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리틀 포레스트처럼
벌집, 뱀, 보라색 도라지꽃, 오래된 아궁이, 생기 없는 툇마루. 오래된 기억 속 시골집 풍경은 황폐하고 황량했다. 시골집의 이미지가 그러한 것은 아빠 세대에 벌어진 이촌향도의 흔적이었다.
내가 어릴 때 시골집 앞마당과 뒷밭에는 크고 작은 돌멩이와 온갖 잡초가 가득했다. 집은 비워져 있는 시간이 길었으므로 사람의 것이 아닌 시간이 더 길었다. 집 주변에서 종종 뱀을 봤고(아빠는 이걸 아무렇지 않게 잡아서 풀숲에 던졌다), 낡은 지붕에는 커다란 벌집이 달려있기도 했다. 집 뒤에 딸려있는 밭은 밭으로써의 기능을 하지 않았다. 보라색 도라지꽃은 재배하지 않은 야생의 것이었다. 아궁이가 있는 오래된 부엌은 나무 뗀 냄새가 깊숙이 베여 부엌에 들어간다는 것보다 냄새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나무로 된 툇마루는 물걸레질을 해도 물이 스며들지 않을 정도로 건조하고 생기가 없었다.
물론 좋은 기억도 꽤 많다. 하천에서 했던 물놀이라던가 개구리 잡기 같은 것들.
나와 오빠가 혼자 있어도 되는 나이가 되자 부모님의 시골집 방문은 점점 늘어났고, 시골에 다녀올 때마다 자동차 트렁크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가득했다. 그걸로 엄마는 반찬을 했다. 정말 시골에서 온 시골밥상이었다.
몇 년 전부터는 부모님이 부산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시골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봄에는 씨 뿌리고 모종 심느라 바쁘고, 여름에는 물 주기 바쁘고, 가을에는 수확하기 바쁘고, 겨울에는 김치 담그느라 바쁘다.
부모님이 시골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텃밭의 품종은 계절마다,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어느새 엄마의 자부심은 땅에서 나는 대부분의 것은 돈 주고 사 먹지 않는다는 것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엄마 보따리가 도착하면 나의 일도 시작된다. 엄마 보따리의 크기는 나의 노동량과 비례한다.
계절마다 보따리의 내용물이 달라지다 보니 엄마 반찬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나도 꽤 다양한 반찬을 만들게 되었다. 원천이 엄마 보따리이니 나의 반찬이 엄마의 반찬을 닮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봄 보따리
봄과 여름에는 나물이 많이나 엄마 보따리가 유독 풍성하다. 봄에는 정구지(부추), 쪽파, 풋마늘, 대파, 표고버섯, 두릅, 엄나무순, 상추, 시금치, 곰취 등 정말 온갖 것들이 신문지에 돌돌 말려 택배 상자에 들어가 있다. 나는 정구지찌짐(이건 이렇게 말해야 더 맛있게 느껴짐)을 유독 좋아해 질릴 때까지 만들어 먹는다. 때로는 고춧가루를 넣어 무쳐먹기도 한다. 엄마 말에 의하면 정구지는 베고 돌아서면 쑥 자라 있기 때문에 보내오는 양이 어마어마하다. 두릅과 엄나무순은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고, 시금치는 나물로 만들어 먹는다. 시금치도 보내오는 양이 꽤 많은데 우리 집에는 시금치 귀신(남편)이 있어 아껴먹을 정도다.
여름 보따리
여름은 봄의 것과 조금 다르게 풍성하다. 대체로 열매들이 온다. 상추와 부추는 봄에 이어 ing 상태이고, 감자, 양파, 고추, 조선 오이, 애호박, 토마토, 자두, 오크라, 열무김치 등이 도착한다. 나는 열무김치를 넣은 비빔밥과 비빔국수를 정말 정말 좋아해서 여름만 되면 엄마의 열무김치를 기다린다.
가을 보따리
가을에 보내오는 것은 감(대봉과 단감), 고구마, 콩, 표고버섯 등이 있다. 감은 박스채 보내오므로 주변 사람들과 나눠먹을 때가 많다. 콩은 밥을 지을 때 넣어 먹거나 콩자반으로 만들어 먹는다. 아주 가끔은 늙은 호박을 긁어서 보내온다. 내가 늙은 호박전을 좋아하기도 하고 늙은 호박전 못 먹어 본 사위 먹이라고.
겨울 보따리
겨울은 겨울인 만큼 엄마 보따리에 채소는 줄어든다. 하지만 겨울에는 김장김치라는 존재가 있다. 독립 전에는 김장김치를 할 때 보조역할을 하며 양념 바른 배춧잎을 한 장 한 장 뜯어먹곤 했다.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김장김치를 한 일주일 동안은 생김치만 먹었다. 작년 겨울에는 엄마가 김장김치를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보쌈을 했다.
사계절 보따리
참깨, 참기름, 들기름, 고춧가루, 매실청, 국간장, 고추장, 된장 등은 계절과 상관없이 보내온다. 내가 만드는 집밥은 모두 엄마가 보내주는 것으로 만든다.
정말로 나는 엄마 덕분에 먹고살고, 엄마 덕분에 서울에서 리틀 포스트처럼 산다. 이런 것을 보면 나의 도시락은 부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