼지수 IMDB, 메타크리틱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에도 에에원이 개봉하게 되었다. 사실 보기 전엔 조금 우려가 있긴 했다. 이전에 닥터 스트레인지 2가 멀티버스 소재를 이용했다 해서 크게 기대했으나 막상 보니 멀티버스의 반의 반도 사용 못한 채 그저 멀티버스의 껍데기를 보여주는 정도로만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우려는 금세 사라져 있었다.
영화는 세탁소를 힘겹게 운영하며 현실 때문에 삶에 지치고 찌들어 버린 에블린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바쁜 삶 때문에 남편과의 대화를 할 여유조차 없었고 그 상황에서 자꾸만 삐뚤어져 가는 딸 때문에 마음의 여유는 더더욱 사라진 지 오래인데 그 상황에서 이혼 요구까지 받아버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남편이 자신은 다른 세계의 웨이먼드라 하며 에블린에게 이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중반쯤 접어들면 이 영화는 거대한 멀티버스 세계를 열어 관객을 빠져들게 만든다. 여러 멀티버스 안에서 살아가는 각각의 에블린이 있고 그들의 힘을 카피해 사용할 수 있다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이 영화의 멀티버스 세계관에 힘을 실어준다. 작은 선택들이 모여 수많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들어내었다는 설정 그리고 그로 인해 다양한 에블린들이 비슷한 행동을 하며 교차 편집되어 보이는 장면들에는 감탄을 했다.
거대한 멀티버스 방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가족 이야기 또는 화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우리가 아등바등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은 결국 끝이 날 것이다. 인생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한 그저 도넛 속에 사라져야 할 찌꺼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은 "친절함", "사랑"이다. 비록 내 삶이 최악으로 느껴질 지라도 보잘것없어 보일 지라도 누군가는 그러한 평범한 삶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순간순간 지나가 버리는 한 줌의 시간이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짧은 찰나 지나가는 인생의 순간순간이기에 소중히 여길 것이라는 에블린의 대사는 그런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나의 마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을 것이다.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삶이기에 우리는 늘 지쳐있다. 그러나 인형 눈알로 표현하던 "친절함" 바쁜 삶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은 더 근사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