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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Aug 01. 2019

#30 우연한 재회

맥주 한 잔, 그리고 슬픔을 위로한다는 것

리스본 펍에서 다시 마주친 그녀 (오건호 2019)


“이렇게 또 뵙게 되니 너무 신기하네요.”


테이블 끝에 앉아있던 사람은

지난번 카르무 수녀원 앞 벤치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에 마주쳤던 한국인 여행객이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지난번 그녀가

그림을 그리고 있던 나를 마주쳐 신기해했다면

이번에는 여기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그녀와의 마주침이 신기한 듯 나는 물었다.


“아, 숙소가 바로 옆인데 마침 이곳이 리스본에서 유명한 수제맥주집이라고 해서 들르게 됐어요.”


“맛집들을 정말 많이 아시는군요! 참, 알려주신 포르투갈 가정식 음식점에서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우리는 그녀가 알려줬던 음식점에서 각자 무얼 먹었는지, 맛은 어땠는지, 이후엔 어디를 방문했는지 등 지난번보다는 조금 더 시간적 여유를 두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근데 어떻게 포르투갈로 여행을 오게 되셨어요?”


대화 도중 나는 그녀에게 포르투갈을

여행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는 표정이 살짝 변하면서

애써 감정을 가리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예전 남자친구와 같이 여행을 오기로 했는데

얼마 전 헤어졌거든요,

예약을 취소하기도 그래서 혼자 와버렸어요.”


헤어짐을 말하는 그녀의 표정과 말투에

아직 마음속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슬픔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괜찮아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이제 돌아가면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하고 있어요. 오히려 홀가분한 것 같기도 하고...”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래요, 괜찮아질 거예요.’, ‘앞으로는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다 잘 될 거예요.’ 등의 말로 대화를 매듭짓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대신 포르투갈을 오기까지 그녀의 복잡했을 상황을

떠올려보며 그녀의 슬픔을 이해해보고자 했다.

이해는 곧 동감이 되고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최선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과 경험 없이 감정에 대해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경험에서 얻은 슬픔의 조각들 - 예를 들면 직장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고충이라거나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 같은 것들 - 을 뭉쳐 그녀와 최대한 유사한 상태를 가정함으로써 그녀의 감정 상태에 조금 더 접근해보려 했다.


비록 그저께까지 전혀 몰랐던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사람이지만 이토록 그녀의 슬픔에 대해 이렇게까지 노력을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타인의 슬픔을 향한 위로는 자신의 슬픔을 동시에 향하고 있다. 누군가의 슬픔을 위로할 때 우리는 같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느끼기 때문에 위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슬픔과 자신의 슬픔을 유발하는 시작점은 다를 수도 있다. 즉 자신 또한 이미 슬픔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나의 노력은 오직 상대방의 슬픔만을 위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에게 내재된 또 다른 슬픔 또한 위로받고자 하는 무의식이 이끌어낸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도 있다.


나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 대신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그녀의 슬픔을 공유하고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는 나의 고민과 슬픔 또한 그녀에게 공유하며 그녀의 슬픔이 조금이나마 위로될 수 있기를 바랐다. 물론 나 자신의 슬픔도.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쓸데없이 너무 사적인 얘기를 한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덕분에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녀는 감사함을 표하며 건배를 제의했고, 우리는 몇 모금 남지 않은 잔을 부딪히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는 가벼워 보인다.

혹은 내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진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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