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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Aug 03. 2019

#31 비 내리는 리스본의 밤 그리고 연주하는 노인

낭만에 대하여

우리는 펍 밖으로 나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녀는 내일 아침 일찍 라고스로 떠난다고 한다.


“세 번째 마주치면 정말 인연일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럼 그땐 같이 로또를 사러 가야겠는걸요!”


그녀의 농담 섞인 대답과 함께 우리는 두 번째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여전히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다. 숙소로 가기 위해호시우역과 이어지는 내리막 계단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저 아래에서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모두들 비를 피해 지나가네 그렇게 떠나가네
내 노래 들을 이 하나 없네
하지만 난 노래를 불러
그래, 그래서 더욱 낭만적인 오늘 밤

 

다가가서 보니 비에 젖은 계단에 앉은 한 노인이

홀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비내리는 리스본의 밤 그리고 연주하는 노인 (오건호, 2019)


계단을 두어 칸 내려가 그의 앞에 선다.

가사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나는 그 자리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주변에 관객들이 있었다면

무심하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긋이 눈을 감고서 연주를 하고,

나는 함께 비를 맞으며 묵묵히 그를 바라본다.


빗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는

적적한 골목길에서의 두 모습은 왠지

쌍으로 연결된 하나의 모습으로 보인다.


노인이 혼자 연주를 하며 느꼈을 고독.

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한 가닥의 작은 낭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Obrigado.” (고맙습니다.)


어느새 연주가 끝이 나고,


주머니에서 꺼낸 2유로짜리 동전을 살포시 기타 케이스 안에 올려두며, 나 또한 감사함을 전달했다.


“낭만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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