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aly
주말에 장을 보기 위해 대형 마트에 가면 몇 년 전부터 육류를 파는 곳 옆에서 스테이크를 직접 구워 준다든지, 과일 섹션 쪽에서 과일 주스를 갈아 주는 흥미로운 곳이 생기고 있다. 해물을 파는 곳에서는 랍스터 세트를 판매하는데, 시원한 맥주와 함께 싱싱한 해산물 세트를 판매하는 곳 옆에서 바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마트의 매대 옆에서 식사를 한다?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재료의 가격에 조리 비용 정도를 추가해서 받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믿을 수 있는 식재료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마트의 원류인 재래시장 본연의 장점을 느낄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런 형태를 특화하고 있는 L마트 같은 경우는 타 매장에 비해서 일평균 방문객 수가 2배 가까이 된다고 한다. 식자재를 판매하면서 식자재를 이용한 음식을 조리해서 판매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매장이다. 최근 오픈 한 마트들이나 일부 레스토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그렇다면 매장들은 판매를 위한 공간 외에 요리사를 고용해야 하고 조리를 해야 하는 주방을 만들어야 하고 고객의 식사 공간도 조성해야 하는 이러한 공간을 왜 만들어야 했을까?
인건비도 더 많이 들고 매장 공사비도 더 투자해야 하는데 말이다. 답은 오프라인 매장의 몰락에서 찾을 수
있다.
마트는 다양한 상품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편리함은 있지만 그 편리함은 이미 온라인 마켓에서 빠르게 잠식하며 오프라인의 고객을 흡수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만 고객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체험과 콘텐츠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는 판매를 위한 선반이 가득하고, 상품군에 의해 분류되어 있는 길을 나도 모르게 돌면서 필요한 물건을 카트에 넣고 매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동선의 흐름대로 계산대로 가게 되어있다. 고객의 행동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효율적이긴 하지만 물건을 사는 과정 속에서 사람과의 접촉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체류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고 단순하고 지루한 시간을 겪고 나면 주차를 하고 올라가서 구매를 하고 물건을 차로 가지고 와서 다시 집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 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쉬운 길로 가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흥미로운 다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그 흥미로운 다른 일을 마트에서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기존의 공간은 새롭게 재탄생되고 있고, 온라인이 대세라지만 공간에서 만들어 내는 경험은 액정화면보다 매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고 온라인 세상이 커질수록 오프라인의 경험적 공간에 대한 욕구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공간의 경험을 극대화하고 있는 브랜드가 있는데 바로 이태리 음식 문화를 기반으로 한 이탤리(Eataly)라는 브랜드이다.
이탤리는 이태리의 토리노에서 2007년 사업가인 오스카 파리 네띠(Oscar Farinetti)에 의해 시작되었다. EAT+ITALY의 합성어인 이탤리는 이태리의 식재료 마켓이다. “Eataly is Italy”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이태리의 식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최근 오픈 한 매장들은 더욱 규모가 커지고 더 다양한 이태리의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라스베이거스 같은 관광지에서도 반드시 들려야 할 랜드마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탈리는 먹고, 판매하고, 가르치는 공간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 매장에는 베이커리 커피 카운터 식료품 소매점 다양한 레스토랑 그리고 요리학교까지 구성되어있는 대형 슈퍼마켓이자 레스토랑 이자 푸드홀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우리나라의 마트에서 구성한 요소는 이런 곳의 일부 요소를 매장에 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 매장에 들어서면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하다. 뉴욕의 매장은 약 4200m 2 정도의 면적으로 오픈했을 때 몇 주 동안은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방문을 해보면 벽이 없이 오픈된 매장에 각종 식자재와 이태리의 와인 요리 관련 굿즈 라바짜 커피 카운터와 디저트까지 음식들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을 보면 들어서자마자 흥분이 된다.
섹션별로 피자 레스토랑과 스테이크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매장 내부를 둘러보면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매장에 경계 벽이 없는 것과
동선이었다.
각 구역 별로 기능은 모두 다르지만 경계 벽이 없어서 손님은 자연스럽게 다른 섹션으로 넘어갈 수 있다. 물론 심리적인 경계는 존재하는데 자연스럽게 진열 선반이나 냉장고 그리고 평면의 구성으로 섹션을 구분을 했다.
손님은 단순하지 않은 동선을 돌아다니며 매장을 볼 수 있고, 구매를 하다가 먹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경계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동이 가능하다.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불편할 것 같지만 오히려 복잡하고 산만한 동선은 고객에게 노천 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와인을 판매하는 구역에서 구매한 와인을 마셔보고 싶다면 바로 옆에 위치한 치즈 섹션에서 치즈를 구매해서 와인과 함께 시음할 수 있는 식이다.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곳에는 높은 테이블이 있는데, 사람들은 캐주얼하게 서서 간단히 와인을 마신다. 넓은 공간이지만 테이블 하부에는 가방을 놓을 수 있는 바구니가 있어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대부분의 이탈리는 천정을 노출하고 있는데 이런 장치는 천정 고를 최대한 높이고 시각적으로도 높아 보이게 한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등을 설치해서 전반 조명을 하는데 조도가 약간 높은 편이어서 고객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유리하다.
동선이 복잡해 보이지만 전체적인 평면을 보면 규칙이 보이기도 한다. 레스토랑과 판매 공간 디저트나 커피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중간중간 섞여서 배열되어 있는 패턴을 읽을 수 있다.
판매 공간을 한쪽에 모아서 만들면 고객도 편리하고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효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는 판매 공간을 레스토랑 주변에 카페를 넘어가는 옆쪽으로 혹은 고객이 매장을 나가는 동선에 배치해서 지루할 틈이 없게 했다.
어찌 보면 놀이동산 같은 패턴이다.
놀이기구 옆에 수비니어 숍이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다른 기구 그 옆에 숍 그리고 음료 판매대. 약간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도하고 있는 목적에 비추어 보면 아주 다른 구조는 아닌 것 같다.
특히 지난해 오픈한 이탤리 라스베이거스 MGM점을 보면 더욱 명확히 느껴진다. 이미 토리노의 이탤리는 관광 코스로 인식이 되어 토리노를 찾는 관광객들은 반드시 찾는 랜드 마크가 되었다.
한참 동안 뉴욕의 이탤리(Eataly) 매장을 둘러본 뒤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는데, 역시 명불허전이다.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서 바로 옆에서 만들어 주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다.
밤이 되니 조명의 조도를 약간 낮춰서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를 했는데, 조금 시끄럽기는 했지만 조도 때문인지 집중이 잘되고 분위기가 좋았다. 옆으로 사람이 지나가기도 하고 우리를 쳐다보기도 했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노천 시장에 앉아 식사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공간을 나누는 벽은 없지만 판매대나 좌석 배열을 다르게 해서 경계 역할을 하게 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레스토랑 설계를 하다 보면 복도 쪽의 좌석들이 오픈된 곳일 경우 복도에 지나다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것 때문에 보완을 하다 보면 폐쇄적인 입면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파인 다이닝과 업스케일 다이닝은 프라이빗한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경계벽이 필요 한 요소이다. 하지만 캐주얼한 식당의 경우에는 활기찬 분위기 연출을 위해서 시도해 볼만한 디자인이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인간적인 접촉에 의한 체험은 고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브랜드를 몸소 느낄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설명하고 보여주는 광고가 아닌 직접 경험하는 광고의 시대가 되었다.
아마존 같은 온라인 기업들이 많은 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다. 또 이에 위기의식을 느낌 수많은 전통적 오프라인 유통회사들은 고객이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요소를 공간에 만들어서 자신들의 브랜드를 체험하게 하고 반대로 온라인 유통을 갖추는 등의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식당의 운영도 사회 현상과 맞물려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 영업이 잘되는 식당들도 자체 브랜드의 PB상품을 만들어서 온라인 유통을 통해서 수익을 내려는 시도를 다각도로 하고 있다.
이 역시 식당 자체의 브랜드가 고객에게 인지가 되어야 온라인 유통에서 성과를 낼 수 있으므로 오프라인 매장의 성공적 운영이 중요한 광고 마케팅이 되는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의 성공이 있어야만 온라인의 성공도 기대할 수 있다.
월간 식당 20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