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디즈니의 둥글둥글하고 모자 쓰고 파란색 노란색 옷을 입은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기자기한 이야기에 관심 없을 것 같은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님이 피노키오를 촬영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나는 은연중 모든 아이를 울렸던 감독님의 작품 "판의 미로"처럼 피노키오 또한 그러한 작품으로 탄생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기대도 되었으나 걱정도 되었다.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님의 피노키오는 마치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처럼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또한 크리스마스 악몽처럼 피노키오도 스톱모션 애니로 제작되었다.
디즈니의 피노키오가 아들을 잃은 과정을 보여주지 않은 반면 기예르모 감독님의 피노키오는 아들과 행복했던 시간, 아들을 왜 잃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아들이 돌아오길 바라며 나무인형을 만들었는지가 자세히 나온다. 그러한 과정은 제페토의 마음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후에 형성되는 피노키오와 제페토의 관계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게 해 주었다.
피노키오의 설정 또한 인상 깊었다. 일단 외모를 보면 정말 사람 같지 않은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작은 눈동자와 동그란 얼굴이 귀여웠고 옷을 걸치지 않았으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무의식 중에 자리 잡은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나 다른 디자인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여기서 감독님의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또 이 피노키오는 불사라는 설정이 가미되어 있다. 이 설정은 피노키오가 진정한 소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활용되고 나치정권이야기까지 그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세바스티안의 설정도 눈길이 갔다. 자신이 집으로 삼은 나무가 피노키오의 몸이 되어버려 심장 위치의 구멍 안에서 생활한다는 점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는 기존 피노키오에서 나왔던 선악을 모르는 피노키오의 양심이 되어준다는 역할에 잘 어울리는 설정이었다.
푸른 요정도 더 신비롭게 등장했다. 눈이 여러 개 달린 외모를 지녀서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무서운 외모와는 반대로 인자한 마음과 말투를 소유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제페토와 피노키오를 더 잘 지켜보고 그들이 행복하게 도와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간이 되는 것은 어쩌면 끝없는 배움과 수양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피노키오가 소년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런 관점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피노키오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성장과 사랑을 바라보며 더 진하고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