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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Mar 06. 2019

#9 리스본에서 마주친 아티스트

당신의 일은 행복한가요?

산타후스타 엘리베이터 전망대로 가기 위해

까르무 수녀원 옆 길목에 들어섰을 때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한 건물 벽면과 바닥에 그림들이 펼쳐져 있고,

그 옆에는 그림의 주인으로 보이는 현지 여성이

의자에 앉아 펜으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다.


그녀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물었다.

“여기 그림들 직접 그리신 건가요?”


그녀는 마치 자랑스러운 자식들을 바라보는 듯한

어머니의 눈빛으로 그림들을 슬쩍 둘러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답한다.


“네, 여기 리스본의 모습을 담아봤어요.

  마음에 드세요?”


아티스트 그리고 리스본 그림들 (2019, 오건호)

“너무 멋져요.”


나는 리스본의 상징물, 장소들을 그린

작품 한 점 한 점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다보며

여행 속에서 또 다른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과 눈빛으로 이미 답을 알면서

나는 한 번 더 물어보았다.


“그림 그리는 일이 행복하세요?”


“그럼요. 좋아하는 일을 주변의 강요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예상했던 답과 함께 이번에는 그녀가 되물었다.


“그럼, 당신은 무슨 일을 하세요? 그림을 좋아하시나 봐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회사원이라는 단어 말고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간단명료하게 전달할 답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가예요. 저도 작가님처럼 그림을 그려요.”


무턱대고 입 밖으로 꺼낸 말이지만

화가라는 대답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동료의식이 느껴졌는지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어떤 도구로 그리는지,

이곳에서도 그림을 그렸는지 계속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는 내가 그녀에게 처음 물었던 질문을

나에게 다시 던졌다.


“그럼, 당신의 일은 행복한가요?”


나는 끄덕였다. 그녀에게 화가라고 소개한 지금

그 질문에서 ‘나의 일’은 드로잉이자 여행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

그녀의 말을 빌려 봤을 때 드로잉과 여행이

나에게 행복감을 준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대화가 끝날 때쯤

리스본의 많은 장소를 그림으로 담은 그녀라면

답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리스본에서 가장 멋진 전경을 지닌 장소가 어딘지 물어보았다.


‘Panorâmico de Monsanto’


그녀가 알려준 그곳을 수첩에 기록해두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의 즐거운 작가 활동을

빌어주며 다시 발길을 옮겼다.


전망대를 향해 걸어가는 길,

방금 전 대화를 떠올리며

10년간 몸담은 사무실에서 앉아있던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물어본다.


‘당신의 일은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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