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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Dec 14. 2022

(스포) 견왕: 이누오

외로웠던 춤과 비파가 하나가 되어 꽃 피운 꺾을 수 없는 우정.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님은 매 작품마다 전혀 다른 감독이 제작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른 색의 이야기, 작화를 선보이는 감독님이다. 이는 감독님의 끊임없는 도전, 안주하지 않겠다는 고집으로도 느껴져 어느새 이 감독님의 신작은 늘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감독님께서 들고 온 이야기는 다소 무거운 일본에서 지워진 역사이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헤이케 가문"에 얽힌 이야기이다.

하지만 gv에서  감독님이 역사적인 부분은 일본에서도 기록이 제대로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인들도 전부를 이해하기 힘들고 한국인들 또한 한국의 역사가 아닌지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보다는 두 사람의 우정, 예술에 초점을 맞춰 감상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것을 중심으로 이해했고 그 부분을 적어보려 한다.


평범하게  물질을 하며 지내다가 타이라 가문의 저주로 장님이 된 "토모나". 그의 아버지 또한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고 그 사건으로 토모나의 인생길은 비파 법사와 만나며 그 경로를 달리하게 된다.

또 추한 모습으로 태어나 버림받고 얼굴에 표주박이 씌워진 채 개들과 함께 생활하던 아이 "이누오".  그는 우연히 마주한 춤과 노래에 즐거움을 발견하고 혼자 실력을 갈고닦는다.


이렇게 외롭던 둘은 운명처럼 만났다.

표주박 안의 얼굴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던 이누오는 눈이 보이지 않는 토모나 곁에서 따뜻함을 느꼈고 외롭던 토모나에게도 이누오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서로가 가진 비파 연주와 춤은 하나가 되었다.

이누오의 곁에 붙은 헤이케 망령들의 이야기를 공연할 때마다 이누오의 신체는 한 부분씩 인간의 형상을 띄게 되었고 이내 토모나와 이누오의 목표는 헤이케 망령의 이야기를 푸는 것이 되었다.


흔히 정치와 예술은 양립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예술인들은 늘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고 정치인들은 더 이상의 혼란이 없이 나라가 안정되길 바란다.

이는 예술을 갈구하다 끝내 파괴된 이누오의 아버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게 된 이누오, 꺾여버린 토모나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토모나의 이름은 총 세 번 바뀐다.

토모나ㅡ토모이치ㅡ토모아리

그중 토모아리는 스스로가 붙인 이름으로 "우리가 함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토모나가 끝끝내 토모아리를 고집한 모습에서 이누오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이누오와 함께했던 헤이케마저 지키고 싶어 했는지 잘 나타났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장면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의 맨 처음 현대에 이질적으로 존재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토모아리의 모습과 마지막 장면이 연결되는 지점도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음악가들을 표현해서 음악에도 꽤 공을 들인 느낌이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음악, 그들의 공연을 함께 즐기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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