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해안가의 절벽 마을
버스에 탑승한 사람은 그와 나
그리고 건너편 자리에 앉은 모녀 여행객이 전부다.
신호등도 차도 없는 편도 1차선 도로는
네 명의 승객을 태우고 달리는 버스만큼이나 한적하고,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울리는 엔진소리만이 정적의 일부가 되어 버스 안팎으로 퍼져나간다.
구불구불한 숲 속 길이 나타났다가
집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조그만 마을이 나타났다가
그렇게 창 밖 풍경이 몇 번 반복해서 바뀌고
마침내 버스가 길을 꺾어 고개를 돌리니
오른편 창문으로 넓고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구름 한 점 없는 여름날의 햇빛은 넓은 대서양을
환히 비추고 마치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아른거리는 바다의 모습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옛 추억의 장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해변가 모래사장이 나오자 함께 타고 있던 여행객 모녀가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여기서 내려야 할까요?”
그들의 목적지가 우리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괜히 불안한 마음에 그에게 묻는다.
“아뇨, 아직 아닌 것 같아요. 계속 타고 가보죠.”
어느 정도 확신한다는 듯한 그의 대답에 안심이 된 나는 자리에 엉덩이를 바짝 붙이고 다시 창 밖을 바라본다.
버스는 모녀가 내린 곳을 기점으로 다시 돌아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해변을 따라 계속 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범상치 않은 진풍경이 눈 앞에 나타난다. 바다를 마주한 절벽 위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건물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여기가 목적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 ‘아제나스 두 마르’다. 우리는 곧바로 이번 정거장에서 내렸고 탄성을 연발하며 마을의 모습이 가장 멋지게 잘 보일 것 같은 장소로 이동한다.
나는 가는 길 내내 괜찮아 보이는 발견 하면
그를 그곳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었고,
그는 다소 쑥스러운 듯했지만 이렇게 멋진 곳에서 언제 또 사진을 찍겠냐며 이런저런 포즈를 권하는 나의 요청을 잘 받아주었다.
기차에서 그에게 감사의 표시로 했던 말에 대한 책임이랄까, 나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성의껏 그의 사진을 찍어본다. 그가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이곳에서.
우리는 연거푸 사진을 찍으며 이동하다
마을의 전망이 제법 아름답게 보이는 해안가 한 언덕에 이른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모습에 넋을 잃은 듯 한참을 서서 그곳을 바라본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각자 1-2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가져도 괜찮을까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이곳을 그림에 담으려고 하는 것을 이미 눈치챈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저는 저기 마을을 둘러보고 올게요.”
부탁대로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그는 마을을 향해 길을 걸어간다. 나는 언덕에 남아
가방에서 펜을 꺼내 마을의 모습을 종이에 담기 시작한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보면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했었나? 그렇다. 나 또한 지금 내 앞의 풍경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과 그것을 찬양하는 이 순간을 온전하게 나의 창작물 담아 간직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대서양의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분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에 손이 시리다. 하지만 내몰아치는 찬 바람도 그림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꺾진 못한다.
텅 비어 있던 흰 종이에는 어느새 눈 앞의 풍경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자리를 잡으며 잎사귀가 활짝 피어나듯 공간을 채워가고 있다.
아마 먼 훗날 지금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을 볼 때면
두 가지가 생각날 것이다.
유일무이했던 해안 절벽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감탄을 금치 못했던 그 순간의 감동이.
그리고 언덕에 서서 그림을 그리던 내내 나의 두 뺨을 차갑게 때렸던 대서양의 세찬 바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