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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Apr 15. 2024

찬란한 햇볕이 드는 작은 해변, 송정

송정당 쑥아이스크림과 삼교리 동치미 막국수

    '송정'하면 옛 생각이 많이 난다. 어린 시절에 가족들과 함께 송정에 들러 바다를 보고 저녁즈음이면 달맞이 고개로 올라가 언덕 위의 집이라는 경양식 레스토랑의 갑옷을 입고 우뚝 서있는 기사 상과 인사하고 저녁을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외지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해변이었을 것이다. 주로 관광객을 피해 한적한 곳을 찾아오는 부산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그중 하나였으니. 당시엔 지금처럼 북적이지도 않았고 편의시설도 해운대보단 부실했다. 해변의 상당 부분은 군용 해변으로 철조망이 쳐져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송정'. 소나무 숲에 정자가 있는 해변이다. 송정해변 끄트머리에 솟은 섬 가장 끝에 정자가 있다. 예전엔 여름 바다 수영을 하다가 지친 사람들이 그 섬에 올라가 주섬주섬 간식을 먹던 기억이 난다. 블루라인 파크라고 해안길 모노레일이 생겨 미포부터 달맞이고개, 청사포를 지나 송정까지 바다를 가장 가까이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고, 유리창 하나를 통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왜 진작 안 생겼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있는 해안이다.



    부산 해안의 마무리 지점인 송정은 규모가 작은 해변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다. 해운대나 광안리에 가면 인파가 복잡하기도 하고 맛집도 많아 생각할 거리가 많은데, 송정은 갈만한 곳이 대략 정해져 있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바다의 명당은 아무래도 바닷물 바로 앞 모래사장이다. 파도가 닿을락 말락 하는 자리에 서있다 보면 바닷물이 스스로 밀려드는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마치 영혼이 있는 생물처럼 아슬아슬 밀당을 하며 반짝인다. 파도는 참 신기하다. 파랗고 하얗게 시시각각 변하는 색 하며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부신 존재다. 또 챠르르 쏟아지는 파도소리는 어떠한가. 파도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와 함께 내 마음의 묵은 짐들이 사르르 사라지는 것 같다.




    눈이 부시고 사람이 많아 바닷가에 오래 앉아있기는 어렵다. 바다라는 장소가 밀고 당기는 거친 느낌이 있어 오래 앉아있으면 힘이 소모되기도 한다. 소금기가 느껴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송정당의 쑥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 여수당의 송정 버전인데,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진한 쑥 아이스크림이다. 쓰고 달다.

    송정의 또 다른 나만의 맛집은 바로 '삼교리 동치미 막국수'이다. 춘천에 살 때 여름이면 대기를 타서라도 먹었던 그 삼삼하고 시원한 막국수. 부산으로 이사 오고 나서 한참을 먹지 못하다가 송정에 체인이 생겨 한 번씩 먹으러 갔다. 우리가 아는 그 빨간 막국수가 아니다. 시원하고 시큼 달큼한 동치미 국물을 짠지와 비밀육수(?)로 간이 된 면발 위에 얹어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갑게 먹는다. 여름 더위엔 약이 따로 없다. 침이 올라온다.


송정당 쑥 아이스크림과 삼교리 동치미 막국수. 꿀맛이다.

    춘천에서 삼삼한 맛을 알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막국수이다. 면을 방금 막 뽑아서 막국수, 막 비벼먹어서 막국수. 처음엔 진짜 맛이 없었다. 뭐야 이걸 왜 먹지 에라잇 입 배렸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삼삼하고 뚝뚝 끊어지는 면발. 고소한 메밀 맛이 머릿속으로 이해가 됐다. 이 동치미 막국수를 먹으면 동치미의 자연적으로 생긴 시원함이 느껴진다. 바닷가에서 먹는 막국수. 정말 찰떡이다.

    송정은 해운대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바닷가다. 어린 시절 추억도 녹아있고, 강원도 춘천의 추억도 녹아있다. 근방에 이케아와 아웃렛도 있어 일석이조다. 주말 오후 날씨 화창한 날 송정에 가면 환한 햇살과 반짝이는 바다, 따뜻한 공기와 바람이 나를 반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의 나를 담고 있는 송정해변이다.


어린 시절 해운대는 항상 사람이 북적여 우리 가족은 작고 조용한 송정바닷가에 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송정도 발전해 북적여 아쉽지만 쑥아이스크림이 생겨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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