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칸은 로사 릭솜의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는 영화이다. 사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봤을 땐 그렇게 아기자기해 보이지도 않았고 잘 모르는 배우들이 있어서 관람을 망설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안 봤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이 귀여운 라우라와 료하를 응원하고 있었다.
영화는 모스크바에서 무르만스크로 암각화를 보기 위해 떠나는 라우라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라우라와 료하가 기차에서 같은 칸을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안 그래도 사랑하는 연인이 자꾸 멀어지는 것 같고 여행도 혼자 오게 되어 심란한 라우라인데 알코올 중독자처럼 술을 마시며 무례하게 말을 툭툭 내뱉는 료하 때문에 라우라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간혹 가다 인물들이 열차에서 내리는 장면들이 나오긴 하나 이야기의 대부분은 열차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 굉장히 무례해 보이던 료하가 시간이 지나면서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고 라우라 또한 이 마음을 읽고 료하에게 마음을 점차 여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 변화가 꽤나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라우라는 중간에 카메라를 잃어버린다. 여행 내내 카메라에 녹화된 파티장면을 보며 이리나를 그리워하던 라우라에게 더 이상 추억을 되새길 매체는 없어졌고 이는 마치 자신에게 별 관심이 없는 연인 "이리나"와의 연결고리에서 벗어나 오롯이 홀로 서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때 "사람은 다 죽어야 돼."라고 말하던 료하의 말이 라우라에게 더 따뜻한 위로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암각화를 보러 온 것도 사실 이리나 때문에 온 것이지만 정작 이리나는 라우라가 암각화를 보든 말든 별 관심이 없던 반면 료하는 어떻게 해서든 라우라에게 암각화를 보여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돌을 보러 왔다는 자체도 이해가 안 가면서 말이다. 이 장면은 특히 료하의 자상한 면이 잘 드러난 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라우라의 성장스토리로 느껴진다. 암각화 하나를 보기 위해 왔으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열차 안에서의 시간에서 이러저러한 사건을 겪은 후 라우라의 내면은 달라져있었고 더 이상 그 안에 이리나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암각화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허무했지만 그 후 료하와의 눈싸움 장면이 나오며 그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그 여행길이 이리나가 없어서 쓸쓸했던 허무한 암각화를 향했던 여정이 아닌 료하와 함께해서 많이 웃고 즐거웠던 여정으로 라우라 안에 남을 거라 생각한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인연, 그리고 성장을 아기자기하게 잘 그려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사진은 없으나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주고받은 그림 또한 사랑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