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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Sep 07. 2019

#32 무작정 신트라로 출발

예정 없이 무계획 떠나기

리스본에서의 셋째 날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미술관에서 여유롭게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침에 일어나 창 밖을 보니

날씨가 비교적 화창하다.

일기예보도 어느새 맑음으로 바뀌어 있다.


어제 펍에서 얘기를 나누면서

‘신트라’라는 도시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오늘 날씨가 흐릴 것이라는 예보에

신트라 방문을 포기하고 미술관 투어를

계획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 신트라로 가자!’


맑은 날씨를 보며 계획을 급 변경했다.


사실, 리스본 관광 시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는

‘리스보아 카드’의 혜택 중 하나가

신트라행 기차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인데

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면 왠지 손해일 것 같다는

생각이 신트라 여행을 결정하는데 한몫하기도 했다.


신트라를 당일치기로 구경하려면

하루 전체는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신트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

호시우 역으로 무작정 향한다.


숙소에서 나선 지 10여분이 흘러 호시우 역에 도착.

아깝게 묵혀둬야 했을 수도 있었던 리스보아 카드를 꺼내 흐뭇한 미소로 개찰구에 갖다 댄다.


문이 활짝 열린다. 개찰구를 통과하니 바로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이 나오고 ‘신트라’가 적힌 전광판을 찾아 걸음을 옮겨본다.


‘Sintra, 10:40’


출발 시간까지 아직 30분 정도가 남아있다.


‘드로잉!’


지금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나는 가방에서 펜과 드로잉북을 꺼내 플랫폼 주변에 앉아 이곳의 모습을 담아보기 시작한다.



30분.

어떤 이에게는 지루한 기다림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조금만 더 천천히 가도록 잡아두고픈 시간이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빨리 흘러가고

어느덧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다 되어 드로잉북을 가방에 집어넣고 기차의 출입문으로 걸어간다.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동양인 여행객 한 명이

주변을 두리번 훑어보며 출입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짧은 머리와 살짝 그을린 피부에 검은 뿔테

그리고 남색 백팩을 멘 젊은 사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나는 그가 한국 사람임을 확신하고

신트라로 가는지 물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간다.


“이거 신트라로 가는 기차 맞죠?”


내가 입을 열려던 순간 그가 먼저 묻는다.

아마 나도 그에게 같은 확신을 보여줬나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곧 출발할 신트라행 기차에 함께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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