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바다의 삶, 영도

사실은 바다를 향해 달려야 한다

by 인평동 도치

부산 영도. 14년 전, 나는 이곳에서 아침과 저녁을 맞이했다. 아침마다 남포동에서 508번 혹은 7번 버스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다양한 사람이 버스에 올라탔다. 밤새 일을 마치고 아침 술을 거하게 마셔 온몸이 벌게진 아저씨, 교복을 입고 터벅터벅 등교하는 보건고 학생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으면 영도의 비탈진 집이 보인다. 아래로 비탈진 계단은 길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다. 집과 집 사이로 난 좁은 길이 절벽처럼 보여 아찔하다. 한편 그 길로 보이는 파아란 바닷물로 풍덩 뛰어들고 싶어지는 느낌이 든다. 시선을 45도 정도 내리면 끝없이 내려가는 좁은 계단과 오목조목 붙어있는 대문이, 멀리 쳐다보면 바다에 둥둥 떠있는 거대한 화물선이 눈가에 머문다. 새파란 바다와 빨간 배, 노랗고 퍼런 비탈의 작은 건물, 사실은 바다를 향해 달려야 한다고 아쉽게 말하며 벼랑길 코너에서 운전대를 휙 꺾는 맹렬한 버스. 아파트 단지 안에서만 자란 나에게는 영도의 굴곡진 모습이 날 것으로 다가왔다.



영도에서 내가 잊지 못하는 장소가 있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비탈길에 민트색 주차장이 나타난다. 주차장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차가 딱 한 대 들어갈만한 크기로 앞부분이 뚫린 콘크리트 상자쯤 될 것이다. 바다 쪽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뚫려있었는데, 이곳은 대부분 비어있었지만 가끔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도의 비탈길은 주차라곤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아니, 차를 주차할 만큼의 땅도 돈도 여유가 없는 동네였다. 그 주차장은 뭔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바깥에서 본모습과 이 동네의 속살은 다른 것일까?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도 의문을 가지며 주차장을 볼 때마다 매번 궁금해했다. 영원히 답을 구하지 않는 질문처럼. 주차장은 그냥 그 자체로 그 자리에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존재하고 있었다. 이곳엔 누가 주차를 할까? 주차를 끝내고 차에서 나와 바다를 바라보면 마치 바다에 풍덩 빠지는 기분일까? 아니면 몸이 지쳐 빨리 집에 들어가서 쉬고자 하는 마음만 가득할 수도 있다. 아직까지도 내가 본 주차장 중 가장 낭만적이면서도 궁금한 곳이다. 네이버 로드뷰를 보니 그곳은 이미 사라졌다. 사라져서 더 소중한 것인지 가끔 생각나곤 한다.



아파트에서 편하게 자랐고 앞으로도 아파트 안에서 살아갈 내가 힘들고 불편한 영도의 삶을 마음이 쓰인다고 하니 모순이 극치를 달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영도에서 버스를 타고 다닐 땐 정말로 그렇게 느껴졌다. 평범한 서민으로 부산에 살면 평지에 소망을 두고 경사진 곳에서 살아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부산은 산과 산 사이에 계획 없이 갑자기 만들어진 도시라 평지가 귀하다. 내가 저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정이 있을까. 어떤 것이 힘들고 어떤 것이 좋을까. 버스를 타고 바깥을 바라보며 상상을 하고 또 했다. 내 생활에 대한 어쭙잖은 감사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그냥 그들이 되어봤다. 바닷가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에겐 없는 다정함이 기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건물이 많이 생겼다. 그래도 바다는 그대로다. 시원한 바다만큼 버스 기사의 운전도 탄산음료처럼 격렬하게 시원하다. (가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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